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하늘과 땅을 걸고 한 번 던진다는 뜻으로, 나라를 걸고 단판으로 승부를 내는 일을 말합니다.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한왕(漢王, 劉邦)을 도와 패업을 이룩한 고사를 한유(韓愈)가 그의 시 ‘과홍구(過鴻溝, 홍구를 지나며)’에서 ‘천하를 건 도박’이라고 표현한 데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후로 이 말은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나 성패를 겨루는 일이나, 흥망을 천운에 맡기고 일을 행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당대(唐代)의 대문장가인 한유가 홍구(鴻溝) 땅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홍구는 진(秦)이 망하고 천하가 아직 통일 되지 못했을 무렵, 초(楚)의 항우와 한(漢)의 유방이 이를 경계로 대치하고 있던 곳입니다.
이곳을 지나며 한유는 장량, 진평을 생각하며 이렇게 읊었습니다.
龍疲虎困割川原 용은 지치고 범은 고달파 강과 들을 나누니
億萬蒼生性命存 억만창생의 목숨이 보존되었도다.
誰勸群王回馬首 누가 군왕에게 말머리를 돌리도록 권하여
眞成一擲賭乾坤 참으로 한번 던져 천하를 건 도박을 겨루도록 했던가.
진(秦)나라 말 천하가 혼란할 무렵, 얽히는 싸움 3년 만에 진나라를 멸망(기원전206)시킨 항우는 팽성(彭城, 徐州)을 도읍으로 정하고, 의제(義帝)를 초나라의 황제로 내세우고 스스로를 초패왕(楚覇王)이라고 호칭하였습니다. 또 유방을 비롯하여 진나라를 멸하는 데 공을 세운 자들을 제후로 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항우가 의제를 시해하자, 앞서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제후들이 각지에서 반기를 들고 일어나 천하는 다시 어지러워졌습니다.
전영(田榮), 진여(陳餘), 팽월(彭越) 등이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항우가 이들을 치는 사이에 유방은 관중(關中)을 합병하고, 의제 시해에 대한 징벌을 명분으로 삼아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초의 도읍 팽성을 점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항우가 싸움터에서 군사를 되돌려 공격하자 유방은 아버지와 아내까지 적중에 남겨두고 형양(滎陽)으로 패주했습니다. 그 후 항우와 유방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계속하다가 홍구를 경계로, 홍구 서쪽을 한(漢)이라 하고 동쪽을 초(楚)의 땅이라 하여 천하를 양분하고 싸움을 멈추었습니다.
항우는 유방의 아버지와 아내를 돌려보내고 철군 길에 올랐습니다. 이때가 한의 4년(기원전 203년), 이어 유방도 철군하려 하자 참모인 장량과 진평이 이렇게 권했습니다.
“한나라는 천하를 거의 차지하고 제후들도 복종하고 있으나 초나라는 군사들이 몹시 지쳐 있는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졌습니다. 이야말로 초나라를 멸망시키라는 하늘의 뜻이오니 당장 쳐부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호랑이를 길러 후한을 남기는 꼴’이 될 것입니다.”
이 말에 마음을 바꾼 유방은 다시 항우를 추격했습니다. 이듬해 유방은 한신(韓信), 팽월 등의 군사와 더불어 해하(垓下)에서 초나라 군사를 포위했고, 여기서 참패한 항우는 오강(烏江)으로 패주하여 자결하였습니다.
한유는 그 홍구 땅에서, 장량과 진평이 한왕을 도운 공적을 생각하고, 그것을 바야흐로 천하를 건 큰 도박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일척(一擲)이라 함은 모든 것을 한번에 내던진다는 뜻이며, 건곤(乾坤)은 곧 천지(天地), 천하(天下)를 가리킵니다. 이로써 건곤일척은 천하를 얻느냐, 잃느냐 하는 대모험을 행하는 데 쓰이는 말이 되었습니다.
유방이 걸고 한 것은 사실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뜻은 무엇이든 자기의 운명을 걸고 흥망 간에 최후의 모험 같은 것을 하는 것을 ‘건곤일척’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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