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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 몰락의 단초 왕리쥔 사건을 말한다

편집부  |  201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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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얼마 전 발생한 왕리쥔 사건으로 중국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오늘 동아시아 연구소 임영철 소장님을 모시고 사건에 관한 정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질문(문): 왕리쥔 사건의 개요?

 

임영철 소장(임): 충칭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인 왕리쥔이 2월 6일 월요일, 한밤중에 청두에 소재한 미국 총영사관에 찾아가 미국 정부에 망명을 신청한 사건입니다.


문: 왕리쥔은 어떤 인물인가?

 

임: 1959년생(53세)으로 내몽골 출신으로 일찍부터 공안(경찰)에 투신해 왔고 2000~2003년 까지 랴오닝성 테링시 공안국장, 2003~2008년 까지 랴오닝성 진저우 공안국장을 지냈으며 2008~얼마 전까지 충칭시 공안국장 겸 부시장을 지낸 인물입니다. 중국에서는 경찰 드라마인 ‘철혈경혼’의 모델로 발탁된 바 있고 보시라이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창홍타흑’운동 중 ‘타훅’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중국인들에게 상당히 유명하고 외국에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문: ‘창홍타흑’은 어떤 운동인가?

 

임: 2007년 충칭시 서기가 된 보시라이는 정치국 상무위원 진출을 위해 나름대로 자신의 업적을 쌓기 위해 주도한 운동으로 공산당을 찬양하거나 이데올로기를 널리 퍼뜨리는 모택동식 문화혁명처럼, 체육관에 수천명의 사람들을 모아 단체로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혁명적인 에너지를 고조시키는 것을 ‘창홍’이라고 합니다.

 

반면, ‘타흑’이라는 것은 사회의 범죄자나 조직 폭력배 같은. 무리들을 타도하는 일종의 ‘범죄와의 전쟁’ 또는 ‘조직 폭력배 소탕’, ‘폭력배 척결’ 운동으로 중국의 치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이 담겨져 있습니다.


문: 타흑운동으로 유명해진 왕리쥔이 미국 측에 망명 요청한 이유?

 

임: 보시라이가 주도했던 ‘창홍’의 경우에는 얼마 전 원자바오 총리로 부터 문화대혁명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았고 독선적이며 아집이 강한 탓에 반대 세력들에게 빌미를 주게 됩니다.

 

‘타흑’의 경우도 충칭의 약 800명의 부유층을 대상으로 조직 폭력배와 결탁했다는 누명을 씌워 죽이거나 투옥하고 또 그들의 전 재산을 몰수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해 우리나라의 감사원에 해당되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내사단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였던 허궈창은 보시라이에게 왕리쥔의 수많은 비리를 언급했고 왕리쥔을 내치기로 결정한 보시라이는 2월 2일, 충칭시 부시장이었던 왕리쥔을 권력이 막강했던 충칭시 부시장과 공안국장에서 해임하고 교육 문화 담당 부시장으로 발령합니다. 또 이 일이 있기 전  왕리쥔의 측근들이 체포돼 조사를 받게 되자 보시라이가 자신에게 등을 돌렸고 중앙에서도 자신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와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왕리쥔은 미국에 대한 망명믈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문: 왕리쥔 사건이 중국정계에 이 같이 큰 파장을 몰고 온 이유?


임: 왕리쥔은 우리의 직할시에 해당하며 중국에서는 성급시에 해당하는 충칭시 부시장입니다. 그러므로 차관급 고위 관리입니다. 이런 고위 관리가 미영사관에서 망명을 요청했다는 점이  정치적인 큰 사건이며 내부의 모순이나 부패문제들이 외부 특히 국외에 알려지는 것을 제일 두려워하는 중국 공산당이 미영사관에 그들의 기밀이 유출된 것에 대해 크게 분노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보시라이가 왕리쥔을 체포하기 위해 장갑차가 포함된 경찰차량 70대를 동원해 충칭시 관할을 벗어난 쓰촨성 경내의 청두 미영사관을 포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앙의 허락없이 멋대로 병력을 동원한 것으로 쿠데타로 간주되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고 그 배후에는 무장경찰을 총괄하는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이 있다는 점입니다.


문: 왕리쥔의 망명요청에 대한 미국 측의 입장은 ?


임: 왕리쥔이 미국 총영사관에 들어간 시간은 2월 6일 밤 10시경 이었습니다. 망명신청을 생각한 왕리쥔은 자신의 진실성을 보이기 위해 상당히 많은 중국 고위층의 부패나 비리들에 관한 자료를 미국측에 넘겼고 미국측 총영사 피터 헤이먼드와 많은 얘기를 나눴고 그 외 다른 두 명의 영사와 여러 가지를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 총영사관에서는 왕리쥔의 망명을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었으나 일주일 뒤, 시진핑 부주석의 방미가 예정돼 있었던 미국측은 외교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꺼려 왕리쥔의 망명을 거부했습니다.


문: 망명이 거부된 왕리쥔은 현재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지?


임: 왕리쥔은 자신이 충칭시로 돌아가게 되면 보시라이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중앙기율검사위원회로 넘어가더라도 대부분 태자당 관련 인맥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생각해 미국 측에 자신을 중공중앙이 관할하는 베이징으로 직접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후진타오의 직속기관으로 알려져 있는 국가안전부(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 부부장(부원장급)인 추진이 충칭에서 왕리쥔을 압송해갔고 왕리쥔은 현재 베이징 모처에 감금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이 유력시되던 보시라이가 3월 15일 전격 해임된 이유?

 

임: 보시라이는 1949년 7월생입니다. 우리나이로는 약 63세 정도구요. 중공 8대 원로 중에 한 명인 그의 부친 보이보가 장쩌민과 상당히 사이가 좋기 때문에 보시라이는 장쩌민이 집권하면서부터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92년부터 약 10년 간 다롄 시장을 지냈고 2001년에는 랴오닝 성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 상무부장(경제부처의 장관에 해당)으로 발탁돼 해외나 한국에도 왔던 인물입니다. 자기 과시욕이 강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타입이었던 보시라이는 국무원 내에서 원자바오 총리나 우이 부총리 등 많은 사람들의 반감을 샀습니다. 2007년에 부친의 사망으로 중앙에서 쫓겨나 충칭시로 가게 된 보시라이는 다시 중앙 진출을 위해 아까 언급한 ‘창홍’과 ‘타흑’운동을 벌입니다.


그런데 왕리쥔이 미국 측에 넘긴 자료 중에는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시진핑을 끌어 내리려고 한다는 모반 계획이 있었는데 이번 왕리쥔 사건을 모반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단순한 해프님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 중국 공산당 고위층 간에 의견다툼이 있었습니다. 정치국 중앙위원급 인물을 특별한 사유 없이 단순한 부정부패만으로 낙마를 시킬 수는 없다는 중국 공산당의 기본적 룰 때문인데 모반과 같은 아주 큰 죄를 저지르지 않고서는 중앙위원을 갑자기 내치는 경우는 없으므로 후진타오나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이번 사건을 단순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닌 사전에 계획된 일종의 쿠데타나 중국 공산당 지도부에 대한 반역으로 봤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해임이 된 것입니다.

 

문: 보시라이 뒤에 있는 저우융캉은 어떤 인물인가?


임: 보시라이가 해임되면서 현재 중국사태에 가장 핵심적 열쇠를 가진 인물로 떠오른 인물은 중국 공산당 서열 제 9위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중앙 정법위원회 서기직을 맡고 있는 저우융캉입니다. 정법 위원회는 중국에 공안(경찰), 법원, 검찰, 국가안전부, 그리고 특무(스파이)계통, 무장 경찰 이런 계통을 총괄적으로 지휘하는 아주 막강한 힘을 가진 기관입니다.. 특히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조카사위이며 대표적인 상하이방인 저우융캉은 장쩌민이 파룬궁 탄압을 위해 초헌법적으로 조직한 610 사무실에 총책임자이기도 합니다. 보시라이가 충칭경변을 일으킬 수 있었던 배경 중에 하나도 언제든 공안이나 무장경찰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저우융킹이 무장경찰 병력 동원을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항간에서는 저우융캉에 대해 중공 제2의 권력중심이다 하는 말까지 나올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있어 만약에 중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한다면 그 주동자는 반드시 저우융캉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문: 중국 공산당 내에는 어떤 파벌이 존재하고 있나?


임: 현재 중국 국가주석을 맡고 있는 후진타오는 중국 공청단 출신입니다. 공청단이라는 것은 공산당의 청년조직을 뜻하고 뒷배경이 없이 자신의 실력으로 출세한 인물들로 리커창, 왕양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하이방은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힘을 얻으면서 자기 측근이었던 상하이쪽 인맥들을 대거 중앙정계에 등단시킨 인물들로 저우웅캉, 우방궈, 자칭린, 리창춘, 보시라이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 현재 차기 국가주석으로 예정된 시진핑이 속한, 부모가 공산당 간부거나 원로인 자제들을 지칭하는 태자당이 있는데 이 당은 특성 자체가 어느 한 계파로 묶기 보다는 출신 성분을 가지고 나눈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배경을 보면 저우융캉을 대표로 하는 상하이방 세력과 후진타오를 대표로 하는 공청단 세력 간의 알력과 거기에 태자당 인맥들이 중간에 끼어있는 상태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문: 같은 태자당 출신인 보시라이의 해임에 대한 시진핑의 태도?


임: 흔히 중국 공산당 내부의 공청단이나 상하이방, 태자당의 파벌들이 아주 강한 유대력과 끈끈한 정이 있을 거라고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번 보시라이 해임에 결정적인 키를 쥔 시진핑은 같은 당 출신인 보시라이를 제거하고 후진타오 편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올 가을부터 주석(총서기)으로 예정된 자신이 만약 이번에 보시라이를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이번 보시라이 제거에 적극 동조 한 것입니다.
 

문: 왕리쥔이나 보시라이가 속한 상하이방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임: 상하이방은 장쩌민을 따라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다보니 대체로 모두 연로한 상태이고 저우융캉도 올해 나이가 70세이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장쩌민도 생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돌고 있어 상하이방의 몰락은 필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89~2002년 까지의 집권 기간 중, 장쩌민은 수많은 잘못과 문제를 일으켰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두 가지는 89년 6.4 천안문 사건과 99년부터 시작된 파룬궁에 대한 탄압입니다.


천안문 사건의 경우, 당시 덩샤오핑의 명령을 받아서 한 것이기 때문에 장쩌민에게 모든 죄를 추궁할 순 없지만 파룬궁 탄압은 모든 상무위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장쩌민 입장에서는 2002년 권좌에서 내려오면서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2002년에 정법위 서기 뤄간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끌어들여 직접 파룬궁 탄압에 앞장서게 했고 뤄간이 고령으로 은퇴를 하면서 저우융캉을 상무위원으로 앉혀 파룬궁 탄압을 계속 유지시켰고 이번에 보시라이를 차기 정법위 서기로 삼아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들이려 했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후진타오나 원자바오의 경우, 파룬궁 탄압에 직접적으로 관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쩌민은 후진타오 입장에서 언제든지 파룬궁 탄압 문제에 대해 명예회복을 시키고 탄압을 중지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고 바로 이 문제로 상하이방이 하나로 묶여져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보시라이가 제거가 되고 앞으로 저우융캉이 제거되면 더 이상 파룬궁 탄압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장쩌민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감안한다면 상하이방은 저절로 역사에서 소멸되고 사라질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 2006년, 파룬궁 수련생들의 장기적출 문제가 보도된 바 있는데, 왕리쥔이나 보시라이는 이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임: 목격자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이 사건은 랴오닝성 선양시 쑤자툰구 외에도 주로 랴오닝성 일대에서 상당히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 당시 보시라이는 랴오닝 성장과 다롄시장으로 지냈고  왕리쥔이 진저우 공안국장을 지냈습니다. 왕리쥔이 진저우 공안국장을 지낼 당시 생체장기 적출에 가담했고 실험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포착돼 보시라이와 왕리쥔은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장기를 떼어 밀매하는데 직접적으로 관여했고 이런 면에서 파룬궁 탄압에 가장 적극적으로 가담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 이번 사건으로 주도권을 잡게 된 후진타오가 이끄는 중국정계에 향방은?


임: 중국은 5년마다 한 번씩 공산당 전체 대표대회를 갖습니다. 보통 17대나 18대라고 하는데 2007~2012년 까지가 17대, 2012~2017년 까지가 18대로 5년의 주기가 바로 올해입니다. 후진타오의 임기는 17대까지기 때문에 올해로 임기가 끝나며 시진핑이 올 가을부터 국가주석 및 서기직을 맡게 됩니다. 하지만 장쩌민의 경우에서도 그렇듯이 중국정계는 겉으로 드러난 인물보다 막후에서 조종하는 경우가 더 많아 후진타오가 총서기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앞으로 상당 기간은 중국정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 견해로는 후진타오 입장에서 장쩌민을 비롯한 상하이방을 철저히 제거하고 파룬궁 탄압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중국 공산당이 새롭게 나아가느냐 하는 길과 보시라이를 해직하고 저우융캉을 처단하는 선에서 적당히 덮고 지금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려하는 두 가지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후진타오나 원자바오가 전자의 길을 간다면 그나마 중국인들에게 복이 될 것이며 자신에게도 미래에 퇴로를 남길 수 있을 것이고 만약 그렇지 않고 후자를 선택한다면 결국 중국 공산당이 해체됨과 더불어 그들도 함께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왕리쥔 사건에 관해 동아시아 연구소 임영철 소장님을 모시고 말씀들어 봤습니다. 소장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곽제연이었습니다.

 

※ 임영철 소장: 서울대 물리학과 및 경희대 한의학과 졸, 현 동아시아연구소 소장 및 서울 경희한의원 원장,  전 세계적으로 공산당 탈당 열풍을 일으킨 '9평 공산당'과 공산당 문화의 본질을 파헤진 '해체 당문화' 등 다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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