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대홍수의 겁난
4. 대홍수의 고도
대우가 물을 다스릴 때 형산(衡山) 구루봉(岣嶁峰)에 천연 바위 위에 비석을 세웠다 전설에 따르면 비석이 세워진 곳이 바로 당시 수면의 높이였다.
《수경주(水經注)》에는 “강물이 협동(峽東)을 지나 의창현(宜昌縣) 삽조(插灶) 아래를 지나는데 강의 좌측 언덕은 수백 장에 달하는 절벽이라 나는 새조차 살 수 없다. 그런데 절벽 중간에 수척에 달하는 불에 탄 흔적이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옛날에 홍수가 났을 때 사람들이 절벽에 다가갔을 때 남은 불을 꽂아놓은 것이 지금까지 존재해 이를 삽조라 부른다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예문류취(藝文類聚)》에는 “의도(宜都) 이릉현(夷陵縣) 서쪽 80리에 고광산(高筐山)이 있다. 이 산은 오래 전부터 요임금 때 발생한 홍수 당시 잠기지 않고 마치 광주리 같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의도는 지금의 호북성 의창 부근의 지성(枝城)이다.
대만 고산족의 전설에 따르면 홍수가 2천 미터 정도 높이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족의 전설 중에는 한 남매가 백두산(장백산) 정상에 표류해 다행히 난을 벗어났다고 한다. 백두산은 장군봉을 주봉으로 인근에 2천 미터 이상의 높은 산봉우리들을 거느리고 있다. 다시 말해 당시 홍수의 최고 수위가 2천 미터 미만이었다는 뜻이다.
필리핀 전설에는 대홍수로 위간(Wigan)과 부간(Bugan) 남매만 남겨놓았다고 하는데, 2천 미터 이하의 고산은 물에 잠겼다.
그리스 신화에는 데우칼리온과 피라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내용에도 홍수 당시 2천미터 이하의 고산이 모두 물에 잠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구루봉의 우왕비(대우공덕비)는 원래 호남성 경내의 남악 형산 구루봉에 있었기 때문에 구루비(岣嶁碑)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비석은 우임금의 유적을 찬양하기 위해 세워졌기 때문에 우비 또는 우왕비 또는 대우공덕비라고도 한다.
5. 신기한 요산
《태평어람(太平禦覽)》 769권 군국지에는 “제주(濟州)에 부산(浮山)이 있다. 노인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요임금 때 큰 비가 내렸을 때 이 산은 물 위에 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이 암석 사이를 배를 타고 유람했는데 지금도 끊어진 쇠사슬이 남아 있다.”
산서(山西) 부산현(浮山縣)은 태악산의 남쪽 기슭 임분 분지의 동쪽 경계에 있는데 해발 평균이 1200미터 이상이다.
민간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은하수가 기울어지면서 큰 비가 쏟아졌고 오랫동안 그치지 않았으며 여량의 맹문산(孟門山) 꼭대기에서도 물이 나왔다. 강과 하천이 범람해 큰 바다처럼 되었다. 유독 물의 높이에 따라 떠오르는 산이 있어 이를 부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요임금이 이곳에서 비를 피했기 때문에 요산이라고도 한다.
중국 여러 곳에 ‘부산’이란 지명이 있지만 다른 곳은 물이 해당 산에 퍼진 여러 바위를 떠오르게 했다면 부산현의 부산은 의미가 좀 다르다. 즉 산 전체가 다 홍수에 의해 떠올랐다. 당시 대지가 혼란해 산 주변이 홍수에 포위되었는데 기이한 것은 이 산에 거주하는 민중들은 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인은 이 산 자체가 사방에서 떨어지는 맹렬한 물과 함께 오르내려 마치 배처럼 물과 함께 자유자재로 오르고 내렸기 때문이다.
이 기이한 이야기는 청나라 《가경일통지(嘉慶一統志)》에 기재되어 있다. 어떤 이는 부산 지하에 풍부한 석탄이 매장되어 있는데 석탄의 비중이 돌보다 가볍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물에 뜰 수 있었다고 본다. 어쨌든 석탄의 비중은 그래도 물보다는 크다. 그러므로 산 전체가 물위에 떠서 오르내렸다는 이야기는 기적이자 신적이라 할 수 있다.
부산현의 이 특수한 ‘부산’은 평정현(平定縣)의 동부산(東浮山)과 서로 대응하는데 일부 책에는 서부산(西浮山)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고조 무덕 2년(619년)에 처음으로 부산이라 칭했다. 이듬해 어떤 사람이 이 현에 있던 양각산 아래에서 신인을 봤기 때문에 신산현으로 고쳤다. 금나라 대정 7년(1167년)에 다시 원래 명칭을 회복해 부산현이 되었다.
사실 현지 민간의 전설에 따르면 신산은 고대 순임금 시기에 이미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라, 전체 산이 물에 떠라 오르내려 거주민들이 편안했다는 것은 일찍이 신기를 충분히 펼쳐보인 것이니 신이 이 산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어찌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6. 대홍수의 내원
그렇다면 이렇게 일망무제하고 전 지구를 덮어버린 거대한 대홍수는 또 어디에서 온 것일까?
성경에는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는 제우스가 인류가 갈수록 잔인무도해지며 정의와 예절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홍수로 인류를 없애도록 결정했다.
마야인들의 ‘포폴 부흐’에는 신이 천지창조 후 처음 인류를 만들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조물주의 존재를 망각하고 신에게 불경하자 한 차례 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말살시켰다고 한다.
이처럼 각 민족의 기록이나 전설 중에는 인류의 도덕이 보편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신이 대홍수를 내려 인류를 징벌하고 오직 극소수의 선량한 사람만 살아남게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대홍수는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리고 해일이 생겨 초래한 거대한 재난이었다. 산해경의 기록에 따르면 대홍수 이후 많은 지역에 초목조차 자라지 못했다고 한다.
이 대홍수는 이 시기 인류의 거의 모든 문명을 훼멸시켰다. 서양문명은 거의 완전히 훼멸되어 사라져버렸고 중화문명 역시 새로 개창되었지만 일부 문명은 보존되었다. 이것이 바로 일부 지역의 사람들이 깊은 문화적 내포를 지니게 된 배경이다.
혹자는 요임금 시대의 대홍수를 두 차례 문명이 경계선으로 보기도 한다. 확실히 현재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적의 하나인 상서는 요임금 이후를 역사적 사실로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화민족의 진정한 체계적인 기술은 바로 요·순·우시대 다시 말해 대홍수 시대에서 시작된다. (계속)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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