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막구
[SOH] 구처기가 용문동에서 수련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 산 아래에는 왕존부라는 큰 부자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금두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의 집 마당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문밖으로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문 앞에는 석사자라고 불리는 길이가 3~4미터정도이며 높이가 수척이 되는 사자모양의 돌이 떡 버티고 서 있었습니다.
왕존부는 많은 재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탐욕스럽고 각박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속이고 괴롭혀 땅을 빼앗았습니다. 노비들 역시 주인의 위세를 빌어 나쁜 짓을 일삼았습니다.
왕존부에게는 선조가 건립한 관음사당이 있었는데 그는 그곳의 주지와 출가인 들을 쫓아내고 토지를 회수하였습니다. 그러나 텅 빈 절에 보살상만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어느 날 구처기는 신통력으로 왕존부 일가에 큰 난이 닥칠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왕존부가 비록 악업을 많이 쌓았다하나 아직 절과 신상(神像)을 훼손하지 않았으니 선한 마음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왕존부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바로 고칠 수만 있다면 그것을 기화로 그의 전 가족을 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리하여 구처기는 용문동에서 내려와 관음사당으로 들어가 지내면서 매일 작은 항아리를 들고 왕존부의 집에 가서 탁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그는 빈 항아리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다만 춘화라는 한 어린 하녀만이 그가 계속해서 빈 손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안타까워하며 몰래 떡을 몇 개 숨겨와 작은 항아리에 넣어주며 말했습니다.
“얼른 가세요. 이곳 사람들은 아주 험악해요.”
다시 이틀이 지나 구처기는 왕존부의 집 앞에서 마침 외출하려던 왕존부와 마주쳤습니다. 구처기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이름을 탐내고 이익을 위하며 되돌아보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무상하면 만사가 다 그치는 것이요. 금은보옥이 있어도 가지고 가지 못하며 헛되게 남겨 두 눈에 긴 눈물만 흘리네.”
“ 난 평생 불법을 믿어 본 적이 없으니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썩 꺼지시오.”
“빈도는 일부러 당신 댁에 탁발을 하러왔으니 이참에 좀 베풀어 주시지요.”
그러자 왕존부는 말똥을 쌓아 놓은 광주리에서 말똥을 한 삽 퍼다가 구처기의 면전에 갖다 대며
“당신이 나더러 베풀라고 하니 이 물건을 당신에게 주면 어떨꼬?”
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이에 구처기가 탁발하는 작은 항아리를 내밀자 그는 그 속에다 말똥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하인들은 통쾌하다는 듯 껄껄거리며 웃었습니다.
다만 춘화만이 마음을 태우며 어찌할 줄 모르다가 찐빵 몇 개를 숨겨 구처기를 쫓아가 그에게 내밀었습니다.
"오늘은 탁발하러 온 게 아니었소. 중요하게 일러 둘 말이 있는데 반드시 기억해야 하오. 만일 문 앞에 석사자의 눈이 빨갛게 되는 날이 오면 산 위 관음사당으로 몸을 피하시오. 그래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오.“
그날로 구처기는 관음사당을 떠나 용문동으로 돌아가 계속 고되게 수련했습니다.
춘화는 구처기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매일 조석으로 석사자를 눈여겨 살펴보았습니다. 하루는 그 길을 지나다니던 목동이 춘화의 행동을 이상히 여겨 이유를 물어본 즉, 춘화는 구처기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다음 날 오후 목동은 춘화를 놀릴 양으로 석사자에 기어 올라가 두 눈에 붉은 진흙을 발라놓고 근처의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춘화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춘화는 그날따라 불안한 예감에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습니다.
해거름이 되어 석사자를 살피러 밖으로 나왔던 춘화는 노을빛을 받아 석사자의 눈이 붉게 빛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 그 길로 관음사당으로 황급히 뛰어갔습니다.
목동은 그녀의 뒤를 따라 뛰어가면서 “빨리 뛰어요, 재난이 옵니다” 라고 희희덕거리며 소리쳤습니다.
마침 왕존부의 하인들이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그들은 목동의 이야기를 듣고는 춘화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단지 왕흥과 왕량만이 춘화에게 목동이 한 짓임을 알려주기 위해 그를 끌고 춘화를 찾으러 갔습니다.
세 사람이 춘화의 뒤를 쫓아 막 관음사당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우레가 울리고 산이 요동치며 광풍과 비가 퍼부어대기 시작하더니 그 밤이 지나서야 멈추었습니다.
밤사이 왕존부의 집은 산이 무너져 내려고 비에 쓸려 폐허가 되어 있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일로 구처기는 크게 명성을 떨쳤고 춘화에게는 이진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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