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기러기는 철새로 매년 오고 가는 시간이 비교적 일정합니다. 이 때문에 고대에는 기러기를 가리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갖춘 새라고 칭송했습니다.
또한 기러기를 이용해 서신을 전달하고 정보를 소통하면서 기러기를 서신의 대명사로 혹은 서신의 메신저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송나라 때의 대표적인 여류시인 이청조(李淸照)는 일전매(一剪梅)라는 글에서 '구름 속에 누가 비단편지를 부쳐왔을까? 기러기가 보내오는 서신이 돌아올 때 서쪽 누각에 달빛이 가득 비치네' 라고 노래했습니다.
시인은 멀리 외지로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감정을 기러기 편지에 담아 표현했습니다.
기러기 외에 편지를 전달하는 메신저로 불린 새로 파랑새가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당나라 때의 시인 맹호연은 청명일연매도사방(清明日宴梅道士房)이라는 시에서 '문득 파랑새를 만나 적송(赤松)의 집으로 초대받아 들어갔다'고 노래했습니다.
그렇다면 파랑새가 왜 메신저를 뜻하게 되었을까요?
파랑새는 본래 중국 고대신화에 등장하는 신조(神鳥)로 길상을 상징합니다.
파랑새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 산해경 해내북경(山海經 海內北經)에는 '서왕모가 책상에 기대어 있는데 머리꾸미개를 꽂고 있다. 그 남쪽에 세 마리의 파랑새가 있어 서왕모를 위해 음식을 나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또 산해경의 대황서경(大荒西經)에는 '세 마리 파랑새가 있는데 붉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하고 있다. 대추(大鶖), 소추(少鶖) 청조(靑鳥)라고 한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서산경(西山經)에는 ' 220리(약 86km)를 가면 삼위라는 산이 있는데 파랑새 세 마리가 그곳에 산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진나라 학자인 곽박(郭璞)은 '세 마리 파랑새는 주로 서왕모를 위해 음식을 나르는데 따로 이 산에 서식한다'고 주를 달았습니다.
그런데 예문유취(藝文類聚) 91권에서는 한나라 학자 반고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한무고사(漢武故事)를 인용해 '7월 7일 한무제가 승화전에서 목욕재계하고 있는데 갑자기 한 마리 파랑새가 서쪽에서 와서 전각 앞에서 쉬었다. 한무제가 동방삭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자 동방삭은 ‘이는 서왕모께서 오시려는 징조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과연 얼마 후 서왕모가 왔는데 두 마리 파랑새가 왕모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미리 찾아와 소식을 전해준 것이 파랑새 청조이고 나중에 서왕모를 시중 든 두 새는 대추와 소추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중국인들은 파랑새가 평소 서왕모에게 음식을 공급해줄 뿐만 아니라 서왕모가 이동할 때에는 앞서 소식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파랑새는 서왕모의 메신저로 간주되었던 것입니다. 후일 중국 사람들은 이 고사를 유추해 파랑새를 메신저의 대명사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저자 씬위(心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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