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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 신전문화의 영웅적 인물 요‧순‧우(堯‧舜‧禹)-4

편집부  |  2019-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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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성왕이 내려와 요의 하늘을 열다


4. 천명을 받들어 제위를 잇다


사방의 제후들이 요의 위덕이 날로 커지는 것을 보고 모두 그를 제위에 옹립하고자 했다. 제지 역시 자신이 요보다 못함을 느끼고 제위를 이은 지 9년 만에 양위조서를 내려 요에게 제위를 선양했다.


전설에 따르면 요가 태산을 유람할 때 문득 한 마리 청룡이 나타났다. 그가 용을 타고 날아오르자 산봉우리가 떨어져 나갔고 고개를 들자 천문(天門)이 크게 열린 것을 보았는데 정수리에서 불과 5척에 불과했다.


요임금이 제지를 이어 천하의 주인이 되니 이가 바로 제요(帝堯)로 평양(平陽)에 도읍을 정했다.


요임금은 제위에 오른 후 늘 민간의 현인과 도인을 찾아가 묻고 정치의 득실을 관찰하곤 했다. 한번은 요임금이 적장자여(赤將子輿) 벌갱(筏鏗), 무함(巫鹹) 등을 방문한 후 그들을 조정으로 불러 관직을 맡겼다. 이외에도 백성자고(柏成子高)와 장과로(張果老) 등이 서로 도왔다.


요임금은 분수(汾水) 북쪽의 고야산(姑射山)을 찾아가 4분의 수도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들의 이름은 방회(方回), 선권(善卷), 피의(披衣 포의라고도 한다)와 허유(許由)였다. 요는 어른을 상대하고 스승을 상대하는 예절로 그들을 찾아가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구했다. 요는 또 윤수자(尹壽子)를 스승으로 삼았다.


요임금 5년 남이의 월상국(越裳國)이 사신을 파견해 축하하며 큰 거북 한 마리를 바쳤다. 사자의 말에 따르면 이 거북은 신구(神龜)로 수명이 천년이 넘는데 직경이 3척이 넘고 등에는 천지 개벽 후의 인류 역사가 빽빽이 기록되어 있었다. 요임금은 몹시 기뻐하며 사관에게 사서에 기록하게 했다.


요임금은 천하를 9주로 나누고 정기적으로 사방을 순시했으며 사방제후들의 의견을 구하며 정치의 장단점을 조사하곤 했다. 또 방목을 설치해 민심에 귀 기울였으며 천하를 다스리는데 전력을 다했다.


사기에는 요임금에 대해 “그 인자함은 하늘과 같고 그 지혜는 신과 같았으며 가까이 다가가면 태양과 같고 멀리서 바라보면 구름 같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았고 고귀하면서도 오만하지 않았다. 선량하고 덕이 있는 사람을 존경했으며 늘 마음속에 천하 백성들을 담고 구족이 서로 친하고 백성들이 서로 화목하게 했다. 그는 인자하고 총명했으며 천지에 덕이 가득했고 백관들의 정치적 업적도 두드러졌고 각 부족들도 모두 평화롭게 지냈다.


《설원(說苑)》에 따르면 “요는 어질고 덕이 있어 교화가 널리 퍼졌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상을 주지 않아도 서로 권하고 벌을 주지 않아도 서로 다스렸으니 이것의 요임금의 도(道)였다.


천하가 이렇게 태평해지가 한 80세 노인이 격양가(擊壤歌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면 부르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 내용은 “아침에 나가 일하고 저녁이면 들어와 쉬네, 우물을 파서 물 마시고 밭을 갈아 밥 먹으니 임금님이 내게 무슨 덕을 베풀었단 말인가.”라고 했다. 이를 보더 사람이 “임금님의 덕이 크기도 하구나!”라며 감탄했다.


5. 예가 9개의 태양을 쏘다


당시 화읍국(華邑國)에서 “태양에서 한가닥 검은 기운이 나와 태화산을 여러 번 에워싸더니 태화에서 한 물건이 발견되었는데, 모양은 뱀과 같으며 다리 6개와 날개 4개가 달렸다”며, “전설에 따르면 이는 천하에 큰 가뭄이 들 징조”라고 보고가 들어왔다.


또 북방 탁록국(涿鹿國)에서는 “황제가 치우를 싸워 이길 때 황제를 도와 폭우를 내리게 했던 여발(女魃)이 남쪽 기주로 들어가서 기주에 가뭄이 들어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뒤이어 하늘에 4개의 태양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하늘에는 두 태양이 있을 수 없으니 그중 세 개는 분명 요사한 별일 것”이라고 말했다.


요임금은 예에게 명령을 내려 요성(妖星)을 제거해 백성들의 재앙을 없애도록 했다. 예는 진짜와 가짜를 가릴 수 없음을 걱정하면서 만약 진짜 태양을 쏴서 떨어뜨리면 큰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까? 라고 했다. 이에 요임금은 “그것이 진짜라면 쏘아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10개의 태양이 동시에 하늘에 나타났다. 예는 활과 화살을 들어 연속으로 여러 화살을 쏘았지만 하나의 태양도 떨어지지 않았다.


요임금은 걱정으로 마음이 타들어갔다. 이때 적장자여(赤將子輿)가 말했다. “홍애선인(洪崖仙人)의 말에 따르면 임금님께서 먼저 재계하고 경건하게 천지조종에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예에게 비록 신전이 있다고는 해도 임금님의 정성이 필요합니다.” 이에 요임금은 3일간 목욕재계하고 천지에 제사를 지냈다.


한편 《산해경‧대황남경(大荒南經)》에 따르면 “동남해의 밖 감수(甘水) 사이에 제준의 처 희화(羲和)가 10개의 태양을 낳았다. 전설에 따르면 이들 태양은 동방 천제인 제준의 아들로 종종 동해 밖 양곡(陽谷)에 머문다.”라고 했다. 10개의 태양이 동시에 하늘에 떠오르자 초목은 메말라죽고 강물이 말라버려 대지가 초토로 변했다. 사람들은 뜨거워서 숨이 차 죽을 지경이었다.


예는 명을 받고 곤륜산 위로 올라가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며 태양들이 돌아갈 것을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예는 신전(神箭)을 장전하고 한 발 한 발 쏘았고 그때마다 태양이 하나씩 떨어졌다. 결국 하늘에는 오직 1개의 태양만 남게 되었고 날씨가 다시 시원해졌으며 음양이 조화를 얻었다.


6. 역법을 만들고 사시음양을 조화롭게 하다


상고시대에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천문과 천상을 관찰하고 사시를 바로잡고 음양을 조화롭게 하며 천지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이것은 신과 소통하는 방식의 하나였다.


요임금이 제위를 이은 후 사시가 무질서해졌고 음양이 조화를 잃었으며 천지운행이 원래 순서를 따르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반드시 천지의 운행질서를 바로잡고 역법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요임금은 희중(羲仲), 희숙(羲叔), 화중(和仲), 화숙(和叔) 등 4명에게 사시와 사방을 나누어 다스리게 했다. 아울러 이들 4인에게 천문을 관측하고 천문과 절기를 관장하게 했다. 또 일월성신과 만물을 관측해 사시를 바로잡게 하고 역법을 제정해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시기를 알리게 했다.


희중에게는 동방의 양곡(陽谷)에 머물며 일출을 맞이하고 태양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시각을 관찰하고 판별하게 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고 황혼시에 조성(鳥星 심수일心宿一)이 정남방에 뜨는 때를 중춘(仲春)이라 하고 이 날을 춘분(春分)으로 정했다.


희숙은 남방의 교지(交趾 지금의 베트남)에 머물면서 태양이 남쪽으로 운행하는 상황을 관찰하고 판단하게 했으며 남쪽에서 태양을 맞이하게 했다. 낮이 가장 길고 동방 창룡7수 중 화성(火星 심수이心宿二)이 정남쪽 하늘에 뜨는 때를 중하(仲夏)로 하고 이날을 하지(夏至)로 정했다.


화중에게는 서쪽의 매곡(昧谷 해가 지는 골짜기란 뜻)에 머물면서 해가 지는 것을 맞이하고 태양이 서쪽으로 지는 시각을 관찰하게 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북방 현무7수 중 허성(虛星)이 황혼 무렵 정남방에 나타나는 때를 바로 중추(仲秋)라 하고 이날을 추분으로 정했다.


희숙에게는 북방의 유도(幽都)에 머물며 태양이 북쪽으로 운행하는 상황을 관찰하게 했다. 또 낮이 가장 짧고 황혼 무렵 서방 백호7수 중 묘성(昴星)이 정남방에 나타나는 때를 바로 중동(仲冬)이라 하고 이날을 동지로 정했다.


관찰에 근거해 요임금은 1년을 366일과 춘하추동 4계절로 정했으며 3년마다 한 번씩 윤달을 두어 역법과 사계절의 관계를 조절해 매년 정확한 때에 농사를 짓게 했다. 상서(尚書)‧요전(堯典)》에는 “366일을 기간으로 윤달로 사시를 정하고 1년을 삼게 했다.”고 기록돼 있다.


한편 《송서(宋書)‧부서지(符瑞志)》의 기록에 따르면 “명협(蓂莢)이란 풀이 궁궐 돌계단 틈새에서 나왔는데 매월 초하룻날부터 하루에 하나의 콩깍지[莢]가 생겨 나와 보름이 지나면 열다섯 개가 되었다. 또 열엿새 이후로는 매일 하나씩 떨어져서 월말이 되면 다 떨어졌다. 만약 그 달이 작은 달(29일)이면 마지막 콩깍지가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말라버렸다. 요임금이 이를 신기하게 열겨 명협 또는 역초(曆草)라 불렀다.”


명협에 대한 관찰과 결합시켜 결국에는 365일을 1년으로 삼고 다시 별자리, 기후, 인시를 관찰하고 365도 주천도수에 따라 추산하여 윤달을 파악하고 삭과 망, 큰달 작은 달을 정하게 했다.


새로운 역법은 사시한서와 절기 등에 대해서도 명확히 정의해 석달을 한 계절로 삼고 12달을 1년으로 삼았으며 365도 주천도수에 따라 윤달을 정해 큰달은 30일 작은 달은 29일로 했다. 또 하루를 12시(時 지금의 2시간)로 나누고 1시는 8각(1각은 지금의 15분)으로 나눴으며 시간과 절기에 법도와 규칙이 있게 했다. 이렇게 되자 사시의 운행에 질서가 생겨났다.


7. 상서로움을 드러낸 경성(景星)


요임금 때 전해진 민요 중에 “그 인자함이 하늘과 같고 그 지혜가 신과 같으며 태양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구름처럼 땅을 덮으시니 임금님의 덕이 밝고 밝아 온 하늘이 함께 경축하네(其仁如天,其智如神,如日溫心,如雲蓋地,帝德昭昭,普天同慶⋯⋯)”라는 내용이 있었다.


술이기(述異記)》에는 “요는 어진 임금으로 하루에 10가지 상서로운 일들이 나타났다.”라고 했다. 요임금 시기에 덕정이 밝게 펼쳐지고 문치가 창성했으며 무공이 혁혁해 만민이 생업을 즐겼다. 임금의 덕이 하늘을 감동시키니 하늘이 10가지 상서로움을 내려 요임금에게 복을 내렸다.


이중 가장 뚜렷한 것은 바로 경성(景星)의 출현이었다. 죽서기년에 따르면 “요임금 42년 경성이 기에서 나타났다(景星出於翼).” “재위 70년에 경성이 익에서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한서(漢書)‧천문지(天文志)》에는 “경성이란 덕성이다. 그 모양이 정해진 바가 없는데 늘 도가 행해지는 나라에 나타난다.”라고 했다. 《정의(正義)》에서는 “경성의 모양은 마치 반달과 같은데 그믐과 초하루 사이에 나타나서 달을 도와서 밝혀준다. 이를 본다면 임금이 덕이 있고 총명하며 성스러움을 경축한다.”고 했다. 《손씨서응도(孫氏瑞應圖)》에서도 “경성은 왕이 사사로이 여기는 사람이 아니면 나타난다.”고 했다. 즉 경성은 상서롭고 경사스러움을 지닌 별인데 군주가 덕이 두텁고 도가 있으며, 천하를 사사로이 여기지 않아서 하늘을 감동시켜야 비로소 나타난다는 의미다.


경성의 모양은 반달과 같으며 그 빛이 보름달보다 더 밝다. 한편 익성(翼星)은 28수 중의 하나로 모두 22개의 별이 있는데 남방에 위치하며 붉은색이다. 요임금이 익성의 정화라는 기록이 존재한다. 경성이 두 차례나 익의 위치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바로 요임금이 신이 세상에 내려왔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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