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농 땅을 얻고 나니 촉 땅을 바란다는 뜻으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한 가지 것을 이루고 나면 또 다른 것을 바라게 된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줄여서 ‘망촉(望蜀)’이라고도 합니다. 평롱망촉(平隴望蜀), 망촉지탄(望蜀之嘆, 촉 땅을 바라는 탄식)이란 말로도 쓰입니다. 후한서 ‘광무기(光武記)’, ‘헌제기(獻帝記)’편, 삼국지 ‘위지(魏志)’ 등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후한의 시조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천하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각지에서 할거하여 천하를 다투던 군웅들은 대부분 광무제에게 귀순하여 왔고 오직 농서(隴西, 현 간수성 지역) 땅의 외효(隈囂)와 촉(현 쓰촨성 지역) 땅의 공손술(公孫述)만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습니다. 중신들이 토벌을 건의했지만 광무제는 그들을 도외시하고 저절로 귀복해 올 때 까지 기다리는 여유를 보였습니다.
얼마 후 외효가 병으로 죽자 그의 아들 외구순(隈寇恂)이 농서를 광무제에게 바치고 항복했습니다. 따라서 이제 촉 땅만 남게 되었습니다. 농서 땅을 그저 얻은 광무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른다고 하더니, 이미 농 땅을 얻고 나니 촉 땅까지 바라게 되는구나(得隴望蜀). 매양 한 번 군사를 출발 시킬 때마다 그로 인해 머리털이 희어진다.”
그로부터 4년 후인 서기 37년(建武13년), 이제까지의 정책을 바꾼 광무제는 마침내 촉 땅 토벌에 나서 천하통일을 완성하였습니다.
또 삼국시대 유비와 조조가 대립하였을 때도 이 득롱망촉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후한 헌제(獻帝) 20년(서기 220년), 촉 땅에 근거를 마련한 유비가 강남의 손권과 손을 잡고 연합전선을 구축했을 당시, 조조는 이미 한중을 손에 넣고 농 땅마저 병합하였습니다. 이때 명장 사마의는 조조에게 건의하였습니다.
“조금만 더 진격하면 촉 땅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진격하여 유비를 치시지요.”
그러나 조조는 이렇게 말하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사람은 만족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나는 광무제가 아니다. 이미 농 땅을 얻었는데 어찌 촉 땅까지 바랄 수 있겠는가.”
결국 진격을 멈춘 조조는 헌제 23년(서기223년), 한중에서 유비와 수개월에 걸친 공방전을 벌인 끝에 ‘계륵(鷄肋)’이란 말을 남기고 철수하였습니다.
광무제는 ‘인생이란 족하다는 것을 모른다. 농을 얻고 또 촉을 탐낸다’라고 말하고, 조조는 ‘인간은 족함을 모른다. 농을 얻고 또 촉을 바랄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어 대조됩니다. 이 말은 전(轉)하여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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