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삼장법사 황풍령에서 납치되다-34회
[SOH] 지난 시간 고태공의 집을 나선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는 한 달 가량 여행을 계속한 끝에 어느 험준한 산봉우리 앞에 멈춰 섰습니다.
삼장 : “애들아, 저 앞산이 몹시 준엄한 걸 보니 조심들 해야겠다.”
팔계 : “염려 마세요. 저 산은 부도산이라 하며 오소선사가 수행하고 계십니다.”
삼장법사가 말 위에서 내다보니 향기로운 전나무 위에 삭정이와 풀로 지은 둥우리가 있고, 그 한편엔 사슴이 꽃을 물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엔 원숭이가 손에 과일을 받쳐 들고 있었습니다. 그들 세 사람이 둥우리 앞으로 가자 선사는 나무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삼장이 말에서 내려 공손히 인사 하는데 선사는 급히 삼장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선사 : “아, 이러지 마십시오.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삼장 : “선사님. 서천의 대뢰음사는 어디쯤 있는지요?”
선사 : “아직 멀었습니다. 길이 먼 것이야 언제가 가 닿는 날이 있겠지만 요괴들의 장애만은 피할 길이 없을 겁니다. 나에게 ‘마하반야밀다심경’ 한 권이 있는데 모두 2백 70자로 되어 있습니다. 요괴의 장애에 부딪힐 때마다 이 경문을 읽게 되면 몸은 상하지 않으리다. 내 그것을 외워 줄 테니 잘 들으시오.”
삼장법사는 근기가 좋아 귀로 한 번 듣는 것만으로도 ‘마하반야밀다심경’을 전부 외울 수 있었습니다. 이 심경은 오늘까지도 세상에 널리 전해지고 있습니다. 선사가 경문을 전하고, 구름빛을 밟고 둥우리로 올라가려하자 삼장법사는 급히 선사를 붙들고 끈덕지게 서천으로 가는 노정을 캐물었습니다.
선사 : “허허허. 그럼 내 대답하리다.
길이야 갈 수 있겠지만 내 당부 들어둠도 나쁘지 않으리.
산은 높고 물은 깊어 가는 곳마다 독기와 요괴 많으리니
가파른 절벽 만나면 두려워 말고 마이암에 이르거든
옆길로 지나가고 흑송림 지날 적엔 요사한 여우 조심하라.
요정들 성안에 우글거리고 마왕들 산속에 가득찼네.
멧돼지가 멜대를 메었으니 앞길에 수중 요괴 만날 거고
오래 묵은 돌원숭이 거기서 화를 내리니 만일 그에게
물어본다면 서천으로 가는 길 알게 되리.
오공 : “흥, 스승님 어서 갑시다. 저따위 인간에겐 물을 것도 없습니다. 저에게 물어보면 그만인 걸 가지구.”
삼장이 미처 오공의 말뜻을 알아차리기 전에 선사는 어느새 금빛으로 변해 둥우리로 날아 올라갔습니다. 화가 난 오공이 여의봉으로 둥우리를 마구 쑤셔대자 곧 일만 송이 연꽃과 일천 층의 아름다운 구름이 생겨났습니다. 오공이 제아무리 신통력이 있대도 둥우리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삼장 : “오공아! 고마운 선사님의 집을 너는 왜 못쓰게 만들려는 게냐?”
오공 : “저놈은 우리 두 형제에게 욕을 퍼붓고 달아났단 말입니다. 저놈이 ‘멧돼지가 멜대를 메었다고 한 것은 팔계를 욕한 거고, ‘오래 묵은 돌원숭이’라고 한 것은 이 오공을 욕한 겁니다. 고매하신 스승님께서 아실 리가 있겠습니까?”
팔계 : “형! 좀 참어. 저 선사는 과거와 미래의 일들을 잘 볼 수 있어. 앞길에 수중 요괴를 만나리라 했는데 정말일지도 모르잖아? 그만하고 가자.”
오공은 연꽃과 상서로운 안개가 둥우리 주위에 자욱한 것을 보고는 그제야 삼장을 말 위에 태우고 산을 내려 서쪽을 향해 길을 다그쳤습니다.
한 수의 게에 이르기를,
불법은 본래 마음에서 생겨 또한 마음 따라 사라지네.
생기고 사라짐이 무엇 때문이냐? 그대여, 스스로 가려내 보라.
수행이 이왕 자기 마음에 달렸다면 구태여 남이 말해서 무엇하랴?
오로지 힘에 겨운 노력만이 쇳덩이에서도 피를 짜내리라.
노끈으로 콧구멍 꿰어 공허의 매듭을 지어 놓으라.
무위나무에 고삐를 매면 함부로 날뛰지 못하리니
도적을 친구로 삼지 말고 모든 욕망 깡그리 쓸어버리라.
그가 나를 속이기 전에 한 주먹 먼저 안기라.
지금의 유심은 무심과 같고 오늘의 불법도 언젠가는 그치리.
자기의 소가 아니 보일 때. 푸른 하늘은 깨끗해지리.
가을 달은 한결같이 둥글어 서로들 가려내기 어렵구나.
이 한편의 게에서 삼장법사는 ‘다심경’을 속속들이 깨닫게 되었고 수행의 묘리를 완전히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그는 늘 ‘다심경’을 외워서 가슴 깊이 간직해 두었는데 그것은 마치 한 점의 영광이 마음속에 비쳐진 것과 같았습니다. 그들 세 사람은 길에서 풍찬노숙을 해가며 고된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되었습니다. 이날도 종일토록 걷다가 날이 저물었는데 길가에 농가가 하나 있었습니다.
삼장 : “오공아! 저길 보아라. 서산은 노을이 물들고 달이 동해로부터 얼굴을 내밀고 있구나. 다행히 저쪽에 인가가 보이니 하룻밤 신세를 지자꾸나.”
팔계 : “옳으신 말씀이셔. 전 벌써부터 배가고파 죽을 지경이셩. 어디에서든 밥이라도 얻어먹어야 힘이 나서 짐을지셩.”
오공 : “웬 푸념이냐? 너 집 생각이 나서 그러지?”
팔계 : “난 셩처럼 바람이나 연기를 마시고는 못살어. 스승님을 따라나선 뒤부터 며칠째 굶주림을 참고 있는 내 심정을 형이 알기나 하셩?”
삼장 : “팔계야, 집 생각을 그렇게 간절히 하고서야 어떻게 출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차라리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
팔계 : “스승님! 그건 형이 저를 헐뜯어서 한 말입니다. 전 워낙 성미가 곧은 사람이라 배가 고파 밥이라도 얻어먹고 싶다고 한 것뿐입니다. 전 보살님의 가르침을 받았고 지금은 스승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만큼 끝까지 스승님을 모시고 서천으로 가고 싶습니당. 어째서 출가한 사람 같지 않다고 하십니까?”
삼장 : “정말 네 맘이 그렇다면 어서 앞장서거라.”
팔계는 더는 군소리 없이 짐을 짊어지고 터벅터벅 앞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이윽고 농가에 이르러 삼장이 말에서 내리자 팔계는 짐을 내려놓고 그늘로 비켜섰고, 삼장은 구환석장을 짚고 어깨에 망토를 걸친 채 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문 안에서는 한 노인이 참대로 만든 침상에 기대앉아 구시렁구시렁 염불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삼장 : “시주님! 안녕하십니까?”
노인 : “아, 장로님! 어서 오십시오. 그런데 무슨 일로 이 누지를 찾아오신 겁니까?”
삼장 : “소승은 동녘땅 당나라 사람으로 어명을 받들고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가는 길입니다. 때마침 해도 저물어 하룻밤 신세를 질까해서 찾아왔습니다.”
노인 : “못가십니다. 서천으로 가서는 경을 구하기 어려울 겁니다. 꼭 경을 구할 생각이라면 서천말고 동천으로 가십시오.”
삼장 : “보살께서는 서천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노인은 어째서 동쪽으로 가라는 것일까? 동쪽에 무슨 경이 있단 말인가…?”
오공 : “이봐 영감! 우리 출가한 사람이 먼 데서 숙소를 빌리러 왔으면 얼른 잠자리나 내 줄 것이지 무슨 그따위 허튼 소릴 하는 게요?”
노인 : “스님! 스님은 아무 말씀도 않고 있는데 왜 저 볼이 훌쭉하고 눈이 빨간데다 털복숭이 상통인 제자가 함부로 야료를 부리는 겁니까?”
오공 : “이 영감탱이가 입을 함부로 놀리구 있네. 내 비록 못생긴데다 체통까지 작긴 하지만 퍽 건강하고 살가죽 속엔 맨 힘줄이 들어차 있단 말요.”
노인 : “글쎄 얼마간 수단이야 있겠지. 그런데 자넨 왜 중노릇을 하는게야?”
오공 : “이 손어르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로지 내 실력으로 천궁에서 제천대성이란 벼슬까지 얻었는데 다만 천록을 받지 못했기 땜에 천궁을 분탕쳐서 화를 입었던 거요. 지금은 재난에서 벗어난 몸이라 불문에 귀의해 정과를 얻으러 가는 길이오.”
노인 : “허허허, 알고 보니 빈 주둥이만 까고 다니는 화상이구먼. 어쨌거나 그만한 솜씨가 있다면 서천에는 얼마든지 가고도 남겠네. 그래 일행은 얼마나 되나? 어서 들어와 쉬고 가도록 하게.”
삼장 : “고맙습니다. 우리 일행은 세 사람입니다.”
노인 : “다른 한 분은 어디 있는게요?”
오공 : “영감은 정말 눈이 먼 게로군. 저 나무그늘에 서 있잖아.”
노인 : “아이구, 문 닫아라! 문 닫어! 도깨비 도깨비가 왔다!”
오공 : “노인장, 겁낼 것 없소. 저건 도깨비가 아니라 내 동생이오.”
노인 : “아, 아 그렇소? 어쩜 그렇게들 하나같이 못나게 생겼소?”
팔계 : “노인장! 생김 같고 사람을 평가하는 건 큰 잘못이셩. 우린 이래봬도 다 쓸모 있는 사람이셩.”
오공 : “바보 같으니. 허튼소리 그만하고 어서 그 보기 싫은 몰골이나 감추도록 해라.”
삼장 : “원 녀석두! 용모는 타고난 것인데 어떻게 감출 수 있단 말이냐?”
오공 : “그 갈퀴 같은 주둥이는 가슴에다 꺾어 붙이고 부채 같은 귀는 뒤통수에 딱 붙여 펄럭이지 않게 한다면 조금은 허물이 감춰질 거야.”
팔계는 정말 오공의 말대로 귀와 입을 갖다 붙이고 색시처럼 얌전하게 한옆에 서 있었습니다. 그동안 오공은 짐을 방 안에 들여다 놓고 말을 끌어다 말뚝에 매어 놓았습니다.
삼장 : “그런데 시주님, 아까 서천으로 가서는 경을 구하기 어려울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까닭인지요?”
노인 : “그건 말이요. 가는 길이 워낙 험악해서 한 말이요. 여기서 서쪽으로 30리 쯤 가면 둘레가 8백리나 되는 황풍령이란 산이 있는데 산속에 요괴가 많아 그곳을 지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까 이분의 말을 들어보면 이만저만한 솜씨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으니 잘하면 지나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오공 : “요괴, 요괴 같은 건 대수롭지 않소. 이 오공이 있고 나의 이 사제가 있는 한 어떤 요괴도 감히 우리한테 달려들지 못할 거요.”
팔계 : “그럼 그럼 헝헝...”
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노인의 아들이 저녁상을 차려놓고 이들을 접대했습니다. 팔계는 고개도 쳐드는 법 없이 연달아 열 몇 그릇을 게눈감추듯 해치워 버렸습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세 사람은 간단히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을 꾸리어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노인 : “가시는 길이 순탄치 않으시면 다시 여기로 되돌아와 주십시오.”
오공 : “노인장. 그따위 어리석은 소린 하지도 마시오. 우리 출가한 사람들은 지나온 길로 되돌아가는 법이 없소.”
이들이 반나절도 채 가지 않았는데 눈앞에 높은 산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삼장이 말 위에서 몸을 뒤로 젖히고 올려다보니 산은 실로 험준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황풍령을 잘 지나칠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을 기대하세요.
-수정 2023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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