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당시산책(唐詩散策)

[14회] 쓸쓸한 가을바람 어디서 불어올까?
<秋風引, 추풍인>
입추(立秋), 처서가 자나자 그 뜨겁던 여름 태양도 세력을 잃었다. 아마 어김없는 자연의 순리일 것이다. 이제 조락(凋落)의 계절 가을이다. 만물은 저마다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기위해 마지막 가을 햇빛을 갈무리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때 어디선가 문득 소슬한 가을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귓가에 맴도는 이 쓸쓸한 바람소리는 우리를 한번쯤 애수(哀愁)에 잠기게 하고, 나아가 자신을 깊이 성찰(省察)하도록 한다. 고향을 떠난 자 고향이 더욱 그립고, 가슴에 번민이 깊은 자 불면의 밤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秋風引 가을바람의 노래 劉禹錫
추풍인 유우석
何處秋風至 어느 곳에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가?
하처추풍지
蕭蕭送雁群 쓸쓸한 바람소리 속에 기러기 떼 보낸다.
소소송안군
朝來入庭樹 아침 무렵 뜰에 있는 나무에 불어오니
조래입정수
孤客最先聞 외로운 길손이 그 소리를 가장 먼저 듣누나.
고객최선문
[주석] 引 인(끌다/악부시체의 일종), ‘引’은 ‘歌/行/曲’이나 마찬가지로 노래라는 뜻, 至 지(이르다), 蕭 소(쑥/쓸쓸하다), 蕭蕭 소소(쓸쓸한 소리나 모양을 형용), 送 송(보내다), 雁 안(기러기), 群 군(무리), 庭 정(뜰), 樹 수(나무/심다), 孤 고(외롭다),最 최(가장), 聞 문(듣다)
[해설] 이 詩는 유우석(772∼842)이 벼슬살이 중 장기간 좌천(805∼815)되어 남방으로 멀리 귀양 간적이 있었다. 이때 그곳에 마침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문득 기러기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울적한 나그네의 심정을 토로했다.
이때 당(唐)왕조는 전성기를 지나 차츰 내부적 모순이 격화되면서 사회는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805년 순종 때 왕숙문(王叔文)과 젊은 관료들인 팔사마(八司馬:한유·유우석·유종원 등 8명)가 결합하여 정치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하고 모두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 당시 34세의 유우석은 인생의 시련기를 맞이하였고, 이후 약 10년간 객지를 전전하였다.
시 제목이 ‘가을바람’(秋風)인데 첫 구절(起句)에서 ‘어느 곳에서 가을바람 불어오는가?’(何處秋風至)묻고 있다. 가을바람이 어느 날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홀연히 자취도 없이 도처에서 불어온다는 사실을 물음을 통해 나타냈다.
승구(承句)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쓸쓸한 소리’(蕭蕭聲)소리와 눈에 보이는 ‘가을바람을 따라 보내는 기러기 떼’(送雁群)의 모습을 그렸다. 이것은 무형의 가을바람을 가히 듣고 볼 수 있도록 하여 마침내 이를 소재로 눈앞에서 생생하게 전개되는 한편의 화폭(畵幅)으로 만들었다.
3,4 구(轉結句)에서 앞의 ‘기러기 떼’로부터 ‘뜰의 나무’(庭樹)옮겨왔다. ‘아침에 뜰에 서니’(朝來) 바람이 정원의 나무를 흔드는데 나뭇잎이 쓸쓸히 울리고, 그것도 귓가에 까지 들려온다. 홀로 타향에 있는 ‘외로운 나그네’(孤客)에게 당연히 ‘가장 먼저 들릴' (最先聞)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객지생활의 외로움과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귀사(歸思)의 심정이 잘 나타나고 있다.
유우석(劉禹錫)은 중당(中唐, 766∼835)의 시인으로 자가 몽득(夢得), 하남성 낙양사람이다. 유종원과 함께 진사에 급제하여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좌천된 적도 있었고, 태자빈객, 검교예부상서 등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