[SOH]
당시산책(唐詩散策)

[15회] 밤비에 아내에게 부치다
<夜雨寄北, 야우기북>
가을 밤비 소리에 문득 잠을 깬 젊은 여인이 행여 임의 발자국 소리인가 하여 문 쪽으로 눈길이 자꾸 간다는 애절한 사연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사랑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법하다. 비록 남녀의 사랑이 아름답고 로맨틱하다 해도 그 속에는 끝없는 그리움과 기다림의 연속이 아닐까? 만당(晩唐)의 저명한 시인 이상은은 객지에서 가을 밤비가 내리는 어느 날 사랑하는 아내가 몹시 그리워 애정시 한편을 지어 아내에게 보냈다.
夜雨寄北 밤비에 아내에게 부치다 李商隱
야우기북 이상은
君問歸期未有期 그대 ‘언제 돌아오나요?’ 물었으나
군문귀기미유기 나는 아직 기약 없고
巴山夜雨漲秋池 파산의 밤비는 가을 연못을 넘치게 한다.
파산야우창추지
何當共剪西窓燭 어느 때 그대와 함께 서창가에서
하당공전서창촉 촛불의 심지를 자르며
却話巴山夜雨時 오늘 밤 이 파산의 밤비 내리는 정경을
각화파산야우시 함께 얘기할는지 ?
[주석]寄 기(부치다), 北 북(북쪽인 장안에 있는 작자의 아내를 가르킴), 君 군(그대/아내), 歸期 귀기(돌아올 기일), 巴山 파산(파촉 지방 일대의 산), 漲 창(물이 붇다/성하다), 池 지(연못), 何當 하당(어느 때=何時), 剪 전(가위/자르다), 剪燭 전촉(불이 쇠약한 촛불의 심지를 잘라 불빛을 밝게 하다), 窓 창(창/창문), 却 각(돌이켜/오히려)
[해설]이 시는 이상은이 친구에게 보냈다 또는 아내에게 보냈다 등 설이 분분하다. 그러나 시의 내용으로 보건대 아내에게 보낸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작자 이상은이 벼슬을 얻기 위해 파촉 지방을 돌아다닐 때 멀리 장안에 홀로 있는 아내에게 보낸 시이다.
제 1구(起句)에서 일문일답을 사용하여 무한한 변화를 주었다. 아내가 남편의 돌아올 날짜를 물었는데(君問歸期), 남편은 돌아갈 기약이 없다(未有期)고 한다. 아내의 간절한 기다림이 묻어있고, 집 떠난 남자의 여수(旅愁)와 지금 돌아갈 수 없는 아쉬움이 엿보인다.
제 2구(承句) 가을 밤 눈앞에서 전개되는 “파산의 밤비로 가을 연못 물이 불었다”(巴山夜雨漲秋池)에서는 집으로 돌아가고픈 나그네의 애수에 잠긴 마음과 가을비가 교차하면서 더욱 사람을 쓸쓸하게 한다.
쓸쓸한 가을비에 상상의 날개를 문득 새롭게 펼친다. 그래서 “(앞으로)어느 때 서창가에서 촛불의 심지를 자르며, 오늘 밤 이 파산의 밤비 내리는 정경을 함께 얘기할는지?”(何當共剪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하면서 작가의 장래 희망을 읊조렸다. 그 구상의 절묘함이 단연 돋보인다. 이때 이상은은 파산의 밤비 소리를 홀로 들으며 같이 얘기 나눌 사람조차 없었다. 쇠잔한 촛불의 심지를 자르고 있는데 밤은 이미 깊었다. 이런 가운데 아내가 보낸 편지를 읽고 있는 그 심정은 어떠할까? 오늘 밤 이 서글픔에도 불구하고, 그대와 가까운 미래에 만나 촛불의 심지를 자르고 오늘밤 파산의 밤비 얘기를 하겠다는 즐거움을 상상하면서 끝을 맺었다. 그 서정(抒情)이 완곡하고, 의미가 심장하여 여운이 오래도록 감돈다.
서창전촉(西窓剪燭)혹은 전촉서창은 성어가 되었는데, ‘멀리 있는 아내 또는 친구와 다시 만나 밤새도록 이야기 나누기를 고대하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상은(李商隱, 813∼858)은 만당(晩唐)의 시인으로 자는 의산(義山), 호는 옥계생(玉鷄生)이며, 하남성 사람이다.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당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관직의 길이 순탄치 않았다. 그의 시풍은 화려하였고 두목과 함께 만당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