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생일 축하하기(過 生日)는 중국의 오랜 풍습입니다.
그러나 위진 시기 이전에는 다만 예기 내칙(禮記 內則)에 '자식을 낳았는데 남자이면 문 왼쪽에 활을 걸고 여자이면 문 오른쪽에 수건을 걸었다(子生,男子設弧於門左,女子設帨於門右)'는 기록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별달리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생일에 관한 기록이 등장한 것은 남북조 시기로 접어들어서입니다.
이를테면 안씨가훈(顔氏家訓) 풍조편(風操篇)의 기록을 보면 ‘강남사람들은 일찍부터 생일잔치를 크게 열었다. 부모가 돌아가신 경우에도 손님을 초대해 술을 마시고 곡을 연주하며 즐겁게 보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안씨가훈의 저자 안지추(顔之推)는 당시 사람들이 생일잔치를 즐기는 방식을 탐탁잖게 여겼습니다.
남조의 양원제(梁元帝)는 자신의 생일에 불교 법회를 열어 독실한 불자였던 부모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수나라에 이르러 문제(文帝) 양견(楊堅)은 인수 3년 조령을 반포해 '6월 13일 짐의 생일에 부모님을 위해 전국적으로 살생을 금지한다'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신의 생일에 전국적으로 살생을 금지한 것입니다.
당나라 때 오긍(吳兢)이 편찬한 정관정요(貞觀政要)에는 태종이 생일잔치를 하지 않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관 17년 12월 계측 일에 태종이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짐의 생일이다. 세간에서는 생일을 기쁘고 즐거운 날로 여기지만 짐은 부모님이 더욱 그리울 뿐이다. 지금 나는 나라의 군주가 되어 천하의 부유함을 누리고 있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싶어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부모가 돌아가신 후 초나라에서 부유해졌지만 부모를 위해 쌀자루를 짊어지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고 하는데 정말 일리가 있다. 시경에서는 ‘불쌍한 우리 부모님 나를 낳으시느라 정말 고생하셨네(哀傷我父母,生我? 真辛勞)’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부모님께서 수고하신 날에 잔치를 열 수 있겠는가! 이는 예법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다”라고 말해 신하들을 눈물짓게 했습니다.
이처럼 생일이란 바로 어머니가 자신을 낳기 위해 고생을 하신 날로 모난일(母難日)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원나라 때 백정(白珽)이 지은 담연정어(湛淵靜語)에는 '이웃에 사는 유극제는 촉 나라 사람인데 생일이 되면 반드시 목욕재계하고 향을 사르며 단정히 앉아서는 ‘아버님께서 근심하시고 어머님께서 난을 당하신 날(父憂母難之日)이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태종이 천자의 몸이었음에도 생일을 지내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태어난 이날이 바로 어머니가 수난을 당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생일이 되면 늘 모친이 그리워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는 효 문화를 잘 보여주는 일화로서 지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생일을 축하하는 것은 사실 전통문화와는 크게 어긋난 것이라 하겠습니다.
씬위(心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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