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구루봉에 비를 세우다
[SOH] 시간이 흘러 대우의 치수공정은 7~8할 정도 진행되어 완성이 가까워졌다. 어느 날 대우 일행은 형산으로 가던 중 정상에 올라 제물을 준비해 제사를 지내고 비(碑)를 세워 곧 완성될 치수공정을 기념하기로 했다. 이 비는 구루봉에 세워졌는데, 이후 ‘구루비(岣嶁碑)’ 또는 우왕비(禹王碑)로 불렸다.
구루봉은 형산의 72개 봉우리 중 하나다. 구루비는 이곳의 한 천연 바위 위에 세워졌다. 전설에 따르면 비를 세운 곳은 당시 수명의 위치라고 한다. 구루비는 높이 7척, 넓이 5척, 두께 1척 크기로 77자가 새겨져 있다.
구루비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이다. 비에 사용된 서체가 올챙이를 닮았다 하여 조전(鳥篆 중국 고대의 전서체)이라고도 한다.
대우는 이곳에서 누조(嫘祖 황제의 비)가 남긴 금간옥첩을 얻었는데, 완위산에서 얻은 황제의 소장과 같은 모양이었다. 치수에 성공한 후 이곳에 책을 숨겼다.
상중기의 기록에 따르면 “구루산에 옥첩이 있는데 우가 그 글에 따라서 물을 다스렸다.”고 한다. 오월춘추에서는 “우가 형산에 올라 꿈에 창수사자를 만났는데 금감옥자로 된 책을 주어 치수의 핵심을 얻었고 돌산 높은 곳에 새겨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학자 마허산(馬賀山)선생은 12년에 걸쳐 하나라 문자를 연구한 끝에 구루비의 비문을 다음과 같이 풀어냈다.
이를 현대어로 풀이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임금님의 명령과 총재의 허락을 받아 순임금을 도와 옹수(雝水)와 위수(衛水)를 다스렸다. 물난리가 닥쳐오니 맹세하고 출발하니 저수(沮水) 항수 사이에서 바삐 움직였다. 세 하천에 홍수가 범람해 북으로 기주를 지나 조상과 신령에 제사를 지내니 마치 치수에 바빠 고향을 잊은 것 같았다.
높은 산이나 산기슭에서 자면서 술로 천지에 제사를 올리며 강물이 더는 범람하지 않고 영원히 평정되기를 기도했다. 화악에서 항산과 태산 형산까지 인재를 존중해 하천을 소통시켜 수재를 감소시키고자 했다.
치수공정 중 틈틈이 신령에게 제사를 지냈고 좋은 술을 신께 올리자, 신령이 천도하면 길하다고 알려주셨다. 남방의 물길은 이미 다스려졌고 초목과 의식지 풍부해져 온 나라가 다 편안해졌으니 앞으로는 변경에서 중원에 이르기까지 홍수의 범람이 없을 것이다.”
구루비에는 대우가 순임금의 명령을 받아 기주에서부터 사방을 다니며, 산을 만나면 나무를 깎고 물을 만나면 강으로 이끌며 13년간 세 차례나 집 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않고 치수를 완성해 마침내 홍수를 다스린 전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학계에서는 구루비의 내용이 우공의 기록과 대체적으로 일치하며, 사기 하본기의 관련된 역사적 내용과도 매우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한무제 때 이 자리에 우왕전(禹王殿)을 세웠고 이후 대대로 수리하게 했다. 청나라 동치 9년(1878년) 중수하면서 묘를 만들었는데 면적이 천 평방미터가 넘는다.
한편 구루비 문장에서 천지신령에게 제사를 지낸 것을 보면 대우는 물을 다스리기 위해 어느 지역에 가면 매번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또 산신마다 각기 다른 방식의 제수품을 마련했는데 이는 산해경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계속)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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