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문정성시는 문 앞에 시장이 이루어짐, 곧 권세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붐벼 시장을 방불케 한다는 뜻입니다.
전한(前漢) 말 애제(哀帝) 때 정숭(鄭崇)이라는 충신에 얽힌 고사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문전여시(門前如市), 문정여시(門庭如市)라는 말도 비슷한 뜻으로 쓰이며 문전작라(門前雀羅)는 반대 의미로 쓰입니다.
한서(漢書) ‘손보전(孫寶傳)’ ‘정숭전(鄭崇傳)’ 등에 나옵니다.
전한 말기, 애제가 스무 살의 나이로 즉위하자 조정의 실권은 왕씨(王氏) 일족으로부터 부씨(傅氏, 애제의 할머니), 정씨(鄭氏, 애제의 어머니) 일족에게 옮겨져 정치적 실권은 외척에게 돌아갔고 애제는 다만 황제의 자리만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애제를 받들고 정치를 바로잡아 보려고 애쓴 신하 가운데 정숭(鄭崇)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정숭은 애제에게 발탁되어 상서복야(尙書僕射)가 되었는데, 그 무렵 외척들의 전횡은 그 도가 지나쳐 보다 못한 정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애제에게 대책을 건의했습니다.
애제도 정숭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는 하였지만 결국 외척 세력에 밀려 정숭을 멀리하게 되었고 이렇게 곤경에 빠져 있는 정숭을 보자 그를 미워하고 있던 상서령 조창(趙昌)이 애제에게 ‘정숭이 종족과 내통하여 그의 집 앞이 저잣거리를 이루고 있다’고 정숭을 모함했습니다.
애제는 정숭을 불러 물었습니다.
“그대의 문전은 저잣거리와 같다고 하던데,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이오?”
이에 정숭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臣)의 문전은 저자거리와 같으나, 신의 마음은 물과 같이 깨끗합니다. 부디 다시 조사해 주십시오.”
그러나 이미 그를 곱지 않게 보고 있었던 애제는 정숭의 청을 묵살한 채 정숭을 하옥시키는 한편 삭탈관직 시키면서 서인으로 강등시켜 정숭은 결국 옥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문전성시(門前成市)란 말은 ‘신(臣)의 문전은 저잣거리와 같습니다’라고 한데서 생긴 말로 출입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우리말에 ‘세도 문 열었다’라는 말이 있는데 세도를 부리는 집에는 언제나 찾아와서 청을 넣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생긴 말인데 그것이 문전성시를 뜻하기도 합니다.
전국책(戰國策)에 ‘뭇 신하가 간하러 들어와 문과 뜰이 저자와 같다’는 의미로 쓰인 문정성시(門庭成市)가 있는데 역시 간언과 인연이 있습니다.
문정여시(門庭如市) 역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말이지만 실은 이 말이 뒤에 높은 자리에 있어 아첨하는 자를 불러들이는 것을 비방하는데 쓰이고 전술한 ‘그대의 문 앞은 저자거리와 같다’와 같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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