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말세이구설치천하는 말세(末世)에는 입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옷을 드리우고 천하를 다스린다(垂衣裳而天下治)’는 말과 대구로써, 곧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천하가 자연스럽게 다스려지지 못하고 금령이니 명령이니 하는 숱한 말로써 다스려진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러한 본뜻과 상관없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어우야담(於于野談)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한 중국 사신이 우리나라에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예의의 나라이므로 반드시 무슨 특별한 인물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사신 일행이 평양에 이르렀을 때 길가에서 한 사내를 보았는데, 그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긴 수염이 허리까지 드리우고 있어 기인(奇人)처럼 보였습니다.
사신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동그랗게 해서 사내에게 보였습니다. 그러자 사내도 역시 손을 들고는 손가락을 네모나게 해서 응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신이 또 세 손가락을 펴서 그에게 보여 주자, 사내는 다섯 손가락을 꼽아 보였습니다. 사신은 다시 옷을 들어 보여 주었더니, 사내는 자기 입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중국 사신은 사내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한양에 온 사신은 그를 영접하는 관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이 ‘예의의 나라’라는 말을 들었는데 과연 그 말이 진실이더군요.”
관원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평양에 도착해서 한 사내를 보았는데, 그 풍채가 매우 장대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떠보려고 손가락을 동그랗게 해서 보였습니다. 그것은 ‘하늘은 둥글다(天圓)’는 뜻이지요. 그랬더니 사내가 곧 ‘땅은 네모지다(地方)’는 뜻으로 손가락을 네모나게 해서 응답했습니다. 나는 다시 ‘삼재(三才, 天地人)’을 상징하여 손가락 셋을 들었더니, 그는 ‘오상(五常, 仁義禮智信)’을 상징하여 다섯 손가락을 들더이다. 이에 내가 옷을 들어 보였습니다. 이는 ‘옛날에는 옷을 드리우고도(인위적으로 애쓰지 않고서도) 천하가 다스려졌다(垂衣裳而天下治)’는 뜻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사내는 ‘말세에는 입으로 천하를 다스린다(末世以口舌治天下)’는 뜻으로 자기 입을 가리켰습니다. 길가에 있는 천한 사내도 이와 같은데 유식한 사대부들이야 어떻겠습니까? 정말 대단합니다.”
관원은 이 말을 듣고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지 간에 나라의 위신을 크게 세웠으니 불러 상을 주어야겠고 또 자세히 사정을 묻고 싶기도 해서 그를 수소문해서 한양으로 불러 들였습니다.
사내가 도착하자 관원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중국 사신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했을 때, 너는 어째서 손가락을 네모나게 했는가?”
그러자 사내가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송편을 먹고 싶다고 한 것이지요. 왜 송편은 둥글지 않습니까? 저는 인절미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네모난 인절미 모양을 들어 보여 주었지요.”
관원은 빙그레 웃으며 그 다음 내용도 물었습니다. 사내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 사신이 세 손가락을 꼽은 것은 하루 세끼가 먹고 싶다는 것이지요. 저는 하루 다섯 끼가 먹고 싶었으므로 다섯 손가락을 꼽아 보였습지요. 또 사신이 옷을 들어 보인 것은, 그가 근심거리로 여기는 것이 바로 옷이라는 얘기입니다. 제가 근심하는 것은 먹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제 입을 가리킨 것입니다.”
조정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꿈보다 해몽이네요. 자신의 사상과 처지에 따라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해석하고 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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