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대우가 황하를 다스리다
5. 상류를 제거하다
[SOH] 공임은 원래 직위에서 해임된 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쁘게 변해 조정에 저항하고 수하인 상류(相柳)를 이용해 포악한 짓을 저질렀다. 공임의 봉국은 옹주 서쪽에 있었는데 공임은 상류와 한패가 되어 생령을 해치고 백성들에게 학정을 일삼았다. 또 지리적인 험난함을 믿고 조정에 대항하고 치수를 방해했다. 이에 우는 상류를 죽이고 공임을 체포해 수도로 압송했다. 순은 요임금에게 공임을 유주로 귀양보내자고 건의했다.
옹주를 다스리다
우는 공임과 상류 문제를 해결한 후 계속해서 옹주의 수재를 다스렸다. 동한 시기의 응소(應劭)는 “옹(雍)은 막힌 것으로, 사방이 산으로 가로막혀 굳세고 음기가 막혀 있음을 가리킨다”고 풀이했다.
즉 옹주 서쪽은 황하의 발원지와 호구, 용문이 뚫린 후 이곳에 갇혔던 많은 물이 배출됐지만, 적석산에 가로막혀 상류 쪽에는 여전히 많은 물이 갇혀있었다.
상서 우공에는 대우가 “황하를 적석산에서 용문산까지 이끌어 창해로 흘러들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적석산은 청해성 동남부에 위치하는데 곤륜산맥의 지맥으로 티베트어로는 아니마칭산이라고 한다. 해발 6282m로 황하의 조상이란 뜻이다.
황하의 발원지는 발해다. 고대 발해는 자링호수(紮陵湖)를 포함한 매우 광활한 지역이었다. 즉 황하는 잡일곡(卡日曲)와 약고종렬곡(約古宗列曲)에서 발원해 파안랑마산(巴顏郎瑪山)과 착이타칙산(錯爾朵則山)에 가로막혀 황하 최초의 거대한 호수인 자링호수가 된다.
황하는 자링호수를 지난 후 호수 동남쪽으로 흘러나오는데 중간에 길이 약 20km 폭 300여 미터에 달하는 황하 협곡을 지난다. 그런 다음 9개의 지류로 갈라진 후 다시 두 번째 호수인 악릉호(鄂陵湖 어링호)로 들어가고 우가 뚫은 적석산으로 향한다.
황하는 적석산을 휘감고 동남쪽으로 흘러 청해를 나와 사천으로 흐른다. 민산에서 가로막혀 흐름이 바뀐 후 북서쪽으로 거세게 흐르는데, 적선산과 서경산 사이의 감숙성 마곡현(瑪曲縣)을 지나 청해로 되돌아오면 큰 굽이를 만든다. 이 부분이 바로 ‘구곡황하(九曲黃河)’으 첫 번째 굽이에 해당한다. 이곳에서 대우는 황하의 수원을 다스렸고 적석산을 뚫어 옹주에 쌓인 물이 배출되게 했다.
우는 또 서경산, 주어산(朱圉山)도 뚫었다. 이렇게 되자 옹주의 수재가 해결되었다.
주어산 암벽에는 원래 대우가 치수할 때 유적인 ‘우전주어(禹奠朱圉 우가 주어산에서 제사를 지낸 곳)’라는 절벽이 있었다.
우는 적석산을 뚫은 후 현옥(玄玉 검은 옥)을 얻었다. 《상서 선기검》에 따르면 “우가 용문을 뚫어 적선산으로 이끌자 ‘延喜玉,受德天賜佩’이라는 현규(玄圭)가 나타났다고 한다.
“대우가 적석산에서 치수를 시작할 때” 적석협은 매우 중요한 공정이었다. 적석협은 순화(循化) 사라족 자치현과 민화(民和)회족토족 자치현의 경계로 협곡의 길이가 총 25km에 달한다. 양안에는 큰 산이 우뚝 솟아있고 황하가 계곡을 따라 서쪽에서 아래로 도도히 흘렀는데, 물의 소용돌이가 마치 천둥처럼 크게 울렸다.
《수경주》에는 적석협에 대해 “하북에 층진 산이 있는데 산세가 아주 빼어나다. 산봉우리 위에 수백 장 길이의 입석이 우뚝 솟아있다. 그 아래층에는 암석이 들려 있고 벽에는 계단이 없다. 공중 벼랑속에는 많은 암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적석협에는 협곡 속에 또 다른 협곡이 있다. 그중 한 곳은 남북으로 폭이 불과 6m에 불과해 호도협구(狐跳峽口)라 불린다. 우레같은 소리를 내며 도도하게 흐르는 황하 앞에 서면 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적석협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는 여러 곳에 대우가 치수할 때 도끼와 칼로 깎은 흔적이 남아 있다. 이중 가장 유명한 곳은 부흔애(斧痕崖 도끼자국이 난 벼랑이란 의미)인데 푸르고 흰 벼랑에 도끼에 패인 흔적이 곳곳에 있다.
우는 또 위수 상류의 조서동혈산(鳥鼠同穴山)을 팠고 견산(岍山), 기산, 형산을 뚫어 관중의 황하가 위하(渭河)로 들어가 동쪽으로 흐르게 했다. 위하는 아무런 저항 없이 직접 황하로 들어간다. 경수(涇水), 칠수(漆水), 저수(沮水), 낙수(洛水)는 북쪽에서 위수로 흘러들고 풍수는 남쪽에서 위수로 들어간다. 남쪽으로 흐르던 황하는 화산 북쪽의 동관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이 공정으로 기산과 천수 사이에 잠겨 있던 평지의 물이 빠져, 약수에서 서쪽으로 흘러 삼위산 지역 역시 사람이 살 수 있게 되었다.
우는 또 계속해서 분수(汾水)를 다스려 태원 및 곽태산(霍太山) 일대에서 범람한 물을 분수로 들어가게 했다. 이로 인해 평양(平陽) 서부와 북부 지역의 홍수 위협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렇게 우는 적석산을 뚫어 물을 호구로 내보냈고, 뇌수산(雷首山)—중조산(中條山)—삼문협(三門峽)—지주산(底柱山)—석성산(析城山)—왕층산(王屋山)—태행산(太行山)—항산(恒山)—갈석산(碣石山)을 거치며 황하의 물길이 동관에서 동쪽으로 잘 흘러가게 했다.
이러한 공정으로 북으로 향한 9개 지류는 모두 황하의 물을 받아 순조롭게 바다로 들어가도록 이끌었다. 이에 황하 전체의 수계와 수토가 다스려졌다.
황하는 대우가 다스린 후 비록 하류에서 몇 차례 물길이 바뀌기는 했지만, 당시 공정은 황하에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어 황하는 중화민족의 어머니와 같은 강이 되었다. (계속)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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