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중토정회(中土情懷)라는 곡이 있습니다. 중토란 중국을 가리킵니다.
세계적인 중국예술 공연단체인 뉴욕 ‘션윈(神韻)예술단’의 알토 양젠성(楊建生)은 2004년 갈라 공연에서 여자의 목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굵고 낮은 목청으로 장엄하게 고국에 대한 애틋한 정서를 표현했습니다.
이 노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찬란했던 5000년 중국 전통문화가 훼손된 과정을 알아야 합니다.
중국 전통문화는 한당성세(漢唐盛世)를 거쳐 송(宋), 원(元), 명(明), 청(淸)을 지나며 부흥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1949년 유물론을 신봉하는 중국공산당은 정권을 탈취한 후 불, 도, 신을 신앙하는 전통문화가 공산당의 권력유지에 방해된다고 여겨 철저히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정점이 문화대혁명으로 그나마 남아 있던 중국 전통문화의 명줄마저 끊어버렸습니다.
현재 중국에서 볼 수 있는 문화는 빈껍데기뿐이며 정화(精華)적인 것은 오히려 한국, 일본, 대만을 비롯한 국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2004년 션윈예술단 창립 초기에 양젠성이 부른 중토정회의 의미심장한 가사는 중국공산당에 의해 철저히 짓밟힌 중국문화를 그리워하는 우국의 충정이 느껴집니다.
노랫말 중에 ‘아이를 가르치고 지아비를 모실 때는 밥상을 눈썹높이까지 든다(教子相夫案齊眉).’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여기서 안제미(案齊眉)는 거안제미(擧案齊眉)의 준말로 남편에게 밥상을 내올 때 눈썹높이까지 공손히 올린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을 통해 중국 고대에는 부부 사이라도 깍듯이 서로 공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안제미의 고사가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후한서 양홍전(後漢書 梁鴻傳)에는 동한 초기의 은사인 양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양홍은 자가 백란(伯鸞) 부평현 사람으로 집이 가난했지만 절개가 굳고 지조가 있는 선비였습니다.
당시 세상이 혼란해 도(道)가 펼쳐지지 않는다고 보았던 양홍은 시류에 영합해 관직에 나아가는 대신 조용히 은거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같은 현에 사는 맹씨 성을 가진, 부유한 집안의, 용모는 추안이나 힘이 장사며 속이 깊은 30이 넘은 맹광이 “양백란처럼 어질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시집을 가고 싶다”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녀의 품성에 반해 기꺼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패릉 산속에 은거하며 옷감을 짜고 책을 읽거나 거문고를 연주하며 유유자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양홍이 수도인 낙양을 자나다가 지나치게 호사스럽게 지어진 대궐의 전각을 보고는 ‘백성의 고초가 얼마나 컸을까?’라고 한탄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이 시를 본 황제 장제(章帝)는 몹시 화를 내며 양홍을 체포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양홍부부는 지금의 저장성 일대인 오지방으로 도피하여 고백통이란 부잣집의 방앗간 일을 해주며 근근이 때를 이어갔습니다. 이때 양홍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맹광은 항상 밥상을 정성스럽게 눈썹높이까지 들어 올려 남편에게 바쳤습니다.
이 모습을 본 고백통은 ‘아내가 남편을 이토록 공경하는 것을 보면 그는 분명히 범상한 인물이 아닐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양홍을 그의 집에 머물게 하며 우대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양홍은 많은 책을 저술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안제미란 이처럼 남편을 존중하며 극진한 내조로 남편의 일을 성취시킨 맹광의 정신을 칭송한 것입니다.
물질적으로는 빈곤했으나 정신적으로는 풍요롭고 따스했던 고대인들의 삶은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씬위(心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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