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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리쥔 사건 시각표

편집부  |  201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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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이산(張海山 중국문제 전문가)


[SOH] 2012년 2월 6일 저녁, 왕리쥔은 한밤중에 여장차림으로 보시라이의 감시망을 뚫고 미국 영사관에 들어가 하루를 체류하며 미국 측에 중공 고위층과 관련된 대량의 기밀자료를 넘겼다. 또 국제경찰 미국을 중공 고위층의 권력다툼에 공개적으로 끼어들도록 만들었다.


‘왕리쥔 사건’은 중공 정부와 민간을 뒤흔들었고 중공이 정권을 잡은 지 62년 만에 최초로 부부장급 간부가 미국 영사관에 투항한 사건이다. 이 소식은 네티즌을 통해 웨이보에 처음 폭로되었고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2월 2일 충칭시 정부 신문판공실(新聞辦公室)은 관방 웨이보(微博)에 충칭시 당위원회에서 왕리쥔이 충칭시 공안국장, 당위원회 서기를 겸임하지 않고 대신 부시장 신분으로 교육과학 등의 영역을 맡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월 3일 충칭시 문화선전공작회의(宣傳文化工作會)에서 보시라이는 이 같은 소식을 유언비어라고 일축했다. 또 충칭정부는 왕리쥔이 공안업무에서 물러난 데 대해 정상적인 인사이동이라고 발표했다.


2월 5일 왕리쥔은 충칭사범대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정신상태에는 이상이 없고 자신이 새로 맡게 된 교육 등의 분야에 대해서도 ‘아주 좋은 학습기회’라고 말하는 등 마치 ‘순종’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이는 아마도 보시라이 등의 시선을 속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월 6일 월요일 관건적인 왕은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이날 저녁 10시 청두 주재 미국 영사관에 들어가 하루를 체류했다.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은 계속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그가 영사관에 들어간 정황을 알기 어려웠으나, 약 1주일 후 미국의 베테랑 기자 빌 거츠(Bill Gertz)를 통해 이 사실이 처음 폭로됐다.


거츠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왕리쥔이 영사관에 들어간 정확한 시간은 저녁 10시쯤이고 영사관에서 하루 체류하는 동안 미국 총영사 피터 헤이먼드(Peter Haymond)와 다른 2명의 영사에게 자신의 정황을 이야기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후 헤이먼드 총영사는 주중 미국대사 로크에게 전화를 했고, 로크는 국무부 고위관리에게 왕리쥔의 망명을 허용할 것을 제안했지만 백악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중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했고, 특히 며칠 후 시진핑 부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로크 대사는 베이징 고위관리에게 연락을 취했고, 왕리쥔은 국가안전부 고위 관리를 따라 베이징으로 가서 보시라이를 고발했다.


이 미국관리에 따르면 중공의 공안, 검찰, 사법을 책임진 중앙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이 보시라이를 대신해 충칭의 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베이징 국가안전부가 직접 나서 보시라이를 조사하거나 체포하지 못하게 했다.
 

미국 측에서 베이징 고위당국자에게만 통지를 했음에도 보시라이는 이를 알고 황치판(黃奇帆) 시장을 통해 70대의 경찰차를 300km나 떨어진 청두까지 파견한 것에 대해 외부에서는 보시라이가 저우융캉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AFP 보도에 따르면 왕리쥔 사건 발생 후 장쩌민파의 실세인 저우융캉이 직접 충칭에 가서 보시라이를 보호했다. 파룬궁 탄압에 적극 가담한 보시라이야말로 저우융캉의 뒤를 이어 정법위 서기가 되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2월 7일 웨이보에는 청두 미 영사관 주변에 대량의 군경이 배치돼 계엄 상태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많은 현장사진이 올라왔다. 한 행인은 통행이 금지된 이유를 물었고 또 A로 시작하는 번호판을 단 지프 한 대가 영사관 밖에 있었는데 경찰에 의해 견인된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도 나타났다. 뒤이어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이 막 충칭시 공안국장에서 물러난 왕리쥔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한 네티즌은 ‘충칭시 부시장 왕리쥔이 청두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탈출해 망명을 요구했으며 망명요구가 거절 된 후 공안요원들에게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이송되었다’라고 했다. 이 소식은 곧이어 인터넷을 통해 대량으로 신속히 전파되었다.
  
2월 8일 저우융캉이 충칭에 와서 비밀리에 왕리쥔 사건을 처리했다. 충칭에서는 전국 법원사법경매개혁 심화공작회의가 8일 소집됐고 저우융캉이 참석해 중요지시를 내렸다. 이때 보시라이는 충칭시 시찰단을 이끌고 윈난성 쿤밍을 시찰했다.


2월 8일 오전 충칭시 정부 신문판공실은 ‘왕리쥔 부시장이 장기간의 과다한 업무로 몸이 몹시 불편해 동의를 거쳐 현재 병가를 내고 치료 중이다’라고 발표했다.


이날 오후 중국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왕리쥔이 미국에 망명을 요구한 사실에 대한 질문에 대해 외교부 대변인 류웨이민(劉爲民)은 충칭시 정부에서 이미 정보를 제공했고 자신은 보충할 말이 없다고 답변했다. 중국과 미국 양국에서 아무런 논평이 없자 사건은 의혹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왕리쥔 사건은 인터넷에서 최고 인기검색어가 되었다.
 

2월 8일 오후 중국 주재 미국 대사관 대변인은 자신은 왕리쥔이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 일에 대해 외부에 논평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청두 미국 영사관은 7일 위협을 받은 적이 없으며 ‘미국 정부 역시 영사관에 대한 안보조치를 강화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월 9일 새벽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충칭시 부시장 왕리쥔이 청두 주재 미국 영사관에 와서 미국 측 관계자와 담화를 나눴고 나중에 ‘스스로 떠났다’고 확인했다.


이날 오전 추이톈카이(崔天凱) 중공 외교부 부부장이 충칭시 부시장 왕리쥔이 청두 주재 미국 영사관을 찾아간 일은 ‘개별적인 사건’이며 아울러 ‘이 문제는 순조롭게 해결되었다’고 말했다.


2월 9일 저녁 왕리쥔이 국가안전부 부부장 추진(邱進) 등과 함께 8일 청두에서 직접 베이징으로 압송되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들이 나타났다. 인터넷에는 왕리쥔과 추진이 탑승한 비행기 티켓이 올라왔고, 왕리쥔의 신분증 번호와 추진의 신분증 번호가 확인되었다.


이후 왕리쥔과 왕리쥔을 연행한 추진 등 7명의 요원들조차 전부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되었다.


2월 10일 충칭 시정부는 보시라이가 윈난을 시찰 중이라는 소식을 발표했다. 그러나 양쯔만보(揚子晚報), 홍콩 문휘보(文彙報) 등은 ‘보시라이가 윈난 모 집단군의 전시실을 참관해 혁명선배들을 추모했다’고 보도하면서 보시라이의 군사적 목적을 부각시켜 중앙에 대해 무장투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2월 11일 저녁 보시라이는 충칭으로 돌아와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와 회담했다.


2월 12일 보시라이는 충칭시 상무위원회를 소집해 ‘충칭의 과학발전을 추진’하되 후진타오의 ‘과학적발전관’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부에서는 이를 후진타오에게 아첨하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날 회의에는 기자들의 출입이 금지되었고 충칭위성TV는 과거 화면을 편집해 왕리쥔이 아직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가 나중에 재편집되었다.


같은 날 공청단파(단파)의 대표주자인 리커창(李克強)의 비서 출신인 관하이샹(關海祥)의 충칭시 장진구(江津區) 서기겸 상무위원 임명이 발표됐다. 이는 후진타오파가 충칭에 자기 사람을 심어 보시라이와 치열한 접전을 예고한 것이다.


2월 13일 중공 기관지 인민일보에서 ‘지방관리들이 당에 충성하는가 여부의 진짜와 가짜 표현(真與假折射地方官員對黨是否忠誠)’이란 사설을 발표했다. 사설은 현재 일부 지방과 기관에서 거짓말을 하고 가짜 일을 꾸미며, 숫자를 날조해 정치업적을 날조하는 현상이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외부에서는 이 사설이 보시라이와 같은 무리를 겨냥한 것으로 보았다.


이에 앞서 홍콩 동향 잡지는 올해 2월호에서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허궈창이 보시라이에게 왕의 부패문제나 조폭소탕 운동에서 상당수의 사건을 조작한 문제 등을 3차례나 언급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해외 중국어 사이트에 따르면 보시라이는 꼬리를 자르고 살길을 도모하기 위해 먼저 손을 쓰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충칭에서 왕리쥔을 먼저 처리해 베이징 중앙기율위원회에 신병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이를 위해 보시라이는 왕의 운전기사부터 시작해 11명의 주변 인물들을 체포했고 또 왕을 핍박해 공안업무에서 손을 떼게 했다.


2월 10일 중국 최고의 사회학자이자 저명한 작가 왕샤오보(王小波)의 아내 리인허(李銀河)가 재경망 블로그에 올린 ‘왕리쥔의 공개편지’가 해외에서 널리 유포되었다.
 

편지에 따르면 왕은 보시라이를 가리키며 ‘그는 모든 사람을 껌으로 간주하며 단물이 빠지면 뱉어버리는데 누구의 발 밑에 밟히든 개의치 않는다. 보시라이야말로 최대의 폭력배 두목이다. 그는 이미 충칭에서 당과 인민을 다스려 모두 자신의 천하로 만들었다. 그의 성격상 중국의 두목이 되지 못하면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이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보시라이가 청렴하다고 하지만 사실 탐오하고 색을 밝히며 멋대로 재정을 낭비하는데 그 액수는 깜짝 놀랄 정도’라고 밝혔다. 그는 또 ‘나는 관련 정황에 대해 많은 자료를 갖고 있고 이미 관계기관에 제보했으며 또 외국에 있는 친구에게 적당한 때에 이 편지를 점차적으로 세상에 공개하라고 위탁해놓았다. 나 역시 이런 자료들이 하루 빨리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전의 각종 보도를 종합하면 왕리쥔이 청두 주재 미국 영사관에 들어간 원인 중 하나는 ‘관련 자료’를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왕은 영사관에 CD 한 장을 남겼고 또 이 일이 있기 전에 관련 증거를 미리 해외에 보냈다.


왕리쥔은 또 편지에서 ‘보시라이는 극도로 무정하고 의리가 없다. 이는 그가 문화혁명 중에 부친과 투쟁하고 형제자매 및 전처를 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그를 위해 갈비뼈 두 대에 칼을 맞기도 했지만 그는 나를 개만도 못하게 대했다. 내가 더 이상은 그를 위해 더러운 일을 하지 않으려 하자 내 운전기사 등을 체포해 나를 위협했다’고 폭로하면서 목숨을 걸고 보시라이를 제거하는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많은 네티즌들은 이 편지를 신뢰하고 있으며, 그의 ‘껌’ 이론은 대륙 작가 저우리쥔(周力軍)이 입증한 적이 있다. 저우리쥔은 과거 왕리쥔의 이야기를 각색한 TV 드라마 ‘철혈경혼(鐵血警魂)’을 찍을 때 왕리쥔과 호형호제하며 가깝게 지낸 적이 있다. 그는 1997년 왕리쥔이 그에게 ‘나는 내가 벼슬아치들의 입 속의 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 맛이 빠지면 땅에 버려져 누구의 신발 밑에 붙을 지 알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고 전했다.


2월 14일 시진핑의 방미기간 중 미국 관리들이 2월 6일 미국 영사관에 들어온 왕리쥔이 미국측에 중공 고위층의 부패자료를 제공했고 이중에는 충칭시 서기 보시라이와 정치국 상무위원 저우융캉 이 비밀리에 시진핑을 끌어내리려 했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 내용이 미국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또 2월 15일 베이징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왕리쥔은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비밀리에 시진핑의 권력이양을 저지하려 했다고 진술했다는 보도가 다른 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보도에 따르면 보와 저우는 시진핑을 공격할 완전한 계획을 준비했고 이 계획을 설 이후 실시할 예정이었다. 이 계획 중의 하나는 자신들이 통제하는 해외매체들을 통해 시진핑에 대한 각종 비판과 비난을 보도하게 해 시진핑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그런 후 보시라이를 중앙상무위원회 정법위서기로 진입시킨다는 것이다. 이후 보시라이가 무장경찰과 공안계통을 장악한 후 기회를 틈타 시진핑에게 물러나도록 협박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방미 기간 중 미국 파룬궁 수련자들은 시진핑이 장쩌민의 길을 걷지 말고 파룬궁 박해를 중지하길 희망했다. 동시에 미국정부가 왕리쥔이 제공한 자료 중 파룬궁 박해와 관련된 내용을 공개해주길 희망했다.


이와 동시에 미 하원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인 일레나 로스 레티넨 의원은 2월 10일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왕리쥔 사건에 관한 서한을 보내 미국 국무부, 특히 중국 업무를 담당한 외교관이 해외주재 미국기관에 들어와 망명을 요구하는 사건에 대해 어떻게 처리하도록 지시했는지 구체적인 업무매뉴얼을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앞서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는 중공이 17대 전에 당시 상무부장 보시라이가 파룬궁박해로 해외 여러 나라에서 기소된 것을 이유로 원자바오 총리가 그의 부총리승진을 강력히 반대했으며 보시라이가 충칭시 서기로 쫓겨난 것은 그의 정치생애에서 마지막 종착점이 될 거라고 폭로했다.


현재 폭로된 자료와 사건의 파장이 커짐에 따라 엄중한 정치적 문제를 지닌 왕리쥔 사건의 조사는 필연적으로 보시라이와 관련이 되며 또 저우융캉에게도 영향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장쩌민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므로 장파의 손실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현재 장파는 도처에 소문을 내면서 이 사건이 ‘엄중한 정치문제’가 아니라 왕리쥔의 정신질환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왕리쥔 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보시라이의 충칭세력은 왕리쥔에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인터넷에 왕리쥔의 ‘진단서’를 퍼뜨렸다. 이 진단서는 충칭 제3군의대학에서 발행한 것으로 왕리쥔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전에 이 대학 부속 다핑(大坪)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진단서에 따르면 왕은 의사와 면담할 때 끊임없이 ‘업무 압력이 너무 커서 장기간 심한 불면에 시달려왔으며 정신적으로 아주 긴장되어 심지어 불을 끄고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진단서가 발행된 날짜는 2월 4일로 병원 인장은 있지만 담당의사의 서명과 면허번호가 빠져 있다. 2월 9일 중국경영보는 제3군의대학 다핑병원에서 이 진단서의 진실성을 부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의 기자가 다핑병원 원무과에 연락해본 결과 병원 측의 한 여직원이 ‘그런 일이 없으며 이는 가짜다’라고 답변했다.
 

이와 관련해 인터넷에는 왕리쥔이 ‘내 명에 죽지 못하면 정신분열증이나 심각한 우울증을 이유로 ‘다른 사람’이 그에게 자살경향이 있다는 뉴스를 발표할 준비를 해놓았다’고 폭로한 내용이 유포되고 있다.


물론 왕리쥔을 제외한 다른 파들의 타협 하에 그를 정신병이나 자살 내지는 실종되었다고 몰아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결과가 어찌되었든 이번 소동을 통해 보시라이가 18대에 상무위원이 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신기원 전재]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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