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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족하(足下)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편집부  |  201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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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 한국에서 편지를 쓸 때 가장 널리 쓰이는 존칭은 귀하(貴下)입니다만 중국에서는 족하(足下)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발아래’라는 뜻인데, 이 단어가 어떻게 존칭으로 변했을까요?

 

중국에서 이 단어가 널리 쓰인 것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이후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악의(樂毅)가 연왕(燕王)에게 보낸 편지에는,  '선왕의 밝으심을 해치고 족하의 의리를 해칠까 두려운 까닭에 조나라로 도망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사기(史記)'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서는 연악이 진시황의 아들 호해(胡亥)에게 보낸 글에서, ‘족하께선 교만하고 방자해 함부로 살인을 하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족하를 배반할 것입니다' 라고 비판한 문구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신하가 군왕에 대한 존칭으로 족하를 사용한 예입니다.


또한 당나라 때 피일휴(皮日休)가 쓴 이원정군서(移元征君書)에는, '만약 그대의 도를 행한다면 남산의 대나무를 다 쓴다 해도 족하의 공을 다 기록할 수 없고 계곡 물을 다 쓴다 해도 족하의 선(善)을 따르지 못할 겁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는 뛰어난 능력을 지녔음에도 산림에 은거한 친구를 불러내기 위해 피일휴가 한 말입니다. 이외에도 삼국연의 제45회에 보면 '내 족하와 헤어진 지 오래되었으니 특별히 와서 옛날의 회포를 풀고자 합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전국시대 이후에는 족하라는 단어의 쓰임이 점점 넓어져 동년배나 비슷한 지위의 사람 간에도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족하가 왜 상대방을 존칭하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5세기말 중국 남조(南朝) 송나라 유경숙(劉敬叔)이 저술한 이원(異苑)에서 우리는 이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춘추시대 중원의 강대국이었던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늦은 나이에 여희(驪姬)라는 여인을 맞아 총애한 나머지 급기야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잘못도 없는 태자 신(申)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자살을 했으며 그 외 장성한 두 아들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도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특히 중이는 북방 유목마을에서 12년을 살다 다시 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고열에 시달리면서 계속해서 고깃국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수행원들도 장기간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려 건강한 사람이 없었으며 더구나 고기를 살 만한 돈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충성심이 강했던 개자추(介子推)가 자기 대퇴부의 살을 잘라 국을 끓인 후 주군에게 바쳤습니다. 신기하게도 중이는 이것을 먹고 병이 나았으며 제환공(齊桓公)의 지지를 받아 19년 만에 진나라로 돌아와 정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명인 진문공(晉文公)입니다.


진문공이 정권을 잡은 후 생사를 같이했던 수행원들은 다투어 자신의 공을 내세우며 세력다툼을 벌였습니다. 이런 세태에 환멸을 느낀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속으로 은거했습니다. 뒤 늦게 이 일을 알게 된 진문공이 개자추를 찾아 나섰으나 산을 다 뒤져도 개자추의 은신처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진문공이 애를 태우고 있는 중에 신하가 산에 불을 놓아 개자추로 하여금 스스로 걸어 나오게 하자는 계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의도와는 달리 개자추는 모친과 함께 나무를 끌어안고 불타 죽은 채 발견되었습니다.


진문공은 비탄에 잠기어 그가 죽을 때 함께 했던 나무를 베어 신발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 신발을 신을 때마다 지난 일을 떠올리며 “슬프도다. 족하여!”라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이런 전고로 족하라는 단어는 어떤 물건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옛 은혜를 그리워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나아가 벗에 대한 존칭의 의미가 파생돼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족하는 편지글 등에서 가깝고 대등한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쓰이며, 삼국사기에 보면 견훤과 왕건이 서로를 족하라고 칭한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한때는 집안의 아랫사람에게 붙이던 용어로 활용되다가 조선 멸망 이후 조금씩 사라져갔으며 이 단어가 굳어져서 조카가 되었다고 합니다. 조카는 자신의 형제, 자매, 사촌, 육촌 등 비슷한 세대의 자녀들에게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 SOH 희망지성 국제방송 soundofhop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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