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들쥐의 혼인, 곧 ‘들쥐에게는 들쥐가 가장 좋은 배필’이라는 뜻으로 동류(同類)는 동류끼리 가장 잘 어울린다는 말입니다.
또는 자기분수를 모르는 인간의 허영심을 풍자한 말이기도 합니다.
또 이 말 속에는 신분이 낮다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자기 족속이라는 강한 자기 각성의 의지가 들어 있기도 합니다. 순오지(旬五志)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순오지(旬五志)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들쥐가 있었는데, 자식을 위하여 높은 혼처자리를 구하려고 했습니다. 들쥐는 처음에 하늘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여 하늘에게서 혼처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이 "나는 비록 두루 만물을 다 포용하고 있지만, 저 해와 달이 아니라면 나의 덕을 나타낼 수 없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들쥐는 곧 해와 달에게서 혼처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해와 달이 "나는 비록 두루 비추기는 하지만 구름만은 나를 가릴 수 있다. 그러니 구름이 내 위에 있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름에게로 가서 청했습니다.
구름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비록 해와 달로 하여금 빛을 잃게 할 수는 있지만, 바람이 분다면 흩어지고 만다. 그러니 저 바람이 내 위에 있지."
들쥐는 바람에게로 갔습니다. 바람이 말하기를, “나는 비록 구름을 흩어지게 할 수 있으나 오직 밭 가운데 돌부처는 불어도 끄덕하지 않으니, 그가 내 위에 있단다. 그러니 저 돌부처가 높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들쥐는 돌부처에게 혼처를 구하였습니다.
돌부처가 말하였습니다. "나는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들쥐가 내 발밑을 뚫으면 나는 쓰러지고 만단다. 그러니 그가 내 위에 있지."
이 말을 듣고 들쥐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존귀하기론 우리만한 게 없구만.”
그리고는 마침내 들쥐와 혼인을 하였습니다.
순오지(旬五志)는 조선 중기의 학자 홍만종(洪萬宗:1642~1725)이 엮은 이야기책인데, 2권 1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명 ‘십오지(十五志)’라고도 하는데, 보름 만에 책을 완성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유·불·선 3교에 관한 논설,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견해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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