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네 성현은 미인계로 삼장의 선심을 시험해보다-40회
선법 찾아 서천 가는 길 더디고 더뎌라
가을바람에 솔솔 성에 날리네.
괴팍한 원숭인 굴레를 벗기지 말고
부지런히 걷는 말에겐 채찍질 말라.
수은과 연은 스스로 뭉쳐지고
황파와 적자 또한 다름이 없네
언제든 쇠재갈을 물어뜯는 그때면
반야바라밀의 대안에 이르게 되리.
삼장을 비롯한 일행 네 사람은 영원한 진리를 깨쳐서 어느덧 속세의 고경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장애 없이 푸른 산을 넘고 맑은 물을 건너며 서천 길을 가고 또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자 삼장은 제자들을 돌아보며 걱정했습니다.
삼장 : “애들아! 오늘도 해가 저물었는데 묵어갈 곳이 없으니 어떡하면 좋으냐?”
오공 : “스승님! 출가인은 ‘바람을 먹고 찬물을 마시며 달빛 아래 눕고 서리 위에서 잔다.’는 식으로 어디나 다 잠자리가 아니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묵을 곳을 걱정하십니까?”
팔계 : “형! 형이 홀몸이라고 아무렇게나 말하지 마셩. 유사하를 건넌 후로 내내 험한 산길인데다 이렇게 무거운 짐까지 지고 있는 난 지쳐 죽을 지경이란 말이야.”
오공 : “이 녀석아!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으냐? 자고로 고생을 겪고 나서야 만이 진정한 불제자라고 할 수 있는 거다."
팔계 : “그건 좀 이상한데. 그럼 이렇게 많은 짐을 나 혼자서만 곤욕을 치르면서 매일 지고 다니니 형만 스승님의 제자고 나는 머슴꾼 밖에 안 된다는 말이야?”
오공 : “이 녀석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나는 스승님의 신변을 지키는 게 소임이구, 너와 오정은 짐과 말을 보살피는 게 소임인 게야.”
팔계 : ‘형! 그럼 좋아. 형은 기품이 높은 사람이니까 짐 같은 건 짊어지기 싫어하겠지. 그렇지만 저 크고 살찐 말은 스승님 한 분만 태우고 있잖아. 그러니 저 말에다 짐을 몇 가지 더 실어도 되지 않겠어?”
오공 : “넌 저것을 말이라고 생각하느냐? 저 말은 서해용왕 오윤의 아들 용마 삼태자야. 궁정에 있는 야광주를 불에 태웠기 때문에 옥황상제에게 아들을 불효자라고 상소한 건데 관음보살님 덕분에 목숨만은 구원받았지. 보살님께서 저것의 뿔과 비늘을 없애 버리고 한 마리의 백마가 되어 스승님을 태우고 서천으로 가도록 한 것이다. 이런 건 다 저마다 공덕에 따르는 거니까 부질없이 저 말을 의지해선 안돼!”
팔계 : “근데 형! 내가 듣기로는 용은 구름과 안개를 내뿜고 강과 바다를 뒤엎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던데 이 용은 왜 이렇게 걸음이 느린 거야?”
오공 : “그럼 잘 보아라. 내가 빨리 걷게 해 보일 테니.”
오공이 여의봉을 꽉 틀어쥐자 별안간 1만 자락의 아름다운 구름이 피어나는 듯싶었습니다. 용마는 그것을 보자 오공이 여의봉으로 자신을 치려는 줄 알고 질겁하여 네 굽을 안고 질풍간이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깜짝 놀란 삼장은 고삐를 꽉 붙잡고 움쭉달싹 못했습니다. 말은 벼랑 위로 껑충 뛰어올라서야 걸음을 늦추었습니다.
오공 : “스승님! 말에서 떨어지시지나 않으셨습니까?”
삼장 : “이 녀석아, 말은 왜 놀라게 해서 이 꼴을 당하게 하느냐?”
오공 : “저만 나무라실 게 아니라, 팔계가 말이 너무 늦게 걷는다기에 좀 빨리 걸려 본 것뿐입니다.”
팔계 : “이런 제길! 배가 고프고 짐이 무거워 죽을 지경인데 말까지 뒤쫓게 하고 있으니 이건 나를 놀리는 거 아냐?”
삼장 : “제자들아! 저쪽에 웬 정원이 하나 보이는구나. 우리 찾아가 하룻밤 묵어가기로 하자.”
삼장의 말에 오공이 그쪽을 바라보니 과연 공중에 상서로운 구름과 안개가 자욱이 서려 있었습니다. 오공은 그것이 부처나 신선들이 임시로 지어 놓은 것임을 첫눈에 알아보았으나 천기를 누설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공 : “예, 예, 그러지요. 하룻밤 신세를 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팔계 : “이 집은 상당히 부잣집인걸, 형 어서 들어가 보자.”
삼장 : “아니다. 우리는 출가한 사람들인 만큼 제각기 남의 의심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지. 여기서 기다리다가 사람이 나오거든 그때에 들어가도록 하자.”
그래서 팔계는 말을 비끄러매 놓고 담장 밑에 비스듬히 기대앉았고, 삼장은 돌북 위에 앉고 오공과 오정은 섬돌 위에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나와 주는 사람이 없자 오공이 살짝 대문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곳은 남향의 세 칸짜리 사랑방으로 창문마다 문발이 높다랗게 걷혀 있고 금빛 칠을 한 기둥에는 새빨간 종이에 춘련이 쓰여 있었습니다.
실버들 늘어진 다리 위에 날이 저물고
눈 속에 매화꽃 핀 정원에 봄빛 깃드네.
오공이 한창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한 중년부인이 나타났습니다.
부인 : “뉘신데 이렇게 마음대로 나같이 외로운 과부 집에 뛰어드신 거예요?”
오공 : “소승은 동녘 땅 당나라로부터 어명을 받고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가는 길입니다. 일행이 모두 네 사람인데 이곳을 지나던 길에 날이 저물어 하룻밤 묵어갈까 하고 찾아왔습니다.
부인 : “장로님! 다른 세 분은 어디 계세요? 어서 다들 들어오시도록 하세요.”
오공 : “스승님! 어서 들어들 오십시오.”
삼장은 그제야 오정에게 말을 끌리고 팔계에겐 짐을 들려 가지고 함께 들어섰습니다. 부인은 들어서는 세 사람을 보고는 기쁨에 겨워하며 손님들을 널따란 사랑방으로 청해 들였습니다. 그리고는 한 사람씩 차례로 인사를 나누며 자리를 권했습니다. 이윽고 병풍 뒤로부터 가랑머리를 땋아 늘인 소녀 하나가 황금쟁반과 백옥 잔에다 향기로운 차와 다과를 받쳐 들고 나왔습니다. 부인은 소매를 걷어 올려 봄 죽순같이 가늘고 긴 손으로 찻종을 집어 네 사람에게 일일이 차를 권한 뒤 저녁상을 준비시켰습니다.
삼장 : “존함은 어떻게 쓰시는지요? 그리고 이곳은 무어라고 하는 곳입니까?”
부인 : “여기는 서우하주라는 땅입니다. 저의 친정은 성이 가씨이고 시집은 성이 막가입니다. 저는 불행하게도 시집와서 곧 시부모를 잃고 남편과 함께 조상들이 물려놓은 가산을 지켜왔어요. 집에는 가산이 만 관이나 되고 기름진 전답이 천 마지기는 된답니다. 저희 내외는 어쩌다가 사내애는 없고 딸만 셋을 길렀는데 기구한 팔자라 몇 해 전에 남편마저 돌아가셨어요. 이제 우리 모녀에겐 재산만 있을 뿐 이 많은 가산을 상속받을 사람이 없답니다. 그러던 차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와주셔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어요. 보아하니 네 분은 사제지간이신 것 같은데 우리들 네 모녀가 데릴사위로 맞아들이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이군요. 그래 장로님, 장로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삼장 : “… 그러니까 음, 음… .”
부인 : “저희 집에는 8,9년을 먹어도 다 먹지 못할 알곡과 10년을 입어도 못다 입을 비단이 쌓여 있고 한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 돈이 많아요. 그러니만큼 비단휘장에 싸여 있고 미인들 속에 묻혀 있는 귀족 생활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을 거예요. 여러분께서 만약 이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오시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자유롭게 영화와 부귀를 한껏 누리시게 될 테니 고달픈 여행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어요?”
삼장 : “… 음, 음… .”
부인 : “저는 정해년생으로 올해 마흔다섯이고 큰 딸은 진진이라고 하는데 올해 스무 살, 둘째딸 애애는 열여덟, 막내딸 연련은 열여섯 살이에요. 모두 다 아직 혼처를 정하지 못한 형편이고, 보시다시피 저는 아무 재덕도 없는 몸이지만 다행히 딸들만은 인물이나 재주가 남에게 뒤지지 않아요. 비록 이런 산골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여러분들의 상대는 될 수 있을 거예요. 여러분께서 만일 마음을 돌이켜 머리를 기르시고 저희 주인이 되어주신다면 그런 질그릇이나 무명옷 그리고 짚신이나 삿갓을 쓰고 계시기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어요?”
삼장 : “… 음, 음… .”
팔계 : “스승님! 부인께서 이토록 간절한 말씀을 하시는데 스승님은 무엇 때문에 상대조차 않고 계십니까? 좋다든지 싫다든지 가부간 대답쯤은 하셔야지 않겠어요?”
삼장 : “에끼, 이놈아! 죄 많은 짐승 같으니! 우리는 출가한 몸이다! 어떻게 부귀에 마음이 움직이고 여색에 마음이 끌리겠느냐?”
부인 : “아이, 가련도 하시지! 출가한 사람에게 무슨 낙이 있다고 저러실까?”
삼장 : “어허 부인, 그럼 당신들 속인에게는 무슨 낙이 있습니까?”
부인 : “장로님 제가 우리 속인들의 낙을 이 시로 대신하지요.”
봄이면 방승 말라 새 비단옷 걸치고
여름엔 명주로 바꿔 연꽃구경 간다네.
가을이면 햇곡식에 향기로운 새 술이요.
사시장철 쓸 것들이 넉넉한데다
철따라 맛난 음식 수없이 많고
비단으로 자리 깔면 화촉의 밤
행각승의 고된 신세 어이 비하랴.
삼장 : “부인, 이 집에서 부귀와 영화를 마음껏 누리고 먹고 입는데도 부족함이 없이 자녀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좋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출가한 사람에게는 우리로서의 좋은 점이 있지요. 여기 이런 시가 있습니다.”
출가한 높은 뜻 굳게 다지고 은애로운 자기 집 떠나왔다네.
그 어떤 물욕도 시비도 없이 몸에는 오로지 음양만 남았네.
고덕이 차서 천자님 배알하고 밝은 마음 깨달아 고향으로 돌아가니
속세에서 피 묻은 음식 탐내다가 늙어서 빈털터리 되기보단 훨씬 나으리.“
부인 : “원 돼먹지 못한 중녀석이 무례하게도 구네. 당신이 만약 동녘에서 먼 길을 오지 않았던들 난 문밖으로 내쫓고 말았을 거요. 난 그래도 당신들을 생각해 데릴사위로 맞아들여 가산을 물려줄 생각이었는데 감히 나를 모욕하는 거요? 당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영원히 환속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하더라도 수하의 제자 하나쯤은 내 집에 남겨둘 수 있지 않겠소. 나 원 세상에 이런 고집불통이라니.”
이들은 과연 이 집에서 하룻밤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요?
--2023년 12월 16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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