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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 신전문화의 영웅적 인물 요‧순‧우(堯‧舜‧禹)-5

편집부  |  2019-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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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제3장 대홍수의 겁난


1. 홍수가 처음 나타나다


[SOH] 요임금 만년에 대홍수가 발생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대홍수가 발생한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당시 천하는 기주(冀), 예주(豫), 연주(兗), 청주(青), 서주(徐), 양주(揚), 형주(荊), 양주(梁), 옹주(雍) 등 9구로 나뉘어져 있었다.


9주 밖을 사해(八荒)라 했고 사해 밖을 팔황(八荒)이라 했다. 《설원(說苑)‧변물(辯物)》에서는 고대 중국을 “팔황 안에 사해가 있고 사해 안에 구주가 있는 섬”이라 칭했다.


여기서 기주는 왕기(王畿)의 주로 기(冀)는 기(畿)와 통한다. 다시 말해 임금의 수도가 있는 곳으로 중국(中國)과 천하(天下)를 대표한다. 때문에 《노사(路史)》에서는 “구주에서 오직 기주만은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는데 나머지 8주를 열거하면 경계가 자연히 드러난다. 또 임금의 수도이자 크게 통일되어 있음을 구별한다”고 했다.


지금의 몽골지역은 당시 끝없이 펼쳐진 한해(翰海)였는데 북해(北海)라고도 했다. 기주와 예주 서쪽이 바로 옹주인데 지금의 섬서, 영하 및 감숙성 동부지역이다.


옹주에서 서쪽 종남산 북쪽이 바로 고대의 산해(山海)다. 양산(梁山)에서 나온 산수가 도도히 끊이지 않고 흘러 산해로 들어갔다. 산해의 서쪽은 바로 서해(西海)인데 지금의 감숙, 청해, 신강, 서장 등 광활한 지역이다.


산해의 동쪽은 종극연(從極淵)으로 양우대택(陽紆大澤)인데 황하(黃河 당시에는 대하라 함) 상류에 위치한다. 당시의 동해(지금의 황해 또는 발해)해안선은 지금 상해의 조경(漕涇)과 도경(徐涇), 소북(蘇北)의 동대(東台), 연수(漣水), 연운항(連雲港) 일대, 천진의 묘장(苗莊), 소천장(小王莊)일대였다. 절강과 복건의 구민(甌閩) 일대는 큰 바다였다.


홍수가 발발하자 서해와 산해의 바닷물이 출로를 잃었고 모두 양우대택으로 밀려 들어왔다. 양우대택의 물은 또 하란산, 음산 때문에 한해(瀚海)로 들어갈 수 없었고 다만 맹문산(孟門山 황하의 호구폭포에서 가깝다)에서 시작해 나중에는 여량산(呂梁山) 남과 북으로 갈라져 떨어져내려왔다. 이는 수많은 농경지와 주택을 물에 잠기게 해 많은 사람들이 물고기 밥이 되었다. 특히 옹주는 높은 산에 가로막혀 물에 막혀버렸다.


요임금은 누가 이 물난리를 다스릴 수 있을지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러자 환두가 공공인 공임을 추천했다. 요는 “공공 이 사람은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지만 속으로는 딴마음을 품는다. 겉모습은 공순하지만 천상을 위배하고 천신을 소홀히 하니 치수에 쓰기는 불가하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사농(大司農) 직(稷)도 지금 좋은 사람이 없으니 일단 공임에게 시험삼하 해보게 했다. 요는 어쩔 수 없이 공공에게 치수를 맡겼다.


요는 대사농 직을 곤륜산에 보내 서왕모를 만나보게 했다. 서왕모는 직에게 “이번 홍수는 하늘의 뜻이니 치수할 인물과 치수 시기를 포함해서 모두 정해진 수가 있으니 20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신은 그때에야 비로소우를 파견해 물을 다스리게 하고 수재가 완전히 끝날 것이며 왕모 역시 그때가 되어야 치수를 도와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천지의 깊은 이치가 있으니 겁수는 하늘이 정한 것이다.


2. 3묘를 토벌하다


천하가 홍수가 나자 남방의 삼묘(三苗)가 이 기회를 이용해 반란을 일으켰다. 삼묘란 구리 치우의 후예로 당시에는 주로 동정호와 팽려호(彭蠡湖 지금의 파양호) 사이 즉 장강 중류 남쪽일대에 분포했다. 이들은 세력이 상당히 강했는데 환두 부자의 봉국이었다. 환두 부자는 잔인하고 불인해 전통을 파괴했다.


환두부자는 오래전부터 신하의 도리를 지키지 않았고 반란을 꾀해 여러 차례 난을 일으켰다. 이들은 천하에 대홍수가 나자 사방을 공격해 약소국가들을 집어삼켰다.


요임금이 직에게 삼묘를 토벌할 것을 명하자 단수에서 전투를 벌여 삼묘를 항복시켰다. 삼묘에게 각종 학정과 가혹한 형법을 없애고 성인의 도를 존중하며 기존에 병탄한 여러 나라의 토지를 되돌려주도록 요구하고 숭산에서 환두를 석방했다.


3. 대홍수에 관한 기록과 전설


《상서‧요전(堯典)》에는 요임금이 “물이 넘쳐 넘실거리는 것이 사방에 해를 끼치고, 거세게 쏟아지는 물이 산을 삼키고 언덕을 넘어서 하늘까지 닿을 듯하다(湯湯洪水方割,蕩蕩懷山襄陵,浩浩滔天)”고 탄식하는 내용이 나온다.


또 이족(彝族)의 역사시 《홍수기(洪水記)》에는 신이 천지와 사람을 만든 이야기가 나오는데, 인류가 점차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자 신이 대홍수로 훼멸시키고 좋은 사람을 하나 남겨 새롭게 인류문명을 창조한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홍수의 규모와 범위에서 보자면 요임금 시기의 대홍수는 거의 전 세계적인 것으로 북반구 전체가 홍수에 잠겼다. 세계 254개 민족의 역사 기록이나 민간전설에는 모두 대홍수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이 대체로 비슷하다.


이 대홍수와 관련해 《성경‧창세기》에는 “그 날 하늘의 창들이 크게 열려 큰비가 40일 밤낮 쏟아졌다. 그로 인해 천하의 높은 산이 모두 잠겼다”는 기록이 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에 타고 표류한 지 40여 일 후 고산에 좌초했고 150일째 되던 날 홍수가 완전히 물러갔다.


중국 여러 민족 중에서 유일하게 홍수에 관한 전설이 없는 민족은 낙파족(珞巴族)이다. 이들은 주로 해발고도가 평균 3천 미터가 넘는 지금의 티베트지역에 살았기 때문이다. 대홍수도 이 높이까지 도달하진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계속)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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