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씬위(心語)
[SOH]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루고 명망이 높은 사람을 이르는 말로 ‘태두(泰斗)’가 있습니다.
문학계의 태두, 학술계의 태두, 의학계의 태두, 음악의 태두 등이 그것입니다.
태두란 본래 ‘태산북두(泰山北斗)’의 준말이며, 태산은 중국을 대표하는 명산입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산동(山東)에 위치한 까닭에 예부터 동악(東岳)으로 불렸고, 중국의 오대(五大) 악산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힙니다.
공자는 일찍이 “태산에 오른 후에야 천하가 작음을 알겠노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태산은 또 BC 219년 진시황(秦始皇)이 봉선(封禪)의식을 거행한 이래 역대 황제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습니다.
여기서 봉선이란 토단(土壇)을 만들어 지신(地神)에게 비는 일입니다. 이 중에서도 천신에게 비는 봉이 더 중요한데 그 장소로 태산이 선정된 것입니다.
진시황은 애초 불로장생을 기원하기 위해 의식을 치렀지만 한(漢) 무제(武帝)이후 뛰어난 치적을 쌓은 제왕이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는 정치적인 제사로 변질하였습니다.
즉, 중국에서 태산에 올라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그만큼 황제의 업적이 탁월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실 태산이 높다지만 실제로 태산은 해발 1,532m에 불과해 우리나라의 설악산 해발 1,708m, 한라산 해발 1,950m에 비하면 높은 산이 아닙니다. 하지만 큰 산이 많지 않은 해안지방에 우뚝 솟은 태산은 고대 중국인들의 눈에는 거대하고 웅장한 산으로 인식됐습니다.
또한 북두(北斗)란 북두칠성을 가리킵니다. 북두칠성은 7개의 별이 국자 모양처럼 하늘에 있어 고대로부터 시간과 방위를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로써 태두란 단어는 태산이나 북두칠성처럼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 한복판에 있는 별이나 웅장한 산처럼 누구나 바라볼 수는 있으나, 도달할 수는 없는 높은 경지가 태두입니다.
이 단어가 사용된 기록을 살펴보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시초인 한유(韓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유(韓愈)는 당나라 때의 유명한 문호로 당송팔대가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힙니다.
지금의 허난성(河南省)에서 태어나 25세 때 진사(進士)에 급제한 뒤 이부상서(吏部尙書) 지금의 내무부 장관에까지 올랐으나 황제가 관여하는 불사(佛事)에 완곡히 반대했다는 이유로 좌천됐습니다.
천성이 강직했던 한유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좌천과 파직(罷職)을 당했다가 다시 등용되곤 했습니다.
순탄치 못했던 그의 벼슬살이와는 달리 한유는 절친한 벗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고문부흥(古文復興) 운동을 제창하는 등 학문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후학들, 특히 유가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됐습니다.
당서(唐書)의 한유전(韓愈專)에는 '당나라가 흥성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을 가지고 여러 학자들의 스승이 됐다. 한유가 죽은 뒤 그의 학문은 더욱 흥성했으며, 그래서 학자들은 한유를 ‘태산북두’를 우러러보듯 존경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태두는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은 사람에 대한 존칭으로 널리 쓰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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