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명나라 한림을 지낸 왕칙(王敕)은 산동성 역성 사람으로 명 헌종(憲宗) 성화20년, 3등으로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그가 아직 서생으로 와우산사(臥牛山寺)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소피를 보고 나오던 그는 땅에서 은은한 불빛이 비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이하게 여긴 왕칙이 땅을 파보니 푸른빛을 내는 돌 상자 속에 두 권의 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왕칙은 이때부터 책에 의지해 수련하여 초능력이 생겼으며 미래의 길흉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그의 주위에서는 신비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한 번은 승려와 함께 구기자를 채취한 적이 있었습니다. 승려가 먼저 하산해 처소에 돌아와 문을 여니 왕칙은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왕칙이 하남 사천에서 독학관을 지낼 때의 일입니다. 각지에서 동시에 과거시험이 이루어지는데 많은 수험생들이 그 각개 시험장에서 왕칙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비일비재했습니다.
왕칙은 자신이 본 적이 없는 고대 기물(器物)에 대해서도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사용하던 것인지 상세하게 알았으며 “땅에 체 구멍 같은 것이 있어 무릇 기이한 보물이 있으면 다 볼 수 있다”며 진귀한 고대 유적지를 발굴해 내기도 했습니다.
왕칙과 함께 구기자를 채취했던 승려가 임종 할 때의 일입니다. 왕칙이 내세에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자 승려는
“나는 부귀를 겸했으면 좋겠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왕칙은 “당신은 작은 지역의 왕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며 붉은 붓으로 그의 등에 촉왕(蜀王) 이라고 썼습니다. 얼마 후 촉왕에게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아이의 등에는 촉왕이란 글자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왕칙은 병이 위급하다는 친구의 병문안을 갔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환자가 이미 생명이 다 했다고 여기며 왕칙에게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지를 물었습니다.
왕칙은 “공은 지금 죽지 않습니다. 모날 모시가 되면 한 마리 학이 마당에 내려올 것입니다. 그때 공은 학과 함께 떠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친구는 왕칙이 말한 그 날이 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덕(正德) 2년 남경에 가서 관직을 맡았던 왕칙은 정덕 4년에 파직되었으며 정덕 6년 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그가 떠나던 날 네 개의 성문 모두에서 많은 사람들이 왕칙이 학의 깃털로 만든 옷을 입고 떠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고향의 한 사람은 장안에서 왕칙이 나팔을 부는 것을 보고 “공은 파직된지 오래되었는데 어찌 아직도 이곳에 계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왕칙은 “조정에서 나를 불러서 고향에서 오고 있는 길입니다. 마침 급히 서두르느라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부탁 좀 들어주시지요. 내 궤짝 안에 몇 권 있는 책을 꼭 좀 태워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고향 사람은 집에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그날이 왕칙이 세상을 떠난 날임을 알았습니다.
왕칙이 관리로 지낸 명나라 조정 후기는 풍기가 문란하여 정직한 왕칙은 늘 일부 관리의 공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 명나라 중국의 유명한 유학자의 한사람인 왕양명은 그에게 탄복했고, 또 유명한 장학명(張鶴鳴) 상서 역시 일찍이 전을 지어 왕칙을 찬양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왕칙의 일은 허무맹랑한 허구만은 아니라 하겠습니다.
(자료출처 <지북우담 池北偶談>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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