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문전작라는 문 앞에 참새 떼가 놀고 새 잡는 그물이 쳐졌다는 뜻으로, 곧 방문객이 끊어져 한산한 상태를 말합니다.
문전성시(門前成市)나 문정여시(門庭如市)와 상대되는 말입니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의 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무제(武帝)때 구경(九卿)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는 모두 체면을 지키며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로서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할 줄 알았습니다.
높은 벼슬자리에 올라 있을 때에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귀천을 가리지 않고 반겼으며 항상 겸손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집 문 앞은 항상 방문하는 손님들로 붐볐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벼슬길은 굴곡이 심했습니다.
급암은 소탈한 성격의 인물로서 항상 솔직한 말로 임금에게 간언(諫言)을 하였으므로 결국 무제의 미움을 사서 중앙관직에서 밀려나 멀리 회양군(淮陽郡)의 태수(太守)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당시 역시 자기가 돌봐준 사람의 죄에 관련되어 서민(庶民)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여남군(汝南郡) 태수로 마감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벼슬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는 집안조차 가난하였으므로, 찾아오는 사람이 날로 줄어들어 결국에는 아무도 방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마천은 이 급암과 정당시의 전기를 쓰고 난 뒤 그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대개 급암과 정당시 같은 현인(賢人)이라도 세력이 있을 때에는 손님이 많았지만, 힘이 없어지자 모두 떠나 버렸는데, 하물며 보통 사람은 어쩌겠는가. 또 적공(翟公)의 경우도 그가 정위(廷尉)의 벼슬에 있을 때에는 방문객이 넘쳐 났지만 그가 벼슬을 떠나자 방문객은 끊어져 문 앞에는 참새 떼가 모여들어 새를 잡는 그물을 문 앞에 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적공이 다시 정위 벼슬을 하게 되자, 방문객은 예전처럼 다시 들끓게 되었다. 그것을 본 적공은 대문에 다음과 같이 크게 써 붙였다. ‘한 번 죽고 한 번 살게 됨에 사귐의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자가 됨에 사귐의 실태를 알며, 한 번 귀하게 되고 한 번 천하게 됨에 사귐의 정을 알 수 있다네.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랴!’’
이로써 문전작라(門前雀羅)라고 하면 가난하거나 세력이 없어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경우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또는 그저 쓸쓸하고 한산한 상태를 말할 때에도 이 말이 쓰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기는 적공이 살았을 때에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돈과 권세가 사람을 모으기도 하고 사람을 쫓기도 합니다. 그러니 결국 사람이 꼬이는 것은 인품 때문이라기보다는 돈과 권세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그 안에서 진주 같은 진짜 우정과 의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우리 속담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그 정승이 죽으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돈과 권세가 있을 때 문턱을 닳도록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고 우쭐할 일이 아니며 한가하게 세상의 모든 일에서 물러나 있을 때 과연 문 앞에 참새 잡는 그물이 쳐질 것인지 아닌지 한 번 쯤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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