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저팔계 유사하에서 크게 싸움을 벌이다-38회
삼장을 비롯한 세 사제가 재난에서 벗어나 황풍령을 넘어선 지도 어느덧 몇 개월이 지나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고 쓰르라미가 여기저기 시든 버들가지에서 울고 있는 어느 날 서쪽으로 흐르는 가을 별빛을 따라 걸음을 재촉하던 그들 앞에 끝간데 없는 큰 강물이 가로 놓여있었습니다.
삼장 : “애들아! 이 강은 이렇게 큰데 어찌 왕래하는 배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게냐?”
팔계 : “아닌게 아니라 물결도 사나운데 배가 없네.”
오공은 그들의 말에 공중으로 뛰어올라 손차양을 하고 멀리 내다보았습니다.
오공 : “스승님! 일이 아무래도 어렵게 됐어요. 이 오공 혼자라면 몸을 한번 흔들면 단숨에 날아 넘을 수 있겠지만, 강물의 너비만 해도 8백리는 너끈할 것 같은데 스승님으로서는 단연코 건너시지 못할 것입니다.”
삼장이 수심에 잠겨 말머리를 돌리려는데 강기슭의 표석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표석에는 전세체로 ‘유사하’라고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해서체로 네 줄의 글귀가 씌어 있었습니다.
8백리 유사의 경계
3천리 악수의 깊이
거위 털도 뜨지 못하고
갈꽃도 가라앉누나.
그들이 한창 비문을 보고 있는데 별안간 강 복판으로부터 산더미 같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끔찍한 요괴 하나가 뛰쳐나왔습니다.
새빨간 머리털 더부룩하게 흐트러졌고
화등잔 같은 두 눈 부릅떴는데
얼굴은 검지도 푸르지도 않고 목소린 우레같이 요란하다.
몸엔 싯누런 거위 털 허리엔 흰등 덩굴 둘렀으며
아홉 개의 해골을 목에 걸고 손에는 위엄 있는 보장 들었구나.
요괴는 돌개바람같이 물가로 달려 나와 다짜고짜 삼장을 채어가려고 했습니다. 다급해진 오공이 황급히 삼장을 안고 높은 둔덕으로 몸을 피하자. 팔계는 요괴를 향해 갈퀴를 휘둘러 댔습니다. 그러자 요괴는 보장으로 팔계의 갈퀴를 막으며 유사하 기슭에서 이들은 한 차례 치열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들이 무려 20합의 싸움을 벌였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자, 삼장법사와 말을 지키며 팔계가 싸우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오공은 궁둥이가 들썩거려 더 이상 앉아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공 : “스승님! 두려워 마시고 잠시만 앉아 계십시오. 제가 저놈을 좀 놀려보겠습니다.”
오공이 휘익 바람소리를 내며 앞으로 달려 나가자 마침 대치 상태에서 옥신각신하고 있던 요괴는 오공이 정수리를 향해 내리치는 여의봉을 피해 급히 강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팔계 : “형! 누가 와 달랬어? 요괴가 마침 기운이 빠져 내 갈퀴를 당해내지 못하던 참인데. 에잉, 애석하다. 이제 서너 합만 더 싸우면 그놈을 사로잡을 수 있었단 말야. 그런 걸 형 때문에 놓쳐버렸잖아. 에잇! 분해 죽겠네.”
오공 : “핫하하하하. 내 아우 팔계야! 실은 이 형님이 황풍괴를 항복시킨 뒤로는 이 여의봉을 써보지 못했구나. 그래 네가 싸우는 것을 보니 손발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놈이 줄행랑을 치더구나. 일단 스승님께 가보자.”
삼장 : “요괴는 어찌 됐느냐?”
오공 : “그놈이 이 여의봉을 보자 놀라서 물속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삼장 : “놓쳤단 말이지. 그놈은 여기서 사는 놈이니 이 강물에 익숙할 게다. 그런데 우린 배 한 척도 없는 형편이니 어떡하든 이 강에 익숙한 길잡이라도 하나 구해야 할 것 같구나.”
오공 : “옳은 말씀입니다. 그놈은 반드시 이 강물에 익숙할 겝니다. 그러니 그놈을 잡아 죽이기 전에 먼저 그놈더러 스승님을 안전하게 건너드리게 한 다음 처치하던지 하겠습니다.”
팔계 : “형! 스승님은 내게 맡기고 어서 그놈부터 잡아오셩.”
오공 : “팔계야! 이번만은 내가 큰소릴 못 치겠다. 난 물에서만은 자신이 없어. 이 형님이 하늘이나 산에서라면 맘껏 신통력을 부리겠는데 물속만은 안돼.”
팔계 : “난 전에 은하수의 총독으로 8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물에는 자신이 있어. 다만 수족들이 많아서 그것들이 한꺼번에 달려 들까봐 걱정이셩.”
오공 : “그럼 물속에서 그놈하고 싸울 때 오래 싸우지 말고 지는체 하면서 그놈을 물 밖으로 끌고 나오거라. 그 다음에 내가 맡아서 처리할 테니.”
팔계가 직철과 신을 벗고 두 손으로 갈퀴를 휘저으며 물길을 헤치고 강바닥으로 내려가자 요괴는 보장을 비껴들고 팔계 앞을 막아섰습니다.
팔계 : “네 놈이 무슨 요물이기에 이 어르신의 길을 방해하고 있는 거냐?”
요괴 : “난 요물도 마귀도 아니다. 내 이력이나 한 번 들어봐라.”
내 어릴 적부터 신기가 왕성해 일찍이 하늘땅 만리에 놀아났었고
영웅으로 천하에 이름 드날리며 호걸로서 사람들 본보기 되었네.
내 도 닦아 수행하고자 스승 찾아 온 천지 돌아다녔고
그 덕에 진인 한 분 만나게 되어 큰길 헤쳐 밝은 빛 찾게 되었네.
3천의 공덕이 차서 옥제를 뵙고 진심의 예를 올려 성지에 이르렀네.
옥황상제 벼슬을 올려줄 제 몸소 권렴장군 봉해 주었으니
남천문 안에서는 내가 제일이요. 영소보전 앞에선 내가 으뜸이라
어가를 지켜 이 몸이 앞장에 섰고 옥황 따라 대궐엔 남 먼저 들어갔지
왕모께서 요지에 반도회 열어 천궁의 선경들을 모두 청할 제
이 몸이 실수로 옥 유리 깨뜨렸더니 옥황께서 대로해 좌보필에 넘겨
내 벼슬 잃고 단두대에 끌려나왔네. 다행히 적각대선의 구원을 받아
매만 맞고 유사하로 쫓겨났네. 배부르면 물밑에 잠들어 있고
배고프면 밖에 나와 먹이를 찾네. 초부도 어부도 오가는 행인도
나를 만나 생죽음 당하는데 저절로 내 집에 굴러들어 왔으니
오늘도 먹을 복은 있나 보구나. 거친 음식 목멘다 타박 말고
잡아서 초장 찍어 맛을 보리라!
팔계 : “이 고약한 놈 같으니! 누굴 초장 찍어 먹는다는 거냐? 이 갈퀴 맛이나 봐라.”
팔계가 갈퀴로 힘껏 내리치자 요괴는 봉점두라는 술법으로 몸을 살짝 피했습니다. 이렇게 둘은 물속에서 한바탕 치열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권렴장인 요괴와 천봉수 저팔계가 겨룬 신통력은 대단해서 솟구치는 물결이 산천을 뒤흔들고 밀어올린 검은 물결로 사방이 순식간에 캄캄해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두어 시간 좋이 싸웠지만 둘은 좀처럼 승부를 가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실로 용과 범이 서로 어울려 싸우는 것 같았습니다. 오공은 삼장 곁에 붙어서 이제나저제나 하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팔계가 갈퀴를 들어 한번 헛손질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 강가를 향해 줄달음쳐 오고, 그 뒤를 요괴가 바싹 뒤쫓아 왔습니다. 요괴가 기슭에 거의 닿으려는 순간 오공은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여의봉을 휘두르며 요괴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요괴는 기운이 꺾여 또다시 풍덩 물속으로 숨어들고 말았습니다.
팔계 : “야, 이 필마온이 성질이 되게 급하네. 조금만 더 참았으면 내가 좀 더 높은 데로 유인했을 것 아녀? 그때 형이 그놈의 뒷길을 잘라버리면 영락없이 붙잡을 수 있었을 텐데. 또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언제 또 나오겠어?”
오공 : “이놈아. 그만 떠들고 어서 스승님께 가보자,”
삼장 : “너희들 수고가 많구나!”
팔계 : “수고랄 게 있습니까? 어서 요괴를 잡고 스승님께서 저 강을 건너셔야 시름이 놓일게 아닙니까?”
삼장 : “그래. 요괴는 잡았느냐?”
오공 : “스승님. 요괴는 아직 잡지 못했습니다만 염려 마십시오.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잠깐 이 벼랑 밑에 앉아 쉬시면 제가 공양을 얻어오겠습니다.”
팔계 : “형! 옳은 말이야. 어서 갔다가 빨리 돌아오셩.”
오공은 근두운을 잡아타기가 무섭게 이내 나물밥 한 그릇을 얻어다 삼장에게 올렸습니다.
삼장 : “오공아! 이렇게 빨리 다녀온 것을 보니 그 집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가 본데 그 주인에게 강을 건널 방법을 물어오는 게 어떻겠느냐?”
오공 : “그 집은 여기서 5, 6천리는 떨어진 아주 먼 곳에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물에 익숙할 리도 없겠고 물어봤자 소용없는 일입니다.”
팔계 : “형이 또 허풍이셩. 어떻게 5,6천리나 되는 길을 그리 빨리 다녀 올 수 있담.”
오공 : “팔계야! 이 형님의 근두운은 단숨에 10만 8천리를 갈 수 있단다. 그깐 5, 6천리 같은 건 허리를 한번 굽히는 시간이면 충분하지.”
팔계 : “형!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형이 스승님을 업고 단숨에 이 강을 건너가면 될게 아녀? 구태여 저따위 요괴놈과 옥신각신할 게 없잖아?”
오공 : “팔계야, 넌 구름을 탈 줄 몰라서 그러느냐? 근두운도 역시 구름을 타기는 마찬가지야. 빨리 멀리 갈 수 있다 뿐이지. 옛날부터 태산을 옮기는 데는 겨자씨처럼 가벼울 수 있어도 사람을 끼고서는 홍진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단다. 더구나 스승님께선 많은 나라를 몸소 지나시지 않으면 진짜 고해를 초탈할 수가 없기 때문에 걸음마다 아주 힘들게 되는 거야. 그러니 우린 스승님을 받들고 안전을 보장해 드릴 수는 있어도 그 괴로움을 대신 할 수 있거나 경을 대신 가져다 드릴 수는 없는 것이다.”
팔계 : “형 말이 맞아.”
이윽고 그들은 찬 없는 찬밥을 먹고 나서 유사하 동쪽 기슭의 벼랑 밑에서 하룻밤을 샜습니다.
이들은 과연 요괴를 잡고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을 기대하세요.
-2023년 12월 8일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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