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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청 사건을 말한다

편집부  |  201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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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사회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SOH 대담입니다.


현재 중국 정국은 왕리쥔 사건을 시작으로 태자당 출신이자 전 충칭시 서기인 보시라이가 낙마한 이후, 연일 폭풍 전야입니다. 또 얼마 전 발생한 천광청 탈출사건으로 중국의 열악한 인권현실이 국제사회에 여실히 드러났고 이 같은 탄압을 주도한 세력이 저우융캉을 중심으로 한 정법위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후-원 중앙과 대립적인 입장을 보여 온 장쩌민의 상하이방, 특히 파룬궁 탄압을 주도해 온 혈채방의 입지가 점차 기울어지면서 중국의 정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5월 발생한 천광청 사건에 대해 중국문제 시사평론가 이승진 선생님을 모시고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사회자: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승진: 예 안녕하세요?



사회자: 최근 중국에서는 각 계파 간에 존재해왔던 대립구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는데요. 가택연금 상태를 탈출해 미국 망명에 성공한 천광청도 그 중 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회자: 우선 천광청은 누구인가요?
 

이승진: 천광청은 1971년 11월 12일생으로 알려져 있고 중국 산둥성 린이(臨沂)시 이난(沂南)현 솽허우(雙堠)진 둥스구(東師古)에서 줄곧 생활해 온 시각장애인이자 인권운동가 변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40세인 그는 오랫동안 장애인 인권수호 활동을 해오다가 최근 몇 년 동안 린이시의 산아 제한 과정에서 자행된 인권탄압을 폭로했고 각종 시민 권익 보호활동과 당국의 위법적인 권리 침해저지 등 더욱 폭 넓은 민권운동을 펼쳐 왔습니다.
 

그는 2005년 여러 차례 법조계 인사, 해외 기자들과 협력해서 중국 정부의 대규모 강제 피임과 임신중절을 고발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렇지만 2005년 4월, 린이시 정부가 관할지역 부녀자들에게 대규모로 피임과 임신중절을 강요한 사건이 발생하자 중국 화이(華一) 변호사 사무소의 텅뱌오(騰彪) 변호사와 함께 집단소송을 벌이다가 2005년 8월 린이시 당국에 의해 가택연금 조치를 당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을 포함한 유명 언론들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연금기간 중, 천 변호사는 관련 당국으로부터 수차례 심한 구타 등의 폭행을 받은 바 있는데요, 그의 지인인 베이징 변호사 쉬즈융(許志永)과 전(前) 베이징 외국어대 량사오옌(梁曉燕) 교수 등이 천 변호사를 방문했다가 그가 구타당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가택연금 후 천 변호사는 2005년 8월 말, 해당 공안의 감시를 피해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베이징으로 갔지만 다음 달인 9월 초 산둥성 공안에 의해 고향으로 강제 이송됐습니다. 그 후 그는 전화와 인터넷이 차단된 채 가택연금을 당해왔습니다.
 

사회자: 그럼 그 가택연금 중 천변호사는 어떤 상태였나요?
 

이승진: 이 같은 상황에서도 천 변호사는 2006년 2월, 가오즈성 변호사 등 인권 운동가들이 발기한 릴레이 단식에 28시간 동안 참여했습니다. 중국정부의 인권탄압을 반대하고 정의의 목소리가 민중들에게 전달되도록 했습니다. 그의 이런 행동은 지역 주민들의 항쟁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천변호사의 상황은 중국 내외의 폭넓은 관심을 받았고, 인터넷상에서 각계 인사들이 그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편지가 끊이지 않았지요.
 

사회자: 그렇다면 천광청 사건의 발단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이승진: 천광청은 중국 정부의 '1가구 1자녀‘정책으로 인한 대규모 강제 피임과 임신중절을 고발해왔습니다.
 

2005년 당시 3월부터 7월까지 산둥성 린이시에서는 최소 7천명이 당국에 의해 강제로 피임 또는 임신중절을 당했는데요, 이를 거절한 일부 부녀자들이 감금되거나 구타를 당했고 심지어 목숨을 잃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린이시 계획생육위원회는 천 변호사에 의해 이 사건이 폭로되자 매우 두려워했고 베이징에서 그를 체포한 후, 20시간 만에 강제로 귀가시킨 후 가택연금 조치를 했고요. 연금 당시 천 변호사는 전자파 교란으로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었고, 전화나 인터넷도 모두 끊겨서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지요.
 

또 그의 집 주변과 그 마을로 향하는 모든 길목에는 공안과 검찰 관계자들이 밤낮으로 지키고 있어서 기자들이 출입할 수 없는 상태였고요.
 

그 후 6개월 뒤, 린이시 이난현에서 가택연금 중인 천변호사를 방문하러 갔던 그의 조카가 지방 당국이 파견한 폭력배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천 변호사에 대한 인권탄압과 당국의 폭압에 격분한 이난현 주민 300여 명이 현장에 출동한 수십 명의 경찰들에게 돌을 던지고 현장에 있던 경찰차와 관공서 차량을 뒤엎으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인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사회자: 그렇다면 가택연금 중인 천광청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 동을 취했나요?
 

이승진: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되고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도 그는 인 권 탄압에 반대하는 입장과 활동을 멈추지 않았는데요.
 

그 예로 2006년 2월 5일 린이시 이난현에서 발생한 민중시위 당시, 주민들과 경찰이 대치한 혼잡한 틈을 타서 거처를 옮긴 천광청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 가진 인터뷰에서 가오즈성 변호사가 발기한 릴레이 단식투쟁에 동참해서 이미 단식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천광청은 자신의 단식이 가오즈성과 궈페이슝(郭飛熊) 등 권리 수호 인사들에게 성원을 표시하기 위해 그리고 민중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매우 중요한 행동이라고 말했었지요.
 

이 같은 사건 발생한 후, 2006년 6월 12일, 산둥성 경찰 당국은 천광청을 10일간 구류했고 그의 부인 위안웨이징(袁偉靜)에게 통보를 했는데요. 시민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고 불법 집회를 개최한 혐의를 적용해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통지내용이엇습니다. 결국 2006년 8월 천변호사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4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사회자: 천광청에 대한 중국 당국의 탄압을 접한 해외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승진: 미국 의회의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에서는 2000년부터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행정부 내에 특별한 연대기구를 설립해 중국 인권과 법률제도 발전에 관한 의제를 다루고 또 해마다 이를 주제로 보고서를 발표해왔습니다.,
 

천광청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과 그를 지지하는 이들까지 중국 당국에 탄압받는 상황이 각계에 알려지면서 2011년 11월 1일, 미국 의회에서는 이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한 긴급 공청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열린 공청회에는 6.4 천안문 사건 지도자이자 '어린이의 소리'라는 반(反) 낙태운동 단체를 조직한 차이링(柴玲) 여사, 그리고 제롬 코헨(Jerome Cohen) 뉴욕대 법학교수, 탄징창(譚競嫦) 중국인권집행주임이 증인으로 참석했고요, 공청회를 주최한 크리스 스미스(Chris Smith) 미 CECC 위원장은 천광청 가족에 대한 박해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시 공청회에서 스미스 위원장은 그들에 대한 중국 당국의 잔혹한 탄압과 극단적인 행태는 중국 정부의 치욕적인 행동이고 또 반드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그는 천광청과 그의 가족들에게 반드시 자유를 되돌려 주어야 하며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뤄자후이(駱家輝) 주중 미 대사도 이 일에 관심을 가질 것을 요청했습니다. 또 방문단을 구성해 직접 중국에 가서 그 상황을 확인할 것이고 ‘그가 꼭 살아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자: 지난 4월 27일, 천광청은 수개월간 연금되었던 자택 탈출에 성공해서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으로 갔는데요, 그 경위는 어떻게 되나요?
 

이승진: 가택 연금 중이던 천광청이 지난 4월 22일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집에서 탈출했고 26일이 지나서야 그가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한 중국 당국은. 천을 감시했던 담당자들 그리고 현지 고위 관계자들이 한밤중에 천광청의 형의 집을 급습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천의 조카 천커구이(陈可贵)는 그들 여러 명으로부터 심한 구타를 당했고, 자기 방어책으로 식칼을 들고 구타에 맞서다 당국에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천 변호사가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6명의 인권운동가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들은 ‘베이징 전지행 사회경제연구소’의 궈위산 소장과 그리고 4명의 연구원 또 천변호사 석방을 위해 활동해온 난징의 자원봉사자 허페이룽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을을 빠져나온 천 변호사를 베이징으로 데려와 숨겨줬고 그의 안전을 위해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에 진입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천광청이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으로 들어간 후 그들은 당국에 체포돼 천변호사의 탈출 경위에 대해 조사를 받았고 허페이룽을 제외한 5명이 석방됐죠.
 

5월 2일 미중 양측은 이 사건에 대해, 양국이 합의했다고 밝혔는데요 베이징은 미국 측의 사과를 요구했으며. 또 중국 관영언론 신화사는 천광청이 미국 대사관에 6일간 머문 뒤에 “스스로 대사관을 떠났다”고 보도했습니다.
 

미국 측은 지난 2일 미 국무부 성명을 통해, 미국 대사관이 천광청에게 인도적인 도움을 줬으며 천광청 본인의 뜻과 미국의 가치관에 따라 그가 대사관을 떠나 차오양병원에서 치료받고 가족과 상봉하게 했다고 밝혔고요, 중국 정부도 천광청을 안전한 지역에 이주시키고 그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게 허락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미 대사관을 떠난 얼마 후,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낀 천광청은 자신이 미국 대사관을 떠난 것은 자의가 아니며 잘못 인도된 것이라고 외신에 밝히고 중국에 계속 남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꿨고, 가족과 함께 중국을 떠날 수 있도록 미국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회자: 과거 중국은 국내 반체제인사 석방을 조건으로 무역 등의 사안에서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는 경향을 보였지만, 중국의 경제력이 향상되면서 미국에 대해 부탁하는 입장이 아닌 지시 하는 글로벌 강국으로 행동하고 있는데요. 이번 사건으로 미중 양국의 입장은 어땠나요?
 

이승진: 천광청이 미 대사관으로 피신했다가 그곳을 나와 병원에 입원한 것은 미중 양측이 6일 내내 협상한 결과입니다. 당시 협상에는 미 정부와 후-원이 대표하는 중공정권, 그리고 천광청을 박해한 정법위와 저우융캉의 잔당 세력들이 결부돼 있었습니다.
 

미중 ‘전략경제대화’ 이전, 양국은 천광청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미국 측은 위안화 환율과 북한 문제, 그리고 시리아 문제 등을 중국과 협의했지만 천광청의 대사관 피신 사건은 미중 양측의 뜨거운 감자가 됐고 중국 정국은 이미 먼저 발생한 왕리쥔 사건으로 타격을 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엎친 데 덮친 꼴이 되었습니다.
 

인권 대국인 미국 측 입장에서 보면, 과거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천광청의 석방을 공개적으로 요구했었고, 또 중공이 천광청과 그의 가족을 박해한 사실을 상세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천광청이 직접 본인의 보호를 요구했고, 전 세계 언론과 여론은 모두 오바마 정부가 약속을 실천하고 인권을 수호할지, 아니면 겉모습과는 달리 중공을 두려워하는지 모두가 지켜봤었죠. 따라서 미국 측은 이 사건으로 인권을 수호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또 한 편으로는 중국 측과 앞으로 기타 방면의 협력에 관한 협상도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후-원 정권 입장에서 보면, 2월 초 전 충칭시 공안국장 이었던 왕리쥔이 청두 주재 미 영사관으로 들어간 사건으로 중공 고위층의 비리 정보가 미국에 전달되면서 중공의 체면을 크게 손상 됐고요, 또 천광청 탄압의 주범으로 알려진 정법위를 포함한 혈채방파 들이 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중국 차기 국가주석으로 내정된 시진핑을 끌어내리려 모반한 사실까지 폭로되면서 중공 정권은 분열되고 와해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또 당연히 국제적인 초점이 되기도 했고요.
 

사회자: 당시 미중 간에는 협의내용은 어떤 협의가 이뤄졌나요?
 

이승진: 후-원 정권은 이 같은 상황에서 모든 사건이 가능한 빨리 수습되기를 원했기 때문에 미국과 6일간의 협상을 거쳐 합의에 도달했고, 중국 당국은 천광청의 안전을 보호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미 국무부의 합의 내용을 보면 미국 측은 중공이 천광청과 그의 가족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청광청이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할 수 있고, 그와 가족이 다시는 박해를 받지 않도록 보장하겠다는 중공의 약속을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중은 이 같은 협상을 통해 서로 원하는 결과를 얻었는데요. 먼저 미국은 5월 2일 오후 주중 미 로크 대사의 동행 하에 천광청이 ‘스스로’ 美 대사관을 나와, 베이징 차오양병원에 입원했고 향후 정기적으로 중공 정권이 협의된 약속을 이행하는지 여부를 주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미국은 천광청의 희망에 따라 그를 중국에 남게 하면서 그의 가족의 안전도 보장했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중국에 대해 미국이 영향력을 보여진 것이라고 해석할 있습니다.
 

동시에 중국 정부도 천변호사가 미 대사관에 체류한 기간 중에, 외교 당국 대변인을 통해 미국이 내정에 간섭하지 말고 천광청을 돌려보내야 한다고 ‘비난’하면서 미국측에게 ‘더 이상 예외는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또 그에 대해 미국측도 “천광청 사건은 특수한 경우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서 중국의 체면을 세워줬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 정부는 국민 앞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해외의 진실한 소식은 엄격히 통제했던 것입니다.
 

사회자: 지난달 19일, 천 변호사는 가족과 함께 무사히 미국에 도착해 거주 예정인 뉴욕대 기숙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7년간 하루도 몸과 마음 편할 날이 없었던 그가 탄압과 박해에서 드디어 편안한 휴식을 가질 수 있게 된 건가요?
 

이승진: 네.. 하지만 천광청 사건이 모두 해결된 거라고는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천광청은 출국 직전 AP통신과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중국에 남은 친척들에 대해서 걱정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탈출한 이후 천변호사와 그의 가족은 자유를 누리게 됐지만 공안 당국은 고향에 남은 그의 형과 가족을 가택연금 시켰기 때문입니다. 또 천의 조카 천커구이의 경우도 지난 달 10일 살인 미수 혐의로 구속된 상태에 있기 때문이죠..
 

사회자: 네..그렇군요.. 하루 빨리 중국 정부가 더 이상 이 같은 인권탄압이 계속되지 않도록 중국의 열악한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서두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천광청 사건은 경제대국을 자처하는 현 중국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 천광청에 대한 탄압을 주도한 인물이 후-원과 대립적 관계에 있는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인 것이 알려지면서 보시라이가 실각된 이후 불안한 입지에 처한 저우융캉은 더욱 수세에 몰렸고요.
 

천광청 사건은 저우융캉을 중심으로 한 혈채방의 무리한 탄압이 원인이며 이는 파룬궁 탄압과 가오즈성, 후자 등 인권 운동가들에 대한 탄압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특히 사건에 발단이 됐던 천 변호사의 불법낙태에 대한 고발은 중국헌법이나 법률에 비춰 봐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 상식적인 활동이었지만 이런 상식조차 받아들여질 수 없는 중국의 열악한 인권현실을 여지없이 보여준 것 같습니다.
 

선생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승진: 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중국문제 전문가 이승진 선생님을 모시고 천광청 사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진행에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곽제연이었습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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