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물을 다스려 신주를 만든 우임금
2. 물난리를 살피며 신적을 드러내다
모친이 사망한 후 문명은 부친인 곤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가는 도중에 서왕국 선생께 들러 인사를 드렸다. 그의 학문은 울화자와는 달라서 정심(正心), 수신(修身), 나라를 다스리는 도에 관한 것으로 문명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노정 중에 문명 일행은 물을 다스리기 위해 쌓은 수백 리에 달하는 거대한 제방을 보았다. 그는 이 방법이 울화자 스승이 가르쳐준 것과 다르다고 느꼈다.
문명은 곤을 찾아간 후 부친의 곁에 머물렀다. 그는 도처를 살펴보며 점차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산에 둘러 쌓인 이 많은 물에 출로를 만들어주면 물의 성질에 따라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갈 것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산속의 물을 내보내려면 반드시 산을 뚫어야 했고 지면의 물도 반드시 땅을 파서 물길을 파야만 했다. 이 일은 거대하고 비할 바 없이 힘든 공정이었다.
그는 부친에게 자신의 견해를 제안했다. 그는 “높은 것은 뚫어서 통하게 하고 얕은 것은 소통시켜 내보내자”고 제안했다. 곤은 산을 뚫고 땅을 파는 이 두 가지 일을 하려면 아주 많은 인력과 물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이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문명은 두 수종을 데리고 각 지역을 다니며 지세와 물의 세력 및 근원을 살펴보았다. 그는 이 홍수는 오직 신의 보우와 도움이 있어야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회수 유역에서 그는 대성지를 만나 스승으로 모셨다. 대성지는 문명에게 “이번 홍수는 천지의 큰 변화”라 사람의 힘으로는 만회할 수 없다면서 그에게 아주 좋은 제안을 했다.
문명은 항산(桓山)에서 우연히 항산의 신, 하봉산(河逢山) 신 및 포독산(抱犢山) 신을 만났다. 이들은 그에게 남방에 가서 치수의 방법과 도구 및 인재를 구하라고 알려주었다.
《오월춘추》에는 “구의산 동남쪽에 천주산이 있는데 완위(宛委)산이라고도 불린다. (산꼭대기에 책이 한권 있는데) 옥으로 받쳐져 있고 큰 바위로 덮혀 있다. 그 책은 황금 간찰로 되어 있고 글자는 푸른 옥이며 백은으로 엮었다. 문장은 전부 전서체로 되어 있다. 우가 동쪽으로 순행하다 형산에 올라가 책을 구했다.
붉은 무늬의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 자칭 현리창수玄夷倉水의 사자라면서 우를 찾아와서는 지금 재계하고 3월에 와서 다시 구하라고 했다. 우가 3일을 목욕재계하고 완위산에 올라가 책을 얻었는데 물을 통하게 하는 이치를 얻어 마침내 천하를 두루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이 남쪽으로 가서 한수(漢水) 유역에 이르렀을 때 울화자의 편지를 갖고 온 사람을 만났다. 편지에서는 완위산(지금의 절강성 소흥시 동남쪽에 있는 옥사산玉笥山)에 가서 경건하게 목욕재계한 후 적벽이규赤碧二圭와 12책의 장서를 찾게 했는데 수맥지리, 산천도로에 대해 아주 상세한 책이다. 여기서 적규와 벽규는 지하 깊은 곳을 비춰볼 수 있었기 때문에 치수에 있어 뛰어난 보배였다.
또 무산 부근을 지날 때 서왕모가 파견한 운화부인(雲華夫人)이 문명을 보러 왔다. 그녀는 문명에게 상청의 보문(寶文 보귀한 문서) 2부를 주었는데 하나는 천신을 소환하고 하나는 지지(地祗)를 소환할 수 있었다. 또 육지에서 호랑이나 표범을 몰아내고 물에서는 교룡을 제압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수화를 마음대로 드나들고 장생할 수 있었다.
그녀는 또 휘하의 일곱 천장9天將)을 속세에 내려보내 문명의 치수를 돕게 했다. 이외에도 운화부인은 또 우에게 치수를 위한 3가지 대책을 전수해주었다. 나중에 운화부인은 문명에게 자신과 서왕모 모두 필요시 치수를 돕겠다고 약속했다.
《산해경‧해내경》에는 “홍수가 하늘에 닿자 곤은 상제의 명령을 기다지리 않고 식양(息壤)을 훔쳐 홍수를 메웠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식양이란 끊임없이 자라는 토양으로 땅에 조금만 던져도 곧장 크게 성장해 산을 이루고 둑을 이뤘다. 곤은 천제의 식양을 훔쳐 둑을 쌓았지만 천제의 뜻을 어겼으니 그 결과는 뻔했다.
결국 큰 둑이 무너져 홍수가 터져 수습할 수 없게 되었고 수많은 백성들이 죽거나 다쳤다. 곤의 9년에 걸친 치수는 ‘성공하지 못했고’ 순은 곤을 우산으로 유배 보낼 것을 건의했다. 어떤 기록에서는 축융이 명을 받아 우산에서 곤을 주살하자 곤이 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곽주는 《귀장(歸藏)‧계서(啟筮)》를 인용해 “곤이 사망한 후 3년간 썩지 않았는데 칼로 베자 황룡으로 변했다.”고 한다. (계속)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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