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귐, 생사를 같이 하고 목이 달아나도 변치 않을 깊은 우의를 뜻하는 말입니다.
전국시대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 사이의 우정에서 비롯된 말로서, 사기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나오는 말입니다.
전국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시기, 환관 목현(繆賢)의 시종 중에 인상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그는 진(秦)의 소양왕(昭襄王)에게 빼앗길 뻔 했던 명옥(名玉), 화씨지벽(和氏之璧)을 고스란히 가지고 돌아온 공 때문에 상대부(上大夫)라는 높은 직위에 임명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후 진의 소양왕과 조의 혜문왕이 민지(澠池)라는 곳에서 회합하게 되었는데 인상여가 이에 배석했습니다.
소양왕은 또 혜문왕을 욕보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인상여가 회담 후 베풀어진 연회에서 소양왕의 무례함을 나무라고 나서서 조나라와 혜문왕의 위신을 세웠습니다. 이 공로로 인상여는 순식간에 종일품 자리인 상경(上卿)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조나라에는 백전노장인 염파라는 유명한 장수가 있었는데 인상여의 지위가 자신보다 높아지자 크게 분개하여 말했습니다.
“나는 전쟁터를 누비며 성을 쳐서 빼앗고 들에서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입 밖에 놀린 것이 없는 환관의 시종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가 어찌 그런 자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젠가 그 자를 만나면 망신을 주고 말겠다.”
이 사실을 안 인상여는 되도록이면 염파를 피했습니다.
인상여는 이후 어디를 가든 염파와 부딪히는 자리는 피하고 심지어 궁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인상여의 부하가 그의 비겁한 행동에 수치심을 느끼고 인상여를 떠나려 했습니다. 인상여는 자신의 곁을 떠나려는 부하를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진나라 소양왕이 더 무서운가. 아니면 염파가 더 무서운가?”
“물론 소양왕이 더 무섭지요.”
“나는 그 진왕까지도 질타한 사람이다. 그런 내가 염파 장군을 두려워 하겠는가? 생각해 보게. 지금 진나라가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것은 염파와 나 두 사람이 조나라에 있기 때문일세.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면 결국 모두 죽게 될 것이네. 내가 그를 피하는 것은 나라의 안전을 생각하여 사사로운 원한을 뒷전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네.”
이런 말을 들은 그의 부하는 무릎을 꿇었고,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염파 또한 인상여의 넓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를 질투하던 자신의 용렬한 행동이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는 곧 ‘나는 결코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고는 ‘웃옷을 벗고 태형(笞刑)에 쓰는 가시나무를 짊어지고(肉袒負荊, 죄인의 모습)’ 인상여의 집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사죄했습니다.
“내가 미욱해서 대감의 높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소이다. 어서 나를 벌하시오”
인상여는 염파를 일으켜 화해하고 그 날부터 두 사람은 죽음을 같이 약속한 벗이 되었으니 이를 ‘문경지교’라고 합니다.
인상여도 위대하지만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순식간에 새로운 기분으로 돌아가 깨끗이 사과를 하는 염파의 과감하고 솔직한 태도야말로 모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장상화(將相和, 재상과 명장의 화해)’라고도 부르며 이후 중국 전통 경극으로도 만들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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