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대우가 황하를 다스리다
1. 황하치수
황하는 《한서(漢書)》에 처음 등장하는데 당시에는 하(河) 또는 대하(大河)라 했다.
이 강은 아주 오래 전에는 상류와 하류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지만, 약 1백만년 전부터 ‘황하운동(黃河運動)’으로 황하 상류의 적석협(積石峽)이 절개되면서 협곡의 물이 임하(臨夏 난주 분지)로 들어가 하류로 관통됐다.
황하는 또 약 15만 년 전 ‘공화운동(共和運動)’으로 상류가 용양협(龍羊峽) 위로 침식했고 하류에서는 삼문협(三門峽)이 절개되면서 동쪽으로 흐르며 바다로 유입됐다.
황하는 옹주, 예주, 기주에서 홍수를 막는 중요한 하천이었다. 다시 말해 이는 치수의 주요공정에 해당한다.
치수 공정은 계획에 따라 기주 지역부터 시작됐다. 대우 시기의 기주는 지금의 산서성 전체와 하남성 황하 이북 및 하북성 서쪽과 내몽골 음산(陰山) 남부에 해당하고 동쪽으로는 요녕성 요하 서쪽지역까지 포함한다. 이곳이 바로 《우공(禹貢)》에 왕기(王畿)라 지칭한 곳으로 천자가 직접 관리하는 지방이다.
당시 동해에는 천오(天吳)와 망상(罔象)이라는 두 괴물이 있었다. 이 괴물들은 치수공정과 그 작업에 참여한 많은 이들을 해쳤다. 이에 우는 동해신 우괵(禺虢)에게 이 두 괴물을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우괵은 자신의 수하인 응룡(應龍)을 파견해 우의 치수를 돕게 했다. 응룡은 일찍이 황제가 치우를 격파할 때도 황제를 도와준 적이 있다. 그는 수맥과 지맥을 꿰뚫고 있어 굴을 파거나 길을 내는 계획을 손쉽게 세울 수 있었다.
한편 우는 청주와 연주(兗州) 일대의 왕옥산(王屋山)에서 제수(濟水)의 물을 뚫어 황하로 흘러들게 했고 동쪽으로는 하택(荷澤)으로 향하게 했다. 옹수(雍水)는 하택과 저수(沮水 지금의 청수하)에 이른 후 합수가 되어 뇌하택(雷夏澤)으로 들어간다. 또 동북으로 나아가 문수(汶水)와 만나는데 북으로 흐른 후 방향을 동쪽으로 바꿔 바다로 흘러간다.
우는 응룡의 도움으로 황하 하류인 연주, 청주와 기주 지역에서 9개의 수로를 파 동해를 물을 배출시켰다. 우는 이 과정에서 갈석산(碣石山)을 뚫어 산 서쪽에 쌓여 있던 물을 바다로 빠지게 했다.
석성산(析城山)과 왕옥산(王屋山) 일대에는 지행술에 능한 7인이 해악을 끼쳤다. 서성왕군(西城王君)이란 선인이 운화 부인의 요청으로 이들을 제압했다. 운화 부인은 우에게 보낸 일곱 천장(天將)과 함께 천지 14장(將)이 되었고 이후 치수 과정에서 우를 돕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왕옥산에는 동굴(도가 36동천 중의 하나)이 하나 있었는데, 서성왕군은 그 동굴의 천연 석갑에서 수련서 한 권을 꺼내 우에게 주었다. 그러면서 “만약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부지런히 수련한다면 속세를 벗어나 성인이 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면서, “만약 수련성취해 도를 얻게 되면 이 책을 원래 위치에 놓아달라”고 말했다.
2. 지주산을 뚫다
《수경주(水經注)》에는 “지주(砥柱)는 산 이름이다. 옛날 우가 홍수를 다스릴 때 산 언덕에 있는 물을 소통시키기 위해 산을 깨뜨렸는데, 하수의 지류가 산을 감싸고 지날 때 물에 비친 모습이 ‘기둥’과 같다 하여 이 산을 지주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중류지주(中流砥柱)’라는 사자성어도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때부터 중류지주는 중화민족의 정신적 상징으로 비유됐다. (계속)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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