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보시라이는 파룬궁 탄압에 적극성을 보이며 장쩌민을 흡족하게 했다. 파룬궁 탄압 결정 후 공산당 내부에서 지지를 얻지 못한 장쩌민으로서는 가장 바라던 일이었다.
파룬궁은 1992년 리훙쯔 선생이 지린성 창춘에서 처음 전수한 불가 수련법이다. 뛰어난 건강 증진 효과와 심신 수련을 통한 도덕성 제고로 파룬궁 수련자가 급증했다. 공안부 통계에 따르면 90년대 말 파룬궁 수련자 수가 7천만 명 이상에 달했다. 이것은 당시 공산당원 수를 초과한 것으로, 장쩌민이 탄압을 결심한 계기도 파룬궁에 뒤쳐질 수 없다는 개인적 질투심에서 비롯됐다. 탄압을 앞두고 장쩌민을 제외한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반대했지만, 1999년 7월 탄압을 강행했다.
중국 동북부 지역은 처음 파룬궁이 전해져 수련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다롄에도 많은 파룬궁 수련자가 있었다. 1999년 7월 19일, 다롄시 공안국은 파룬궁 수련자를 대대적으로 체포했다. 이튿날 파룬궁 수련자 수천 명이 다롄시청으로 모여들어 석방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은 구호를 외치거나, 현수막을 들거나,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는 것으로 항의를 대신했다.
하지만 파룬궁 수련자들 앞에 나타난 것은 시장 보시라이가 아닌 경찰들이었다. 이미 보시라이로부터 ‘파룬궁을 타격하라’는 지시를 받은 경찰들은 이들을 무차별 타격했고, 파룬궁 수련자들은 얼굴이 피범벅이 되고, 옷이 찢기고 신발이 벗겨질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한 시민이 이 장면을 촬영하려 하자 사복경찰이 제지한 뒤 카메라를 부수고 시민을 넘어뜨렸다. 노인 파룬궁 수련자도 경찰에게 맞아 쓰러졌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시 청사를 찾은 파룬궁 수련자들은 경찰에게 속아 시정부 뒷쪽의 작은 광장에 갇혔다. 수백 명의 수련자들은 여전히 평화적인 방식으로 청원했고, 일부는 파룬궁 수련 동작을 같이 하거나 조용히 책을 읽었다.
이때 보시라이는 멀리 떨어진 차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공안국장에게 ‘보라, 저들은 저렇게 단결하고 효율적인데, 체포하지 않고 탄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경찰이 호되게 때려야 한다. 맞아 죽어도 정부에서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보시라이는 파룬궁 수련자를 대형 버스에 실어 파출소와 학교 또는 오지 등으로 옮겼다.
그후 보시라이는 파룬궁 탄압에 앞장섰다. 그는 왜 파룬궁 탄압에 적극적이었을까? 보시라이의 측근 왕모씨에 따르면 장쩌민은 보시라이에게 ‘후진타오가 1989년 티베트 사건을 진압한 것처럼 강하게 대처해야 승진할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보시라이는 파룬궁 탄압이야말로 장쩌민의 환심을 사고 스스로도 정치적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1999년부터 2003년 사이 보시라이는 다롄 시장과 랴오닝성 부서기 그리고 랴오닝 성장으로 일하면서 파룬궁을 잔혹하게 탄압해, 보시라이가 거쳐간 곳은 중국 전역에서 가장 파룬궁 탄압이 극심한 곳으로 변했다. 이 지역에서만 현재까지 최소 777명이 탄압으로 목숨을 잃었다. 보시라이는 또 대형 수감 시설을 확충했는데, 수많은 파룬궁 수련자가 고문으로 사망한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도 이때 세워졌다.
다수의 국제인권단체는 2000년 10월 랴오닝성 선양시 마싼자 노동교양소에 수감된 여성 파룬궁 수련자 18명이 남자 감방에 알몸으로 던져져 윤간당했다고 폭로했다.
이 중 5명이 후유증 등으로 사망하고 7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한 명은 강간으로 임신해 출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당시 교도관과 경찰이 파룬궁 수련자가 진선인(眞善忍)을 따라 수련한다는 점을 이용해 그 같은 잔혹한 방법으로 인(忍)을 행하도록 억지를 썼다고 증언했다.
마싼자에서 이 같은 폭행은 거의 매일 발생했다. 파룬궁 여성 수련자 치위링은 전기 충격기로 유두를 가격당했으며, 장슈제는 전기충격기로 음부를 가격당했다. 리샤오옌은 머리와 발바닥 그리고 몸통 부위 등을 전기충격기 4개로 공격받았고 고문에 가담한 경찰과 교도관은 당국의 장려를 받았다. 그중 일부는 ‘영웅모범’으로 선정돼 급여가 오르고 승진하기도 했다. 마싼자 여자노동교양소 쑤징 소장은 중앙 정부로부터 5만 위안의 인센티브를 받았고, 부소장 사오리는 3만 위안을 받았다.
국내외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장쩌민은 문제가 된 노동교양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기존 노동 교양소를 마싼자 제2 노동교양소로 개명, 보수한 다음 가짜 파룬궁 수련자를 데려다 놓고 문제가 됐던 가혹행위 의혹을 전면 부인하게 했다. 소장 장차오잉은 여자 죄수는 수감되지 않기 때문에 강간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싼자 노동교양소에 수감됐던 여성 파룬궁 수련자만 최소 36명이며, 이들의 증언을 따르면 당시 여자 죄수가 상당수였다고 한다.
2001년 2월 UN인권위원회는 여성 가혹행위에 대한 특별조사보고에서 ‘뤄간 중앙정법위 서기가 마싼자에서 여자 파룬궁 수련자 18명을 남자 감방에 투옥시킨 사실을 알고 있다’라고 폭로했다. 소식통은 뤄간이 문제의 사건에 직접 개입해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뤄간은 이밖에도 파룬궁 탄압 전담기구 610 사무실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파룬궁 탄압 지령을 사법과 공안 그리고 경찰 기구에 수차례 내린 바 있다. 파룬따파 정보센터의 조사로는, 1999년 7월 20일 이후 마싼자에 수감된 파룬궁 수련자 수는 최고 2천여 명에 달했으며 이들은 계속해서 정신적, 육체적 탄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폭로 3개월 전인 2000년 7월, 중공 중앙 610사무실 책임자 왕마오린과 둥쥐파는 마싼자 노동교양소를 시찰한 뒤 ‘교화’ 성과를 장쩌민에게 보고했다. 610사무실 고위 책임자 류징도 마싼자를 수차례 다녀갔고, 장쩌민에서 특수 비용 600만 위안을 지원할 것을 건의했다. 장쩌민은 예산 집행을 허가하면서 마싼자에 사상교육 전향기지를 건설하고, 1000만 위안 예산 중 부족한 자금은 랴오닝성 정부로부터 충당하라고 지시했다.
2003년 중국 관영 언론은 일제히 보시라이의 비준으로 랴오닝 성이 10억 위안을 들여 수감 시설 개조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당국은 5억 위안을 투입해 마싼자에 중국 최초 교도소 도시를 건설했다. 1999년 이전 마싼자 노동교양소는 전기세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재정이 열악했지만, 파룬궁 탄압 이후 지방 정부는 노동교양소에 파룬궁 수련자 1명을 수감할 때마다 1만 위안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랴오닝성 사법청 고위 관계자는 마싼자 노동교양소 관련 회의에서 ‘파룬궁(탄압)에 들어간 돈은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경비를 넘어섰다’라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고위 소식통은 장쩌민이 파룬궁 탄압에 한때 국민총소득의 1/4을 직간접적으로 투입했다고 밝혔다. 장쩌민은 국가 재정과 기구를 총동원하는 과정에서 뤄간과 저우융캉, 보시라이 등 심복에게 중요 임무를 맡겼으며, 보시라이는 장쩌민에게 적극 파룬궁 탄압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이때부터 이들은 한 배를 탄 셈이다.
한편 1999년 보시라이는 다롄에서 시장과 당서기로 있을 때 한 외자기업의 설립을 허가했다. 업체명은 하겐스 다롄 플라스티네이션이며 하겐스 사장은 독일 신나치주의자로 전 세계 각 지역에서 인체의 신비 전시회를 개최했다. 이 업체는 중국에서 입수한 시신을 전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전시에는 최대 300구의 시신이 쓰이기도 했다.
하겐스사는 시신의 출처에 대해 횡설수설하고 있다. 중국 다롄 의과대학에서 제공했다고 밝혔다가, 나중에는 무연고 시신을 수집했다고 말을 바꿨고 또 어떤 인터뷰에서는 기증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화적인 특성상 중국에서 임산부와 태아의 시신까지 기증할 가정은 없었다.
2006년 5월 20일 랴오선만보(遼沈晩報)는 랴오닝성 단둥(丹東)시에서 시체 가공 공장이 적발됐으며 시신 30구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본보 취재 결과 주민들은 시신을 외부에서 공수해 오고 냉동차를 이용해 가공 후 외부로 반출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일부 ‘시신’은 사망하지 않아 공장에서 약물주사로 목숨을 끊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03년 11월 ‘요망동방주간(了望東方周刊)’은 시신 가공 공장에 대해 보도하면서 ‘국무원 지도자의 중시와 비준을 받고 국가질량감독검증검역총국(國家質量監督檢驗檢疫總局)은 조사팀을 설립해, 다롄 시체공장의 외자 투자 유치와 상품 수출입 정황 조사를 책임지고 전면적으로 인체 물자 수출입을 규범화시켰다’라고 심도 있게 보도한 바 있다. 적어도 중공 당국이 시신 공장의 존재를 알고서 지원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신기원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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