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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영웅인물] 한신(韓信) ‘한나라의 천하를 평정하다’ (7)

편집부  |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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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SOH 자료실]


[SOH] 전국시대 말기 여러 제후들이 할거해 분열되었던 국면이 진나라에 의해 통일됐다. 진시황은 재위 37년 순행을 나갔다 사구(沙丘)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진시황은 유조(遺詔)에서 장자인 부소(扶蘇)를 불러 장례를 주관케 하고 도성에 들어와 제위에 오르라고 했다. 하지만 조서를 관리하던 조고(趙高)가 승상 이사(李斯)와 결탁해 거짓 조서로 부소를 자살하게 하고 어린 아들 호해(胡亥)를 황제로 옹립하니 그가 바로 진이세(秦二世)다.


진이세가 즉위 후 진시황의 옛 신하들과 황실의 종친들을 멋대로 살해하자 진시황이 심혈을 기울여 건립한 제국의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이세 원년(기원전 210년)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900명의 수졸(戍卒 변방에서 수자리 하는 군사)을 인도해 가다 대택향(大澤鄉)에서 “나무를 베어 무기로 삼고(斬木爲兵) 장대를 들어 깃발로 삼으며(揭竿爲旗)” 진이세의 통치에 도전했다.


그들은 진(陳) 땅에 정권을 세우고 국호를 ‘초(楚)’ 또는 ‘장초(張楚)’라고 했다. 이를 기회로 각지에서 진나라에 반대하는 인사들이 앞다퉈 자신의 역량을 조직하고 순식간에 군웅이 할거 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마치 여러 제후들이 각축하던 전국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7. 제나라 점령


제나라는 원래 영토가 넓고 인구도 많아 강력한 힘을 지닌 나라였다. 초한이 서로 대치할 때 제나라를 중립을 유지하며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해왔다. 그러다 조나라가 망한 후에야 한신의 공격을 막기 위해 국경에 20만 대군을 파견해 엄밀한 방어에 나섰다.


음험하고 교활한 유방이 한신의 병권을 빼앗긴 했지만 한나라에 대한 한신의 충성심은 여전했다. 그는 곧장 병사들을 모으고 말을 사들여 새로운 병력을 만들어 제나라 공격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한신은 군사들을 다스리는데 뛰어나 새로 모집한 신병들도 단기간 내에 훈련을 통해 작전능력이 뛰어난 정예병력이 되었다. 유방은 새로 모집한 병력이 제나라 군에 맞서기에 부족할 것을 염려해 조참과 관영을 보내 한신을 돕는 한편 한신을 감시하게 했다.


한신이 제나라 정벌에 나서기 직전 유방의 모사 역이기가 제나라에 투항을 권고하러 나섰다. 그는 제나라 왕 전광과 재상 전횡을 찾아가 한신의 기존 전과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위왕 표, 조왕, 헐 및 진여와 하열 등의 교훈과 연나라가 투항한 선례를 들었다. 즉 투항하면 나라와 가문을 보존할 수 있지만 투항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설득한 것이다.


전횡과 전광은 본래 항우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한신과 싸워서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역이기의 설득에 넘어가 한나라에 투항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역이기를 귀한 손님으로 모셨고 동시에 국경 수비를 느슨히 했다.


한신은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진군하다가 아직 평원(平原)에서 황하를 건너기도 전에 역이기가 이미 제나라가 투항하도록 설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록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병력을 되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모사 괴철(蒯徹)은 생각이 달랐다.


괴철은 범양(範陽) 사람으로 원래 이름이 철이지만 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의 이름을 휘하기 위해 ‘통(通)’으로 대신 적어 대부분의 사서에서 괴통(蒯通)이라 한다. 그는 사람됨이 기민하고 총명하며 달변이었다. 진나라 말년(기원전 209년) 진승이 스스로 왕이 되어 대장 무신(武臣)에게 군사를 주어 조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괴철은 이때 무신을 도와 범양령(範陽令)에게 투항을 권고해 조나라 여러 읍에 영향을 끼쳤다. 결과적으로 무신은 단 한사람의 병졸도 잃지 않고 30여개 성을 얻었다. 이 때문에 괴철은 ‘유세가’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괴철은 한신이 중간에 병력을 멈추고 전투를 중단해선 안 된다고 보았다.


“대장군께서 제나라를 공략하는 것은 한왕의 명령에 따른 것입니다. 한왕이 사자를 파견해 제나라에 투항을 권고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장군께 진군을 멈추라는 통지를 하진 않았습니다. 만약 지금 제나라를 그대로 놓아두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이는 한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아닙니까? 게다가 일개 서생에 불과한 역이기가 겨우 3치 혀로 어떻게 저렇게 큰 제나라를 투항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장군의 대군이 국경에서 위력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한신의 그의 말이 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제나라는 힘이 막강해 한나라에 대해 진심을 다하지도 전력을 다하지도 않았다. 만약 나중에라도 형세가 변화한다면 반역을 꾀할 가능성이 높았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제나라를 해결하는 것만 못했다. 이에 제나라가 방심하고 있을 때 신속하게 병력을 이끌어 황하를 건너 제나라 군의 주력을 섬멸하고 가볍게 역하(曆下)를 차지했다. 또 다른 지역도 신속하게 공격해 차지했다. 한신 자신은 한나라 군의 주력을 이끌고 밤낮으로 진군해 제나라 수도 임치(臨淄)로 향했다.


제왕 전광은 한나라 병사들이 왔다는 말을 듣고 역이기가 자신을 속였다고 여겨 “네가 만일 한나라 군을 멈추게 한다면 살려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를 삶아 죽여버리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역이기가 말했다. “큰일을 함에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덕이 높은 사람은 남의 비난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너를 위해서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제왕은 결국 역이기를 삶아 죽였다. (사기‧역생육가열전) 


역이기를 죽인 후 전광과 전횡은 각기 병력을 이끌고 황급히 달아났다. 한신은 병력을 나눠 남은 적들을 추격하게 했고 각 지역에서 제나라 군을 물리쳤다. 결국 제나라 전역이 아주 신속하게 한신의 수중에 들어왔다. 제나라를 멸망시킨 이 전쟁은 전체 과정이 한달도 못되어 완성되었다.


후세 학자들은 한신에게 역이기가 사망한 죄가 있다고 보는데 역이기가 자신보다 공로가 더 커지는 것을 질투해 제나라를 공격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관점은 근거가 없는데 그 이유는 다음 3가지다.


첫째, 한신은 뜻이 높고 흉금이 커서 결코 명예나 이익을 쫓는 무리가 아니다. 그는 병사들을 이끌고 전투를 시작하면서부터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유방은 상을 주기는커녕 여러 차례 승리의 과실을 자신이 차지해버렸다. 하지만 한신은 이에 대해 아무런 원망의 말도 하지 않았고 여전히 충성을 다해 유방을 위해 생각했고 조금이라도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았다. 조나라를 물리친 후에도 한신은 자신의 공을 과시하며 상을 청하지 않았고 대신 장이를 조나라왕으로 추천했다. 이런 한신이 공로를 더 얻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둘째, 삼진을 평정한 후 편지로 연나라의 항복을 받아내기까지 한나라에서 한신의 공로는 이미 유방 수하의 모든 장수와 모사들을 능가했다. 그가 일개 모사와 공로를 다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셋째, 역이기의 사망은 완전히 유방의 음모다. 유방은 형양 전투에서 줄곧 초나라에 비해 열세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하루 빨리 제나라를 공략해 초나라 군의 공격력을 분산시켜 형양을 구원할 절박한 필요가 있었다. 제나라 공략을 위해 유방은 평소 태도와는 정반대로 한신에게 병력을 증원해주었다. 그럼에도 한나라 군의 병력이 제나라에 비해 수적으로 차이가 많이 났다. 이때 역이기가 자발적으로 어려운 임무를 맡아 제나라에 항복을 권하러 간다고 하자 유방이 이를 이용한 것이다.


유방이 이미 역이기를 사절로 보냈음에도 한신에게 진군을 멈추라는 통지를 하지 않은 것이 그 명확한 증거가 된다. 나중에 역이기의 죽음에 대해 유방은 애석해하지 않았다. 원래 유방이란 위인은 자기가 살기 위해 친자식조차 수레에서 여러 번 밀어낸 적이 있다. 자식마저 돌보지 않는 위인이 어찌 하찮은 일개 모사에게 연연하겠는가? 그러므로 역이기를 죽인 허물은 한신이 아닌 유방에게 있다.


이는 유방의 또 다른 계략인데 한신이 전투에서 승리하건 패배하건 모두 좋지 않았다. 만약 한신이 공격하지 않으면 유방의 뜻을 어긴 게 되고 공격한다면 이 역시 유방의 뜻을 어긴 것이다.


당시 제나라 왕은 다만 구두로 유방에게 귀순한다고 동의한 것이지 정식 문서는 없었다. 제나라의 기존 표현을 살펴보면 이런 귀순은 공격부대를 늦추게 하는 계략(緩兵計)으로 사실은 관망하는 것이다. 만약 제나라의 군사력을 철저히 해결하지 못했다면 한신은 마음 편히 남하해 초나라를 공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나라를 멸망시킨 전쟁은 초한의 대치에서 한나라가 뚜렷한 우세를 차지하게 했고 항우에 대한 포위를 완성해 최후의 승리를 보증했다.


조나라를 멸망시키고 제나라를 정벌한 한신의 전투는 모두 전형적으로 병력이 없는 상태에서 소수로 다수를 이긴 것으로 적군을 전부 포로로 잡고 대장을 죽여 나라 전체를 완전히 차지한 것이다. 그것도 불과 몇 개월의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 (계속) 大紀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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