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당시산책(唐詩散策)
[11회] 너 한잔 나 한잔 산의 꽃은 절로 피고
<山中與幽人對酌, 산중여유인대작>
술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천 잔도 부족하다(酒逢知己千杯少)면서 마시고, 또 망우물(忘憂物)이라 하여 시름과 괴로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술을 찾기도 한다. 이처럼 술(酒)은 일상생활 속에서 기뻐도 한잔, 슬퍼도 한잔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에도 마시고 있다. 이태백도 어느 날 모처럼 지기(知己)를 만나 마음에 아무 걸리는 것 없이 술잔을 주고받았다.
山中與幽人對酌 산속에서 벗과 대작하다 李白
산중여유인대작 이백
兩人對酌山花開 너와 나 술잔을 마주하니 산에는 꽃이 피고
양인대작산화개
一杯一杯復一杯 너 한 잔 나 한 잔 또 한 잔 끝이 없다
일배일배부일배
我醉欲眠卿且去 나는 취해 자려하니 그대는 일단 돌아가게
아취욕면경차거
明朝有意抱琴來 내일 아침 생각나거든 거문고 안고 오게나.
명조유의포금래
[주석] 幽 유(그윽하다), 幽人 유인(인가를 떠나 한적한 곳에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 : 隱者), 酌 작(술을 따르다), 杯 배(잔), 復 부(다시), 醉 취(취하다), 眠 면(잠자다), 卿 경(벼슬) : 여기서는 ‘君’의 의미로 2인칭 대명사임, 且 차(또/우선/일단), 抱 포(안다), 琴 금(거문고)
[해설] 이백의 음주시(飮酒詩)치고 통쾌하지 않은 것이 없듯이 이 시도 통쾌무비하다. 흔히 이백은 ‘벗할 사람 없어 홀로 술을 마시는’(獨酌無相親)때가 종종 있는데, 이날은 의기가 투합하는 벗을 만나 대작하고 있다. 그 벗은 아마 산속에 은거하고 있는 높은 선비인데, 둘이 만난 그곳에는 마침 산꽃(山花)이 만발하여 환경조차 그윽하고 아름답다.
이런 유미(幽美)한 환경 속에서 뜻이 맞는 친구와 마주하였으니 가슴은 이미 열렸고 너 한잔 나 한잔 또 한잔 연거푸 세 번을 반복하면서 거침없이 술잔을 주고받고 있다. 이백은 장진주(將進酒)에서 ‘술을 한번 마시면 삼백 잔이라(會須一飮三百杯)’ 이날도 미친 듯이 술을 탐하다가 그만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취했다.
이백은 ‘나는 취해 자려고 하니 그대는 돌아가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 교제(忘形交)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아직 여흥이 미진한 듯 ‘내일 아침 생각나거든 거문고 안고 오라’고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한마디로 평범을 벗어난 초범탈속(超凡脫俗)의 모습들이다.
제3·4구는 송서 은일전(宋書 隱逸傳) 도연명(陶淵明)의 이야기를 전고(典故)로 하는데, “도연명이 먼저 취하면, 손님에게 ‘내가 취해 자려하니(我醉欲眠), 그대는 가게(卿可去)’하였다”고 한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고, 뜻이 맞는 벗과 마음껏 술을 즐기고 있는 한가로운 정경이 유감없이 나타나 있다. 또 솔직하고 간명한 표현 속에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심경이 무르녹아 있어 이 시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그 분위기속으로 빨려들어 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