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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명의 열전-화타(華陀)(1)

편집부  |  201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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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중국 고대 왕조를 이끈 전설의 삼황인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 중 두 번째 황제인 신농(神農)은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하루 100여 가지 약초를 맛보고 효능을 정리해 병을 치료했습니다.


신농은 숱한 독초를 먹고 중독되어 몸의 형태가 변할 정도였지만 병으로 고통 받는 백성을 구하고자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신농이 당시 정리한 약의 성질과 효능은 훗날 한의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삼황의 하나인 황제(黃帝)는 신하 기백(岐伯) 등과 함께 의학을 논했고 이를 정리한 황제내경은 한의학의 원전으로 불립니다.


고대의 제왕은 백성을 긍휼히 여기고 병자를 구하는 것을 중요한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세인의 추앙을 받은 명의들도 명예와 이익보다는 환자의 고통을 다스리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매주 이 시간에는 음양의 조화와 심신의 균형, 자연과 합일을 추구하는 한의학의 이론 체계를 다졌던 고대 명의를 찾아 그들의 행적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한(漢)나라 말기는 삼국지연의의 배경이 되는 시대로 수많은 영웅호걸이 등장했습니다. 군웅이 할거하면서 논과 밭은 전쟁터로 변하고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화타(華陀, 145~208)는 지금의 안휘성 호현(毫縣)에 해당하는 패국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이름은 부(敷)였고 자(字)는 원화(元化)입니다.

 

화타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이 있었으며 특히 의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화타가 12세 때 어머니는 속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깊은 상실감은 화타가 평생 의학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 수도 낙양으로 간 화타는 의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배움을 구했고 좋은 처방과 의술을 수집해 정리했습니다. 당시 의관들은 돈벌이에 몰두했지만, 화타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2년 후 화타는 지역의 유명한 의관을 찾아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여기에서 화타는 내과, 외과, 부인과, 소아과, 침구 등 다방면의 지식을 축적했으며, 이 밖에 신체 단련을 중요시하여 이를 통해 체질 증강과 질병의 예방·치료를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호랑이, 사슴, 곰, 원숭이, 새 등 다섯 가지 동물의 동작과 특징을 고대 도인토납술 및 중의학, 장부, 경락, 기혈, 이론과 결합하여 중국 전통의 양생공법인 ‘오금희(五禽戱)’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관리와 권세가들은 화타를 등용하려 애를 썼지만 화타는 그것보다는 환자 곁에 머물러 있기를 원했습니다.


화산에서 돌아온 후 화타는 초현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안후이(安徽)성 보저우(亳州)시 옛 성 동쪽 문에는 화조암(華祖庵)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화타가 처음 의관을 연 곳으로 2개의 방 중 한쪽은 화타의 진료실이고 나머지 방은 병실이었습니다.


초현은 조조의 후방 방어기지로 전쟁에서 다친 사람으로 넘쳐났으며 특히 칼과 창에 찔리거나 곪는 등 외과 수술이 필요한 환자가 많았습니다. 전무후무한 외과 의사로 이름을 날리게 되는 화타의 탄생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화타는 독주와 약초로 소독과 지혈을 하고 치료했습니다.


하지만 마취 없이 수술을 받아야 했던 환자의 고통을 안타깝게 여긴 화타는 끊임없이 약초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초오, 남성, 백지, 백작약 등으로 탕약을 만들어 술과 함께 환자에게 복용하게 했더니 환자는 정신을 잃고 수면상태가 됐으며 수술이 끝나면 깨어났지만 고통은 적었습니다.


이 약의 개발로 수술 환자의 고통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이를 ‘마비산(麻沸散)’이라고 불렀으며, 세계 최초의 마취제가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수술 후 봉합 부위와 상처에 바르는 외용제를 개발해 사용했는데 4~5일이면 상처가 아물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현대 의학에서 마취제를 만들어낸 것은 이로부터 1600년 이후였다고 하니 당시 화타의 마비산의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이어집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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