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신기명(辛棄名)
[SOH] 호영지가 다시 수도 개봉에 돌아왔을 때는 장자후가 이미 경성을 떠난 뒤였습니다. 나중에서야 글에 대한 소문을 들은 장자후는 북방에서 돌아온 즉시 호영지를 찾아왔습니다.
호영지는 글의 진본은 왕세에게 주고 왔으므로 자신이 베껴놓은 것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장자후가 시를 보더니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시를 좀 더 일찍 보아 사직했더라면 오늘처럼 쫓겨나는 일이 있었겠는가?”
얼마의 시일이 지난 후에 변방 감숙성 군대에 있던 호영지는 진주의 천경관(天慶觀)이란 도관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씨 성을 가진 한 도사가 천경관에 한 달 이상 머무르다 최근 떠났다는 말을 듣고는 “그 사람이 여(呂)도사인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고 되물어 보았습니다.
그곳 사람이 말했습니다.
“도인이 떠날 때 마침 천경관의 신도들이 모두 이웃 군에 단을 설치하고 기도하러 갔습니다. 도인이 어린 동자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떠나야 하니 붓을 좀 빌려다오. 벽에다 몇 자 적을 테니 군대에서 호영지라는 사람이 오면 보여 주거라.’ 그러나 아이는 사부가 벽에 글씨 쓰는 것을 금한다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도인은 ‘대전의 향로를 한 번 사용하게 해 다오. 삼청에 예를 올린 후 떠나겠다.’ 고 하면서 향을 피우고 공경히 절을 한 후 대전의 뒤쪽으로 가 손가락으로 정결한 석지의 물을 찍어 대전의 벽에 시를 적었다고 합니다."
``저 벽 위를 보시지요.”
호영지가 그곳 사람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거인이라 하더라도 팔이 닿기 힘든 벽 꼭대기에 회(回)라는 제목의 시 한수가 적혀있었습니다.
石池清水是吾心 석지(石池)의 맑은 물은 내 마음과 같아
漫被桃花倒影沉 복사꽃 그림자가 거꾸로 가라앉았구나
一到邽山空闕內 단번에 규산(邽山)의 궁궐에 도착하여
消閑塵累七弦琴 속세의 번거로움 잊고 칠현금을 타네
그곳 사람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저 제목의 돌아올 회(回)자의 두 개의 입 구(口)자를 아래위로 배열하면 바로 여(呂)자입니다. 시에서의 규산(邽山)은 태산을 가리키는 것이지요."
이에 호영지는 강서 익양현에서 만난 노인의 '변방에 가면 만날 것'이라는 약속을 떠올리며, 그때서야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일생에 한 번 얻기 어려운 여동빈 신선의 가르침을 받을 기연을 놓쳤음을 알고 장탄식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신을 경배하며 찬양하지만, 신이 세속에 내려올 때에는 보통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깨우침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과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면서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데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송대 장방기(張邦基)의 《묵장만록(墨莊漫錄)》에 의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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