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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리쥔은 누구인가 – 보시라이를 만나기 전

편집부  |  201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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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원화(文華)


[SOH] 아직 왕리쥔의 일생을 평가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다. 그의 52년 인생은 매체 선전을 통해 알려진 모습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이나 심지어 그 자신에게도 모두 짙은 안개일 뿐이다.

 

중국인들은 숙명(宿命)을 믿으며 또 선과 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우수하고 진취적이며 순박했던 한 청년이 어떻게 ‘중공의 배양’을 거쳐 오늘의 죄수가 되었고, 심지어 양심이 깡그리 사라진 악마로 전락되었을까? 공산 전제(專制)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한 사람을 ‘나사못’으로 변화시켰을까? 여기서는 왕리쥔이 걸어온 길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중공 체제 내부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길을 걷고 있다.


랴오닝의 모 관영언론 기자 왕리청(王力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왕리쥔은 중국 공산당 제14차 대표대회 대표선발에서 ‘소수민족을 우대한다’는 조건을 보고 공산당 대표가 되기 위해 몽골족으로 변신했다. 왕리쥔은 본래 한족이며 이는 그의 당안(檔案)에도 똑똑히 적혀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총명함에 배움을 좋아했고 적극적이고 굳센 성격이었다. 표현욕구도 강했고 어느 정도 조직력도 있었다. 당시에는 굳이 대학입시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학창시절은 마침 ‘지식이 많을수록 더 반동’이라는 문화대혁명을 겪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리쥔은 문무(文武)를 겸비했고 건장한 체격에 눈에는 총기가 있었다. 비록 읽을 만한 책이 많진 않았어도 그는 독서를 즐겼다. 또 미술도 좋아해 중학교 때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를 모방해서 그린 그림은 진품과 아주 유사했다. 그는 또 서예에도 능해 랴오닝성 서예대회에서 5위에 입선한 적도 있다.


어느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왕리쥔은 잊지 못할 유년의 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어떤 사람이 물고기를 잡으려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을 본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강가에서 구경하면서 소리만 질렀다. 이때 갑자기 한 사람이 먼 곳에서 달려오더니 옷을 입은 채 물에 뛰어들었다. 그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후 옷을 짜서 물을 뺀 후 어깨에 걸치고는 가던 길을 갔다. 그는 내 마음속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 이후 왕리쥔은 무슨 일을 하던지 앞장을 섰고 특히 경찰이 된 초기에는 늘 선봉에 섰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느 정도 성격이 변하긴 했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영웅이 되고 용감하게 선봉에 서길 좋아했다.


1984년 4월 25세의 왕리쥔은 톄링시 공안국 교통경찰대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자신의 앞날과 긴밀히 연관된 왕하이저우를 만났다. 왕하이저우는 그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동시에 ‘액운’도 가져다주었다. 왕하이저우는 당시 톄링시에서 꽤 유명한 공안이었다.


왕하이저우는 당시 톄파시 공안국 부국장 겸 부서기로 있으면서 치안, 호적, 교통, 법치, 파출소 사업을 주관했다. 이 해 톄파시 공안국은 10명의 경찰을 뽑아 교통경찰을 보충하려 했다. 선발조건은 우선 공안학교 졸업생이거나 퇴역한 군인간부로 간부 출신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중졸에 사병출신이었던 왕리쥔은 당연히 뽑힐 수 없었다. 하지만 왕하이저우는 옛 친구의 부탁으로 왕리쥔을 만나본 후 그를 추천했다.


이리하여 왕리쥔은 파격적으로 공안국 경찰이 됐다. 그러나 나중에 관방 측 판본에는 이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수정되었다. ‘왕리쥔이 상업국에서 일할 때 치안 관련 일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아주 적극적이며 일을 잘했다. 그래서 나중에 파격적으로 공안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기서는 왕하이저우의 역할이 감춰져 있다.


왕하이저우는 회고했다. “그때 랴오닝성 공안청에서 일선 파출소에 요구목표를 제시했는데 3가지 요구조건이 있었다. 첫째, 어느 정도 업무처리 조건을 갖춰야 하고 둘째, 교통수단이 있어야 하며 셋째, 경찰력이 충분해야 했다. 리쥔은 공안국의 돈은 한푼도 쓰지 않고 샤오난 파출소를 요구표준에 도달시켰다. 오직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샤오난 광산과의 연줄을 이용해 3층짜리 청사를 짓고 지프차, 오토바이, 소형 무전기 등을 마련했다. 사건이 발생하면 반드시 보고했고 사건현장에는 반드시 모습을 보였으며 제때에 사건현장에 도착했기 때문에 성적이 아주 뛰어났다. 때문에 그는 톄파시 공안국의 표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성 공안청으로부터 ‘랴오닝성 공안 기층 선진단위’란 칭호를 받았다. 이 해에 리쥔은 샤오난 파출소장 왕룬위안(汪潤元)과 경찰 리즈룽(李志榮)의 소개로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왕하이저우는 후에 왕리쥔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인이 되었다. 당시 보시라이가 왕리쥔을 발탁할 때였기 때문에 보시라이의 도움을 받은 왕리쥔은 옛날의 은인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이미 요독증 등 각종 질병을 앓고 있었던 왕하이저우는 왕리쥔에게 편지를 써서 연장자로서 후배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2012년 2월 8일 왕리쥔을 모델로 한 드라마 ‘철혈경혼(鐵血警魂)’의 작가이자 저명한 공안문학작가 저우리쥔(周立軍)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에서 ‘내 인생은 왕리쥔과 관련이 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를 친구로 알고 있다’고 했다. 1996년 겨울 저우리쥔은 공안부 진둔영화문화센터(金盾影視文化中心)의 부탁으로 랴오닝 톄링에 가서 왕리쥔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왕리쥔은 전국 노동모범, 전국 10대 우수 경찰이자 14대 중공 대표로 톄링시 공안국 부국장을 맡고 있던 타흑 영웅이었다.


그가 처음 왕리쥔을 만났을 때 그날 왕리쥔의 작전은 톄링공안국 관할의 톄파시에서 ‘성매매를 단속(打黃)’하는 것이었다. 이날 작전은 저우리쥔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듣던 바와 같이 확실히 왕리쥔은 호랑이처럼 거칠긴 하지만 좀 과장이 심하다고 느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는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던 인물이다. 나중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 중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시피 확실히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요 원인은 그의 거친 행동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그의 성격에 대해 과거 공안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창은 왕리쥔이 공부할 때도 좀 거칠고 포악한 면이 있었다고 한다. 톄파에서 파출소장으로 있을 때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파출소에 한동안 수도와 전기가 끊긴 일도 있었다. 하지만 관방에서는 이를 그럴듯하게 꾸며 그의 성격이 너무 강직하고 솔직해서 손해를 보았다고 했다.


2012년 2월 8일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저우리쥔은 대륙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1997년 봄 왕리쥔을 만났을 때 그가 ‘나는 내가 관리들 입속의 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알고 있다. 단맛이 빠지면 땅바닥에 버려져 누구의 신발 밑에 가서 붙을지 모른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1997년이면 왕리쥔이 38세다. 당시 그는 이미 중공 관료사회의 어두움과 비정함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웅이 되고 남보다 뛰어난 인물이 되기 위해 왕리쥔은 껌이 되기로 선택했다.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입에서 줄곧 바닥에 버려질 때까지 기다리는 신세라고 여겼다. [신기원 전재]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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