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칙서(林則徐)는 중국 근대에 외국 침략자들에 대항해 아편을 소각한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는 20세에 과거에 급제한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난 사람으로 청렴하고 일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청나라 선종 때 임칙서가 강소(江蘇)에서 순무를 지낼 때의 일입니다. 어느 섣달그믐날 그는 관아를 거닐다가 공교롭게도 서실에 남아 있는 서기인 심보정을 보고는 물었습니다. "오늘은 섣달그믐인데, 자네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왜 혼자 남아 있는가?" "이제야 일이 끝나 돌아가려던 참입니다." "그런가? 마침 잘 되었네. 오늘 밤에 써서 보내야 할 상주문이 있는데 자네가 대신 써 주게나." 그 상주문은 무려 만자에 달하는 것이었지만 심보정은 두말없이 촛불을 밝히고 베껴 쓰기 시작했습니다.
삼경이 되어서야 겨우 쓰기를 끝낸 심보정은 오자나 탈자가 없는지 다시 한 번 세심하게 검토한 후에 글을 임칙서에게 바쳤습니다. 임칙서는 상주문을 대강 훑어보고는 "필적이 너무 거칠군. 다시 쓰게나." 라고 말하며 상주문을 다시 심보정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심보정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공손히 받아서 다시 상주문을 정성스럽게 베껴 썼습니다. 하늘이 훤히 밝아서야 일을 끝낸 심보정이 다시 쓴 상주문을 바치자 임칙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는 그날 심보정을 사위 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임칙서가 심보정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일에 대한 책임감과 부당한 요구에도 원망이나 조급함 없이 정성스럽게 일을 대하는 품격이었습니다. 임칙서는 한때 "제노(制怒 역주: 노여움을 억제한다는 뜻)"라는 편액을 방에 걸어놓고 수시로 자기를 깨우치며 조급함과 쉽게 화를 내는 버릇을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바로 이런 자신의 성격 때문에 특히 심보정의 급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는 품성을 높이 샀을 것입니다.
심보정은 1847년 진사에 합격했으며 후에 관직이 강서(江西) 순무, 양강(兩江) 총독에 이르렀습니다.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에서 보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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