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장경악이 이룬 업적에 비해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허준과 비슷한 시대의 인물로 허준의 역작 동의보감에 장경악의 학설과 처방이 실릴 수 없었던 이유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장경악의 진단법과 처방은 현대 중의학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각에서는 장경악의 진단방법이 현대 중의학 진단 기준의 70~80%를 차지했다고도 합니다. 처방도 아직 많이 쓰이고 있어 중의학 처방 60%는 장경악 처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장경악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학풍을 추구했고, 과감하고 분명한 논조로도 유명합니다. 비슷한 사례로 체질의학의 창시자인 조선 후기 이제마(李濟馬)가 있습니다. 이제마는 무인 출신으로 기존의 학문을 참고하되, 비판할 부분은 비판하면서 사상 의학이라는 한국 특유의 의학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는 과단성 있고 실증적이며 논리적인 인물로서 무인 출신의 장경악과 이제마의 모습은 서로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당시 의사들 사이에 장경악은 장숙지(張熟地)로도 불렸습니다. 장숙지는 장경악이 숙지황(熟地黃)이라는 약재를 즐겨 썼기 때문에 붙은 별명입니다. 숙지황은 음(陰)이 허할 때 보하는 대표적인 약재로 현재 한의학계에서도 많이 쓰이는 것 중 하나입니다.
장경악은 온보(溫補)파의 대표주자입니다. 온보파는 신체의 음기를 보하기 위해 차가운 성질의 약을 주로 사용한 한량(寒凉)파의 상반된 의미로도 볼 수 있는데, 장경악은 자신의 저서. '경악전서(景岳全書)'에서 한량파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장경악은 모든 활동의 근본이 양기임을 강조했으며, 양기의 바탕이 되는 음기 또한 보해야 함을 설파했습니다.
한량파도 음기를 중요하게 봤다는 점에서 상통하는 점이 있지만, 장경악은 따뜻한 성질을 가진 약재를 활용해 음기를 보충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숙지황이 포함된 처방입니다. 숙지황은 생지황을 아홉 번 쪄서 말린 것으로 생지황이 차가운 약재인 데 반해, 숙지황은 따뜻한 성질을 가지면서도 음기를 보충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장경악이 온보파의 대표주자로서 양기를 보하는(이를 위해 음기를 보하는 것도 강조했다.) 따뜻한 성질을 가진 약물을 주로 사용했지만, 차가운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차가운 약물은 온도가 낮다는 뜻이 아니라, 복용했을 때 체온을 낮추거나, 설사하는 등 아래로 기운이 내려가게 하는 진정과 하강 작용을 하는 약물을 말합니다. 따뜻한 약물은 반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장경악이 명나라 소흥 지방을 지날 때 일화입니다. 한 아이가 쇠못을 삼켜 토해도 소용이 없고, 코피를 심하게 흘리고 있었습니다. 당대 명의로 이름 높았던 장경악을 알아본 아이의 부모는 치료를 부탁했습니다. 장경악은 망초라는 약재를 구해 오게 한 뒤 자석, 돼지기름, 꿀 등을 배합해 복용하게 했습니다.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못을 대변으로 배설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사용한 망초는 설사하게 하는 차가운 성질의 약재이지만, 장경악은 상황에 따라 이런 약재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의사였습니다.
중국의 역대 의사들은 황제내경을 필두로 하는 원서를 토대로 시대에 맞는 이론과 처방을 개발했고, 다음 시대의 의사는 전 시대의 이론과 처방을 연구하고 비판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발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장경악은 경악전서의 한 부분인 전충록(傳忠錄) 양부족론(陽不足論) 편에서 자신의 주장을 충분히 설파한 뒤 말미에 '이것 또한 편벽된 견해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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