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원말은 ‘이오십보 소백보(以五十步 笑百步)’로서, 오십 보 도망친 사람이 백보 도망친 사람을 비웃는다는 뜻입니다. 곧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마찬가지인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맹자(孟子)> ‘양혜왕(梁惠王)’편에 실려 있습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양(梁)나라의 혜왕이 맹자(孟子)를 초빙했습니다. 원래 양나라는 위(魏)나라였는데, 당시 서쪽의 강성한 진(秦)나라의 압박에 견디다 못해 도읍을 대량(大樑)으로 옮긴 후 양나라로 불렸습니다. 그러나 양나라는 동쪽의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도 거듭 패하는 바람에 국력이 피폐해졌습니다. 그래서 혜왕은 국력의 회복을 자문하기 위해 유세(遊說)중인 맹자를 부른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맹자>의 첫 머리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맹자가 오자 혜왕은 반기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인께서 천리를 멀다 않고 이렇게 오셨으니, 장차 우리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혜왕은 무슨 부국강병의 비책이라도 전해 줄까 하는 기대로 이렇게 반겼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하십니까? 또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인의의 정치를 강조하고 나서, 맹자는 인의의 정치를 말하였습니다.
어느 날 혜왕이 맹자에게 또 물었습니다.
“과인은 나라에 대하여 마음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내(河內)지방에 흉년이 들면 그곳 백성들을 하동(河東)지방으로 이주 시키고 이주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하동지방의 곡식을 하내지방으로 옮겨가며, 반대로 하동지방에 흉년이 들면 또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이웃나라의 정사를 살펴보면 과인처럼 마음을 쓰는 자가 없는데도 이웃나라의 백성들이 더 적어지지도 않으며, 우리 백성들이 더 많아지지도 않으니,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왕께서는 전쟁을 좋아하시니 싸움에 비유해 말씀드리지요. 전쟁터에서 막 육박전이 벌어지려고 하는데, 겁이 난 병사가 갑옷을 벗어 버리고 무기를 끌고 도망쳤습니다. 그런데 오십 보를 도망친 병사가 백 보를 도망친 병사를 보고 비겁하다면서 비웃는다면, 왕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오십 보든 백보든 도망치긴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왕께서 만일 오십 보로 백보를 비웃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아신다면 왕께서는 백성들이 이웃나라보다 많아지기를 바라지 마소서.”
맹자의 이 말은 혜왕이 백성을 구호한다고 해도 그 목적이 인의의 정치를 베풀려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무력으로 패권을 차지하려는 이웃나라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지적한 것입니다.
맹자가 생각하는 이상(理想)은 왕도정치(王道政治)였습니다. 먼저 백성들의 안정된 삶을 보장해 주고 그 위에 도덕 교육의 교화를 베푸는 정치였습니다. 그것은 무력을 동원해서 영토나 확장하고 세력이나 넓혀 패권을 잡는 패도정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꾀하지 아니하고 지엽말단의 임시방편 같은 것으로 효과를 바란다는 것은 오십 보가 백보를 비웃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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