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고로장의 요괴 사위-32회
[SOH] 관음원을 떠난 삼장법사와 오공이 다시 고달프고 쓸쓸한 여행길에 오른 지 5, 6일 되던 날 저녁이었습니다.
오공 : “스승님 저기 마을이 보이는데 제가 가서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마을 어귀 대나무 무성하고,
촘촘히 들어선 집집마다 나무울타리 하늘 높이 솟았구나.
마을 앞엔 맑은 냇물 굽이쳐 흐르고 길가엔 실버들 한 줄로 늘어섰네.
뜨락마다 만발한 백화, 꽃향기 풍겨오고, 해는 마침 서산에 기울어 저녁연기
서서히 피어오르는데 막걸리에 거나해진 마을 영감 콧노래 부르며 돌아가는구나.
오공 : “스승님, 아주 평화로운 동네 같으니 하룻밤 묵어가도 좋을 듯합니다.”
삼장법사와 오공이 말을 재촉해 마을 어귀에 이르렀을 때 마침 무명저고리를 입은 한 젊은이가 다급한 걸음걸이로 동구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오공은 얼핏 그들을 스쳐가는 젊은이의 옷소매를 덥석 붙잡았습니다.
오공 : “말 좀 물읍시다. 이곳 동네 이름이 뭐요?”
젊은이 : “마을에 나 말고 사람이 없소? 왜 하필 바쁜 나를 붙잡는 거요?”
오공 : “시주님! 남의 편리를 봐주면 그 보답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말도 있지 않소? 마을 이름 알려주는게 뭐 그리 대수요? 또 누가 알겠소? 젊은이의 근심쯤 내가 단번에 풀어줄지.”
젊은이 : “제기할! 이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주인 잔소리도 지긋지긋한 판에 또 무슨 까까중까지 귀찮게 구는 거야?”
오공 : “허허허 이봐, 젊은 양반! 내 손아귀를 풀어낼 수 있다면 그냥 보내주지. 아니면 대답을 해야 할걸.”
삼장 : “얘야! 오공아, 그만 그 사람을 놔 주어라. 저기 사람이 오고 있지 않느냐? 저 사람에게 물어보자.”
오공 : “사부님은 이 재미를 모르시죠? 이게 바로 흥정이라는 겁니다. 곧 대답을 듣게 될 겁니다.”
젊은이 : “내가 졌소. 이 마을은 태반이 고씨 성이기에 고로장이라 하오. 자, 이제 나를 놔 주시오.”
오공 : “차림새로 보아 먼 길을 가는 것 같은데 사실대로 말한다면 놓아주겠소.”
젊은이 : “허참 어디서부터 이야기할까요? 내 내력부터 이야기 할까요? 내 이름은 고재고 고태공의 머슴으로 있소. 주인댁에는 스무 살 난 막내딸이 있는데 3년 전에 불한당 같은 요괴 놈에게 빼앗겼소. 그놈은 주인댁에 들어와 살면서 사위 대접을 안 해준다며 벌써 6개월째 막내딸을 골방에 가두고 바깥 구경은 커녕 식구들과도 못 만나게 하고 있소. 그래 주인은 나더러 요괴를 잡아 없앨 수 있는 법사를 찾아오라기에 이렇게 줄곧 나돌아 다니고 있는 거요.”
오공 : “자넨 운수가 좋군. 덕분에 나도 일거리가 생겼네. 이거야말로 매부 좋고 누이 좋다는 거지. 어서 가서 너희 주인에게 알려라. 명성 있는 법사를 모셔왔다구.”
젊은이 : “농담마슈! 누구 쫓겨나는 꼴을 보려고 그러우. 그동안 서너 번 이름있다는 도사나 법사들을 청해봤지만 모두 도로아미타불이었단 말이오. 그럴 때마다 나만 욕을 바가지로 먹고, 그날로 은자 몇 냥을 여비로 받아 다시 영험한 법사를 찾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녀야 한단 말이오. 자, 이제 더 이상 남의 걸음 축내지 말고 나를 풀어주시오.”
오공 : “이봐! 귓구멍 활짝 열어놓고 내 말을 명심해 듣거라. 이분은 동녘 땅 천자님의 어제인 성승으로 어명을 받들고 부처님을 찾아 천축으로 경을 가지러 가는 길이지만 요괴를 잡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 그러니 더 이상 허튼 걸음하지 말고 우릴 주인댁에 안내하게.”
젊은이 : “이제 이 팔은 그만 놓아주고, 두 분께서는 잠깐 밖에서 기다려 보슈. 내 먼저 주인께 아뢰고 나올 테니.”
고태공 : “이 천지 같은 놈아! 왜 그새 되돌아 온 거냐?”
젊은이 : “주인님! 동녘 땅 천자님의 어명으로 천축으로 경을 가지러 가는 성승을 모셔왔습니다.”
고태공: “그렇게 먼데서 온 분들이라면 실력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래 그분들은 어디 있느냐?”
젊은이 :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태공 : “장로님! 이렇게 찾아주셔서 정말 고맙소이다.”
오공 : “왜 이 오공과는 인사도 않는거요?”
주인 : “이놈아! 넌 나를 곯려 죽일 작정이냐? 그러잖아도 집안에 꼴불견인 사위가 있어 이 애를 태우는데 어째서 또 이렇게 뇌공같이 생긴 자를 데려온 거냐?”
오공 : “노인장! 난 생김새는 추하게 생겼어도 실력만은 상당하오. 오늘 내가 요괴를 잡아 따님을 구해드리기만 하면 될 게 아니오? 그러니 얼굴만 보고 이러쿵저러쿵 하지마쇼.”
고태공 : “내가 실례를 했나보오. 자, 안으로 들어갑시다.”
오공 : “자, 이제 그 요괴 놈의 내력과 수단에 대해 좀 자세히 알려주시오. 그래야 내가 그놈을 쉽게 잡아 눕힐 테니까.”
고태공 : “이 늙은 몸은 불행하게도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을 두었지요. 두 애들을 시집보내고 막내딸인 취란만은 데릴사위를 얻어 노년에 의지해 살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 전 멀쑥하게 생긴 위인이 찾아와 자기는 복릉산에서 왔고 성은 저가며 부모형제도 없는 홀몸이라 데릴사위가 되는 게 소원이라는 거였소. 그래서 전 그를 사위로 맞았고 그놈도 처음엔 놀라울 정도로 부지런히 일을 하더군요. 한 가지 끔찍한 것은 이놈이 자기 얼굴을 마음대로 둔갑시킨 다는 거였습니다.”
오공 : “어떻게 둔갑을 합디까?”
고태공 : “처음 왔을 땐 흠이라면 살결이 좀 검다 싶었는데, 후에 보니 귀가 크고 입이 뾰족하며 목덜미에 말갈기 같은 털이 있는 게 꼭 돼지 같은데다 먹새는 얼마나 대단한지 아침 한 끼에 기름떡을 백여 개는 먹어야 성이 찬답니다.”
삼장 : “일을 잘하는 만큼 먹기도 잘하는 거겠지요.”
고태공 : “먹새는 그렇다 쳐도 이놈이 요새는 바람을 일으키는 재주까지 알아가지고는 돌과 모래를 마구 날려대는 통에 우리는 물론 이웃들까지도 폐를 입고 있습니다요. 게다가 취란을 뒷방에 가둬두고 반년이 되도록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으니, 지금 그 애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오공 : “노인장! 이제 안심하시오. 오늘 밤 내가 그놈을 잡아 이혼장에 도장을 찍게 하고 따님을 되찾아 드릴 테니 어서 그 방으로 나를 안내하시오.”
오공이 문 앞에 이르러 살펴보니 문에는 구리로 만든 자물쇠가 단단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오공은 제풀에 화를 내며 여의봉으로 내리쳐서 자물쇠를 부수고 문짝을 열어젖히니 방안은 먹물을 뿌린 듯 깜깜했습니다.
오공 : “노인장, 따님을 소리쳐 한번 불러보시오.”
고태공 : “애, 셋째야!”
딸 : “아버님, 저 여기 있어요.”
오공이 금빛 눈을 깜박이며 어둠 속을 더듬어보니
구름머리 쑥밭 같고 여윈 얼굴 때투성이
일편춘심 여전하나 여린 자태 가냘프다.
앵두 입술 핏기 없고 가는 허리 끊어질 듯
두 눈썹에 수심어려 소리조차 가늘구나.
딸은 엉금엉금 기다시피 다가와 고태공에게 매달려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오공 : “이봐! 울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 요괴 녀석은 지금 어디가 있는 거지?”
딸: “모르겠어요. 요새는 날이 새자마자 나갔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오곤 해요. 구름과 안개에 싸여 오가기 때문에 행방을 통 알 수가 없어요. 게다가 아버지가 자기를 쫓아 버리려는 것을 알고는 여간 조심하는 게 아녜요.”
오공 : “알겠소. 노인장, 먼저 따님을 데리고 가서 그동안 쌓였던 회포나 푸시오. 난 여기서 그놈을 기다릴 테요.”
고태공이 딸을 데리고 가자 오공은 곧 몸을 한번 부르르 떨더니 취란의 모습으로 변해 방안에 들어가 다소곳이 앉아있었습니다. 이윽고 삼경이 되자 한 자락의 바람과 함께 자갈과 먼지가 공중으로 휘말려 올랐습니다.
처음엔 살금살금 흔들흔들 나중엔 달강달강 덜겅덜겅
살큼살큼 한들한들 세상은 넓으니 달캉달캉 아무런 거칠게 없누나.
꽃, 가지, 버들을 새겨 넣듯 거친 얼굴도 맘대로 되는데
뿌리 뽑힌 채소처럼 넘어진 나무와 꺾인 숲인들 어떠하랴.
귀신도 근심할 만큼 대단한 기세라.
뒤미처 공중으로부터 한 마리의 요괴가 나타났습니다. 과연 듣던 그대로 흉측하게 생긴 몰골에 칙칙한 무명 직철을 걸치고 허리에는 꽃무늬가 진 무명수건을 두르고 있는 폼이 여가 꼴불견이 아니었습니다.
오공 : “흥 별놈의 꼴을 다 보는군!”
요괴 : “여뽕, 자 이루 와 우리 이쁜이 뽀뽀 뽀뽀”
오공 : “아이, 왜 이리 체신머리 없이 입부터 맞추려 드는 거예요?”
요괴 : “여보! 왜 갑자기 뾰로통해진 거요? 내가 좀 늦게 돌아와서 그러오?”
오공 : “당신은 참 느긋하기도 하네요. 오늘 아버지가 법사를 데려다 당신을 잡겠다며 요괴 사위가 우리 집 가풍과 명예를 손상시켰다며 마구 줄 욕을 해댔단 말예요.”
요괴 : “걱정말구 자기나 하자구, 난 서른여섯가지 둔갑술을 알고 있고 아홉 이빨이 달린 갈퀴를 가지고 있으니까 법사나 도사가 아니라 구천의 탕마조사를 불러온대도 난 걱정할 필요가 없어. 그와 나는 잘 아는 사이라 나를 어쩌진 못할 거야.”
오공 : “아버지 말씀이 5백 년 전에 천궁을 떠들썩하게 했던 손 무언가 하는 제천대성을 청해 다가 당신을 붙잡는다고 하던데요.”
요괴 : “그 말이 정말이요? 난 그만 가봐야겠소. 우리의 부부의 인연도 여기서 끝장이구료.”
오공 : “아니 갑자기 어딜 가시겠다는 거예요?”
요괴 : “천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필마온을 감당할 자는 별로 없어. 운 사납게 그놈과 붙었다간 내 명성만 떨어질 테니 그 수치를 당하느니 차라리 빨리 피하는 게 낫겠소.”
오공 : “이 요괴 놈아! 어딜 가겠다는 거냐? 어디 내가 누구인지 그 눈으로 똑똑히 보거라.”
그가 손오공인 것을 알고는 간이 콩알만 해진 요괴는 후다닥 오공의 손을 뿌리치고는 한 자락 바람이 되어 도망쳤습니다. 오공이 급히 따라가 여의봉으로 내리치자 요괴는 천만 갈래의 불빛으로 변해 자기의 소굴로 사라져 갔습니다.
오공은 과연 그를 잡을 수 있을까요?
--2023년 10월 21일 수정-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