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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천재 의사 섭천사(上)

편집부  |  201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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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섭천사(葉天士)

[SOH] 섭천사(葉天士)는 청대를 대표하는 천재 의학자로 이름은 계(桂)이고 호는 향암(香岩)입니다. 그는 강희(康熙) 6년 청대의 전성 시기에 소주에서 태어났으며, 건륭제 통치 기간까지 활동하면서 출중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섭천사의 집안은 의학 명문가로 조부의 이름은 시(時)이며 자(字)는 자범(紫帆)으로, 소주에서 명성 있는 소아과 전문의였습니다. 의술이 뛰어날 뿐 아니라 환자의 귀천을 가리지 않았고,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무료로 약을 지어주는 덕을 베풀었으며, 지극한 정성으로 환자를 보살폈습니다. 당시 섭씨의 명성과 인덕은 소주 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친의 이름은 조채(朝采)며 자(字)는 양생(陽生)입니다. 그는 의업을 이어받아 소아과외에 부인과 내과를 비롯한 다른 진료 과목에도 뛰어난 의술을 발휘했습니다. 그 덕에 장쑤 성과 절강 성까지 명성이 자자해 집 앞은 늘 환자로 북적였습니다. 그는 문학, 음악, 서화에도 뛰어났으며, 틈만 나면 책 읽기를 즐겼습니다. 섭천사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타고난 재능으로 각종 서적을 독파했습니다.


섭천사는 12세 때부터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의사의 마음가짐과 의덕에 대해서 깊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의술을 배울 시기인 14세 되던 해 아버지 조채가 타계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재물을 축적해 놓지 않았던 탓에 문하에 있던 제자와 문객이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가업을 이어 의사의 길을 가기로 다짐한 섭천사는 아버지의 제자인 주씨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고, 타고난 천재성과 근면함으로 아버지의 의술을 빠르게 습득해 곧 청출어람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주씨에게 새로운 스승을 찾을 것을 권고받고 길을 떠난 섭천사는 10년간 17명의 스승을 만나 다양한 분야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스승 중 지금의 전염병에 해당하는 온병(溫病)에 조예가 깊은 왕자접에게 가르침을 받은 섭천사는 훗날 온병의 대가가 되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1232년 허난성 변경지역에서 온역병이 창궐해 백만여 명이 사망했고, 외국과 활발한 교류로 성홍열 등 전염병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청대에만 300여 차례의 온역병이 유행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1500년 전 장중경이 남긴 상한론만으로는 온역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장중경이 비록 의성으로 불리는 불세출의 명의였지만, 후대에 발생할 전염병까지 예측할 수는 없었습니다. 섭천사는 온병에 대한 기존의 연구를 토대로 진단법과 치료법을 정리했으며, 생전에 심혈을 기울인 연구 성과와 치료 사례를 남겼습니다. 청대에 이르러 동양 의학은 몇 가지 새로운 이론이 추가되는데, 온병에 대한 이론이 주요한 사례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섭천사가 훗날 뛰어난 임상 업적을 남긴 바탕에는,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 학문을 대하는 태도와 조부와 부친에게 배운 의사의 마음가짐이 있었습니다.


섭천사는 30세에 강남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그의 명성은 양쯔 강을 건너 전역으로 퍼졌고, 조정의 인사들도 섭천사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섭천사는 젊은 나이에 얻은 명성에도 자만하지 않았으며 줄곧 환자 곁에서 임상 의사로 사는 삶을 이어갔습니다.


숱한 명의들이 많은 의서를 남긴 것과는 달리 섭천사는 진료와 연구에 전력하다 보니 저작을 남길 여유가 없었습니다. 대신 수제자인 화수가 섭천사가 세상을 떠난 후 섭천사의 진료 기록과 일화를 수집하고 섭씨의안(葉氏醫案)을 분류해 ‘임증지남의안(臨證指南醫案)’을 편찬했고, 섭천사의 고손자인 섭만청(葉萬靑)은 가보로 보관하던 의안을 정리해 섭천사의안존진(葉天士醫案存眞)을 발간했습니다.


출간 이후 당시 많은 의사가 임증지남의안을 구해 공부했고, 최근에도 임상 지침서로 출판될 정도입니다.


후대 의사들의 섭천사를 향한 존경심은 대단했습니다. 청대 의학가 석운옥(石韞玉)은 섭천사를 장중경, 화타와 함께 최고 명의로 꼽았고, 청사고(淸史稿)에는 ‘양자강 남북을 통털어 섭천사가 의술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으며, 무수한 의사가 그를 스승으로 여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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