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독서하는 방법에는 삼도가 있나니 마음과 눈 입으로 함께 읽어야 하노라. 이 글을 읽으면서 저 글을 생각하지 말고 이 책을 읽다 말고 저 책을 펴지 마라. 느긋이 보면서도 공들여 읽어내면 공부가 찬찬해져 막힌 것 뚫리리라. 마음의 의문 일면 그 즉시 적어두고 뉘한테 물어보면 확실한 답 얻으리라.
뜻은, 독서 방법에 있어서는 반드 시 세 가지 요건을 구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심으로(深度), 눈으로 보고(眼到)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口到) 이 세 가지 요소가 아주 중요하다. 책을 읽고 있으면서 다른 책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읽는 책을 다 읽기 전에 다른 책을 읽기 시작 하지 말아야 한다. 독서 계획은 약간 여유가 있게 세우고 독서 할 때는 바짝 다그쳐 열심히 공부하여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모르는 것도 자연히 알게 된다. 공부를 하면서 의문이 생기면 바로 적어 두고 아는 사람의 도움을 얻어서 정확한 뜻을 파악 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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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중엄(范仲淹)은 북송(北宋)의 훌륭한 신하로서 자(字)는 희문(希文)입니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가난에 시달리다 못해 중엄을 데리고 산동(山東) 장산(長山)의 주(朱)씨 집안으로 개가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난 중엄은 소년이 되자 집을 떠나 백두산의 한 절로 들어가 공부를 하며 좁쌀죽으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매일 죽을 쑤어 두었다가 하룻밤이 지나 굳어지면 네 쪽으로 나누어 부추 몇 잎과 소금을 곁들여 아침저녁으로 두 쪽씩 먹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만은 게을리하지 않아 졸려서 눈꺼풀이 내려오면 냉수를 얼굴에 끼얹으면서 계속 글을 읽었습니다.
그는 절에서 3년을 공부한 후 자신의 신분을 알고는 어머니에게 이별을 고하고 하남 응천부로 가서 척동문(戚同文)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침대에 눕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글공부하였으며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죽 한 끼로 굶주린 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중엄을 보고 어느 날 학우 중의 남경 관리의 아들이 맛있는 음식을 보내왔습니다.
중엄은 두 손을 모아 감사를 표하고는 “고마우이, 그런데 미안하네 나는 이미 죽 먹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네. 내가 지금 저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다면 더는 죽만 먹는 생활을 견지하기 어려울 것이네. 그러니 고맙지만 가져가 주게나”라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송나라 황제 진종이 남경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학우들은 앞다투어 황제를 보러 나갔으나 중엄은 문을 닫고 여느 때처럼 글을 읽었습니다. 학우들이 황제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하자 중엄은 전혀 마음의 흔들림 없이 “다음 기회에 봐도 늦지 않다네”라고 말했습니다.
27세가 되던 해 진사시험에 합격한 그는 어머니를 모셔 오고 성도 범(范)씨로 되돌렸습니다. 그 후 어시(御試)에 응시했을 때 중엄은 처음으로 50세가 된 진종황제를 알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6경(六經)에 통달하였으며 큰 뜻을 품고 천하의 일을 자신의 중책으로 삼았습니다.
중엄이 변경 수비를 책임지고 있을 때 전력을 다하여 군기를 정돈했을 뿐 아니라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이렇게 북송 변경의 방어력이 눈에 띄게 강화되자 서하의 군주 원호는 송나라를 공격하고도 이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후 서하(西夏) 사람들은 서로 훈계하여 말하기를, “다시는 연주로 진격할 생각을 마라. 지금 소범의 뱃속에는 몇 만의 군대가 들어있어 대범(大范) 옹(雍)보다 만만치 않다”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중엄은 벼슬을 하고 있던 친구 등종량(縢宗諒)이 그곳의 명소인 악양루를 보수하고는 이를 기념하는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쓰인 것이 그 유명한 '악양루기(岳陽樓記)'입니다.
중엄은 이 글에서 ‘원대한 정치 이상을 가진 사람들은 마땅히 천하의 근심을 먼저 걱정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나중에 누려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문구를 사자성어로 줄인 것이 바로 '선우후락(先憂後樂)'입니다. 이 명언은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더불어 악양루도 범중엄의 이 글로 인하여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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