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상룡(翔龍)
[SOH] 아주 오랜 옛날 초승달 모양의 타이후호(太湖) 옆에 자리잡고 있는 오계진의 왕수재의 서당에는 매일 같이 진흙투성이의 옷을 입고 와서 글공부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아이를 이름 대신 진흙이라는 뜻의 황니랑(黃泥郎)이라고 불렀습니다.
황니랑은 특이한 버릇이 있었는데 타이후호에서 폭풍이 불거나 큰 비가 내리면 책상에 엎드린 채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잠이 들면 폭풍이나 비가 멈출 때까지 누가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으며 깨어날 때는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습니다.
스승인 왕수재가 왜 날씨만 궂으면 잠을 자는지 물으면, 황니랑은 그저 멍한 표정만 지을 뿐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황니랑이 잠에서 깨어나자 스승은 회초리로 책상을 두드리며 화를 냈습니다.
“너는 공부하러 온 거냐, 잠을 자러 온 거냐, 그렇게 계속 잠만 자려거든 내일부터 서당에 나오지 말거라.”
황니랑은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마지못해 대답했습니다.
“스승님 저는 잠을 잔 것이 아닙니다. 타이후호에서 사람이 빠져 생명의 위험을 느껴 구해달라고 고함을 지르면 저는 가서 구해야 합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너는 매번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면서 언제 사람을 구했다는 거냐.”
스승은 머리끝까지 화가 뻗쳐 회초리로 황니랑을 때릴 태세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스승님께서 못 믿으시겠다면, 오계항으로 가 보세요. 제가 구한 다섯 척의 배가 있을 겁니다.”
스승은 그 말을 듣고 제자를 시켜 알아보게 했습니다.
제자가 오계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 우리를 구해 준 진흙투성이의 아이는 어디를 간 거지? 그 아이가 아니었으면 우린 지금 황천객이 돼 있을 거야.”
제자가 돌아와 스승에게 항구에서 들은 대로 이야기를 전해주었으나 스승 왕수재는 반신반의했습니다.
한번은 스승이 황니랑이 잠자는 틈을 타서 그의 한쪽 신을 숨겼습니다. 황니랑은 깨어나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스승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이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누가 내 신을 숨겨 한참 동안 찾다가 할 수 없이 한쪽 신만 신고 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체되어 배 10척 중의 8척밖에 못 구하고 두 척은 암초에 부딪혀 제 한쪽 신으로 새는 배 한척은 막았으나 나머지 한 척은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스승은 아이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직접 항구로 가 보았습니다. 항구에서는 황니랑의 말대로 선주들이 모여 자신들을 구해 준 황니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승은 돌아와 황니랑에게 숨겨 던 신발을 내 주며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장난삼아 네 신발을 숨긴 탓에 배 한 척을 해쳤구나.”
“이제 신발은 필요 없습니다. 지금부터는 맨발로 다니겠습니다.”
황니랑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스승은 더는 황니랑의 잠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태풍이 부는 날이었습니다. 스승이 잠이 든 황니랑의 얼굴을 바라보니 전에 없이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스승은 안타까운 마음에 부채를 가져와서 부쳐주었습니다. 부칠수록 땀은 더욱더 많이 흘러내렸고 스승은 힘이 들었으나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사이엔가 황니랑의 땀구멍에선 피가 나오기 시작했고 아이는 깨어나지 못한 채 그대로 죽었습니다.
스승의 상심은 극에 달해 그를 안고 이틀 밤낮을 통곡했습니다. 삼일째 되는 날 스승 왕수재의 꿈에 황니랑이 맨발로 나타나 스승에게 말했습니다.
“스승님은 저를 도와주려 했지만, 부채를 부친 것이 역풍이 되어 제가 돌아올 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저의 몸은 비록 죽었지만 영혼은 영원히 타이후호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후에 큰 비나 폭풍을 만나면 ‘맨발의 황니랑’이라고 고함쳐 부르면 제가 오겠습니다.”
스승은 깨어나 항구의 선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 말을 전했습니다. 뱃사람들은 황니랑이 죽은 것을 알고 크게 낙심했으며, 그를 기념하기 위해 타이후호 가녘에 사당을 짓고 조각상을 세웠습니다.
풍문에 의하면 한나라 광무제 유수(劉秀)가 타이후호에서 곤경에 빠진 것을 황니랑이 구해주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광무제는 황니랑을 ‘황니상공(黃泥相公)’에 봉하고 이 사당을 중건하여 ‘황니상공암(黃泥相公庵)’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타이후호 중에 다니는 배가 위험할 때 여전히 “맨발의 황니랑, 구해주세요!”를 외칩니다. 그러나 그는 상공으로서 의관을 정제하고 모자를 쓰며 신발을 신는 상공 차림을 하다가 목숨을 구할 시간을 지연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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