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한의학계에서 가치 있는 저작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는 이시진(李時珍)의 대표작 ‘본초강목(本草綱目)’이 탄생하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어느 날 이시진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인 우호라는 호숫가에 사는 어부 방씨가 헐레벌떡 이시진을 찾아와 왕진을 부탁했습니다.
방씨의 집을 찾아가 보니 방씨의 아내가 정신을 잃고 누워있었습니다.
이시진은 진맥하고는 생명에는 위험이 없다고 방씨를 안심시킨 후. 혹시 최근에 먹은 약이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방씨는 전날 아내가 아프다고 해서 근처 한의원에서 진맥을 받고 지어온 약을 먹은 뒤 증상이 악화됐다고 말했습니다.
이시진이 처방전을 확인해보니 별다른 문제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씨에게 약 찌꺼기를 가져오게 해서 조사했습니다. 거기에서 처방전에 기록된 약재 ‘호장’이 없고, 처방전에 없는 ‘누남자’라는 약이 대신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곳 한의사는 본초 관련 서적에 ‘누남자를 호장이라고도 한다’라는 문장이 실려 있어서 헛갈렸던 것입니다. 다행히 이시진은 누남자를 해독하는 약을 알고 있어서 방씨의 부인은 곧 회복했습니다.
당시 민간에서는 ‘만타라’의 꽃을 먹으면 미쳐서 훌쩍훌쩍 뛰며 춤을 추기도 하고 심하면 마취되어 죽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시진은 실제로 그러한지 확인하기 위해 만타라가 자라고 있다는 북쪽 지방을 직접 방문하여 어렵사리 만타라를 구해 꽃을 따서 직접 먹어보았습니다. 과연 흥분작용과 마취작용이 있음을 발견하고 “칼에 베이거나 불에 데었을 때 먼저 만타라의 꽃을 따서 먹으면 아픔을 잊는다”라고 본초강목에 기록하였습니다. 이후 만타라의 꽃잎을 마취제 원료로 사용했습니다.
이시진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 약재 정보를 올바로 정리해 집대성하기로 했습니다. 이시진의 부친은 역대 주요 의서는 황실의 명을 받아 여러 집필진이 공동으로 작업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개인이 정리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에 아들을 만류했으나 이시진은 뜻을 굽히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이 무렵. 인근 초나라의 왕자가 갑자기 인사불성이 되어 일대에서 명의로 이름이 나 있는 이시진이 치료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진단 후 구토하는 약과 설사하는 약을 배합해 복용하게 하여, 왕자는 정신이 돌아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인연으로 초나라의 왕은 이시진을 초빙해 관직을 맡게 하고, 3년 후 북경 태의원으로 갈 수 있도록 천거했습니다.
태의원은 이시진이 이상을 실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습니다.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의학 서적이 있을 뿐 아니라 품질이 우수한 약재를 가지고 마음껏 시험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이시진은 태의원에서 의료실무에 종사하는 한편 의과 서적을 탐독하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으며, 40종의 의학 서적 약 270권을 탐독하였고,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임상경험방 까지 합하면 모두 800여 권의 의학서적을 탐독했습니다. 본초강목을 집필하기에 충분한 실력을 쌓은 셈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 지리 및 돈황의 저작을 읽었으며, 시를 비롯한 문학 작품도 두루 읽었습니다.
그는 본초강목에 '고서 즐기기를 엿을 즐기듯이 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고경성(顧景星)은 ‘이시진 전’에서 '10년간 책을 읽음에, 문밖을 나가지 않고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고 서술했습니다.
이때 명나라 조정에서 제 11대 왕 주후총(朱厚熜) 황제는 태의원에 각종 선방(仙方)을 수집하여 불사약 연구에 몰두하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태의원 어의들은 이름 있는 선방, 연단(鍊丹), 영지(靈芝)등을 황제에게 올려 바쳤으며 이미 고대의 명의들이 만들어 놓은 처방으로 자신들의 명예를 얻기에 급급했습니다. 이시진은 태의원 어의들의 하는 짓이 맘에 들지 않아 다시 고향에 돌아가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오품관직을 포기하고 핑계를 대어 사표를 제출하고는 태의원을 떠났습니다.
이시진은 태의원에 있을 때 읽은 책의 내용과 자신의 경험·연구를 결합해, 마침내 ‘본초강목’을 완간했습니다. 본초강목은 모두 52권 16부, 60류로 나뉘며 27년을 거쳐 1578년에 완성됐습니다. 역대 의가가 다룬 약물 1892종이 수록돼 있으며, 그 중 식물 약재가 1094종, 광물, 동물 및 기타 약재가 798종이며, 그중 374종은 이시진이 처음 수록한 것입니다. 모든 약물은 우선 정식 명칭을 강(綱)으로 하고 부가적 명칭을 목(目)으로 분류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집해, 감별, 정오(正誤)와 산지, 형태에 대해 서술했으며, 기미, 주치, 설명, 체험과 응용을 곁들였습니다. 내용이 방대해 중국 명대 이전 약물학을 결산했으며, 후대에도 중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현재도 세계 각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미 각국의 언어로 번역 출간됐습니다. 이시진은 맥진 등 진단에도 능통했으며, 그의 호를 딴 맥학 저서인 ‘빈호맥학’에서 다룬 내용은 600년이 지난 지금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시진은 1593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많은 책을 저술했으며 대표작 본초강목 외에도 ‘기경팔맥고(奇經八脈考)’, ‘빈호맥학(瀕湖脈學)’, ‘오장도론(五臟圖論)’ 등 10여 종의 저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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