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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仙列傳] 제 4화 하선고(何仙姑)

일관  |  2022-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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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하선고는 팔선 중 유일한 여선(女仙)으로 팔선도에서 연꽃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궁장여인이다. 고대로부터 선고(仙姑)는 선녀 또는 여도사라고 하는 의미가 있고 선도(仙道)에서는 도고(道姑)라고 하고 민간에서는 선랑(仙娘)이라고 한다. 

 전해져 내려오기로 하선고는, 당나라 사람으로 광주 남해군 증성현 출신이다. 원래 이름이 하수고(何秀姑)였다고 하며 하태(何泰)의 딸로서 당나라 측천무후 시절에 출생하였다는 설이 있다. 태어날 때 자주색 구름이 집을 감싸고 흩어지지 않아, 상서로움을 더했다고 한다. 

 하선고의 고향 인근 산에는 운모가 많이 산출되었다고 한다. 흐르는 개울물에는 운모 조각이 뒹굴면서 물을 따라 흘러 내려왔지만, 사람들은 떠내려오는 운모 조각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선고가 14~5세 쯤 되었을 때,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신선이 나타나

신선 : “너는 운모 가루를 항상 먹도록 하라, 그러면 몸이 가벼워지고 수명도 연장될 것이다.”

 하선고는 꿈속 계시를 믿어 의심치 않았고 매일 운모 가루를 복용하였으니, 그녀의 신체는 가볍기가 제비와 같았으며,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인근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운모 가루를 찾아 먹었지만, 일부 사람만이 다소 효력을 보았을 뿐, 대부분은 효력이 없었다고 한다. 운모 가루를 먹겠다는 사람이 많아져 시간이 지나자, 시냇가에서는 그 많던 운모 조각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 운모(雲母) : 운모과 광석의 총칭으로서 결정체, 색깔에 따라 성분이 다르며, 옛날 사람은 운모를 구름의 뿌리라고 하여 운모(雲母)라 이름하였다. 얇은 조각으로 잘 쪼개지며 빛을 투과하거나 거울로도 사용 가능하며 약으로도 쓴다. <도경연의본초>에는 “그 맛이 달고 평이하며 독이 없다. 몸에 사기를 제거하고, 오장을 편하게 하고 오로칠상과 허로를 다스리고 설사를 멎게 한다.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볍고 수명을 연장한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하선고가 어느덧 성장하여 시집갈 나이가 되자, 부모는 혼처를 구하면서 하선고가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하선고는 결혼 따위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멀리 외출하였을 때, 팔선 중의 철괴리(鐵拐李)와 남채화(藍采和) 두 신선을 만나 벽곡의 비결을 전수 받았다. 

 * 벽곡(벽穀) : 음식이나 물을 전혀 먹거나 마시지 않고 사는 것.

 하선고는 아침 일찍 외출하여 밤늦게 돌아왔는데, 매번 돌아올 때마다 두 손에는 산에서 나는 큼직한 과일 한 아름을 가져왔다. 이 큼직한 산 과일은, 그 고장에서 나지 않는 과일로, 색이 곱고 신선하며 맛이 좋아 보통 과일과는 달랐다. 

부모 : “애야, 이 과일은 어디서 가져왔느냐?”

하선고 : “이곳으로부터 천리 밖, 오령(五嶺)에서 따온 거예요.”

 부모는, 이때서야 비로소 하선고가 근기가 높은 수행자임을 알게 되었고, 하선고는 날이 갈수록 수련의 깊이를 더해 가, 부모도 더는 하선고에게 시집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흐른 후, 팔선 중에서 순양진인 여동빈을 만나 선도(仙桃)복숭아 하나를 얻어먹은 후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되고, 인사(人事)와 길흉화복을 훤히 알게 되니 자못 그 영험함이 대단하여 고향 사람들이 신령하다고 받들어 모셨다. 점차 하선고의 도력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당나라 측천무후도 하선고의 신통함과 기이한 행적을 듣고 관리를 파견하여 하선고를 장안으로 불렀지만, 관리 일행과 함께 장안으로 오던 중 하선고는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관리들이 백방으로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실망하여 궁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측천무후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나라 중종 경룡(景龍) 년간에 신선 철괴리가 하선고를 인도하여 백일비승(白日飛昇)하여 신선의 반열(仙班)에 들었다. 후에 당나라, 송나라 때 하선고는 장안 승선관(昇仙觀), 강서 마고단(痲姑壇)에서 현신하였다고 한다. 


 여자로서 성선(成仙)한 신선이 드문 가운데 하선고는 호남과 광저우 일대에서 대부분 활동하며, 자연히 부녀(婦女)에게 전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당광정이라는 여자는 몸에 혈질(血疾)이란 병으로 8~9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모두 요절했다. 당광정은 스스로 전세의 죄업이 무거움을 알고 남편에게 수도하겠다는 뜻을 전한 후, 집을 떠나 천릿길도 멀다 하지 않고 하선고를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또 송나라 때 이정신의 처가 임신을 했는데 출산일이 되었어도 아이가 나오지 못하고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선고를 청해 도움을 받게 되었다.

하선고 : “당신은 일찍이 임신한 여종 한 사람을 학대하여 죽게 한 사실이 있다. 이제 그 업보를 받고 있는 것이다.”

 하선고가 법술을 써서 아이를 낳게 하였으나 세상에 나온 아이는 죽어 있었다. 아이 몸 위에는 채찍 흔적이 가득하였다고 한다. 


 사실 하선고의 도술이나 신선으로서 자취들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많지 않다. 또 하선고의 출신에 대한 기록도 분분하여 사실을 쉽게 구분하기도 어렵다. 하선고의 본관이 광주(廣州)가 아니고 순주(循州), 영주(永州)라는 설도 있다. 어떤 기록에는 하선고의 성이 조(趙), 이름은 하(荷)라고 적혀있다. 이름 하(荷)자(팔선도 그림 속에는 손에 연꽃을 들고 있으므로)가 잘못 와전되어 하(何)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어떤 기록에는 하선고의 이름이 이랑(二娘)이고 신발을 짜서 생업으로 삼고 스스로 수련하여 도를 얻었다고 한다. 당나라 현종 개원 연간에 사자를 파견하여 장안으로 다시 초청했다. 이 초청이 그녀를 희롱한다는 생각이 들자 장안으로 오는 도중에 사라졌다고 한다. 


 당나라, 송나라 연간에 여덟 신선이 모두 다 나타나지 않았을 때는 하선고는 그 팔선의 행렬에 들지 못했다. 누가 팔선에 속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었으나 명나라 이후가 되어서야 팔선이 정해졌다. 이때부터 여자 신선 하선고와 7명의 남성 신선들 즉 팔선에 대한 고사 전설이 부단히 더해지게 되었으며 제각기 자기 재간을 나타내게 되어 그 내용이 더욱 풍부하고 다채롭게 되었다. 

 한편, 현재 중국 광주 증성현(增城縣)에는 하선고의 사당이 있고, 매년 음력 3월 7일 하선고의 탄생일이 돌아오면 4만여 읍민들이 모여 기념 창극을 하고 경축행사를 올리는 것이 풍속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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