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시작이나 발단을 표현하는 고대 문헌에도 나오는 남상(濫觴)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당나라 때의 유명한 사학자 유지기(劉知幾)는 사통서례(史通序例)에서 '남상이 시작된 흔적을 어쩌면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남상이란 단어가 사물의 기원을 비유하는 단어로 쓰이게 된 것일까요?
남(濫)이란 말의 뜻은 떠오르다,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이아석수(爾雅釋水)에서는 '남은 샘이 용솟음치는 것이다'라고 풀이 했습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의 저자 이시진(李時珍)은 '물이 용출(湧出)하는 것을 가리켜 남천(濫泉)이라고 한다'라고 했습니다.
즉, 남천이란 용솟음치듯이 나오는 샘을 말합니다.
또한 상(觴)이란 단어의 원래 의미는 고대에 술을 마실 때 사용하던 그릇입니다. 상을 이용한 대표적인 행사가 수설(修褉)입니다.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시서(蘭亭詩敍)는 수설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화9년 계축(癸丑)년 3월초 회계군 산음현의 난정에 모여 수설(修褉) 행사를 열었다. 많은 선비들이 모두 오고 젊은이와 어른들이 다 모였다. 이곳은 높은 산과 고개가 있고 깊은 숲과 울창한 대나무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여울이 좌우로 띠를 이루었다. 흐르는 물을 끌어 잔을 띄우는 물굽이를 만들고(流觴曲水) 순서대로 자리를 잡으니 비록 성대한 풍악은 없어도 술 한 잔에 시 한 수씩 읊으며 또한 그윽한 정회를 펼칠 만하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유상곡수(流觴曲水)로 음력 삼월삼짇날 굽이도는 물에 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시를 짓던 놀이입니다.
그러므로 남상이란 술잔을 띄우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곳이 술잔을 띄울 수 있는 곳일까요?
보통 강이나 하천의 발원지가 바로 그곳인데 발원(發源)하는 곳은 수량이 아주 작아서 겨우 술잔 하나만을 띄울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강물의 발원지를 가리켜 남상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순자(荀子)에는 '옛날에 강은 산에서 나오는데 그 처음 나오는 근원에 술잔을 띄울만하다.(昔者江出於山,其始出也,其源可以濫觴)'고 했습니다. 북위 역도원(北魏 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에서는 '강물이 상류로 올라갈수록 약해지기 때문에 소위 발원지를 남상이라 한다(江水自此已上至微弱,所謂發源濫觴者也)'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남상의 원뜻은 강물의 발원지를 지칭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뜻이 넓어져 사물의 기원이나 발단을 뜻하는 데도 쓰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남상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자의 제자 중에 자로(子路)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용맹하나 행동이 거친 탓에 공자에게 사랑과 훈계를 가장 많이 받았던 제자였습니다.
어느 날 자로가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나자 공자는 말했습니다.
'장강은 사천 땅 깊숙이 자리한 민산에서 흘러내리는 큰 강이다. 그러나 그 근원은 ‘겨우 술잔에 넘칠 정도(濫觴)’로 적은 양의 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류로 내려오면 물의 양도 많아지고 흐름도 빨라져서 배를 타지 않고는 강을 건널 수가 없고,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배조차 띄울 수 없게 된다. 이는 모두 물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공자는 매사는 시초가 중요하며 시초가 조금이라도 불순하면 후에는 그 폭이 심해져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려 했던 것입니다. 공자의 이 이야기를 들은 자로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고 합니다.
씬위(心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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