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호연지기(浩然之氣)는 하늘과 땅 사이에 충만한 지극히 크고 강한 원기를 뜻하는 말로서 정기(正氣) 혹은 정대(正大)한 기(氣)라고도 합니다.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 上)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전국시대의 철인 맹자가 어느 날 제자인 공손추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용기와 부동심(不動心) 등에 대해 묻고 대답하던 끝에 공손추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나라의 대신이 되어 도를 행하신다면 제나라를 천하의 패자로 만드신다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선생님께서도 마음을 움직이실게 아닙니까?”
“아니다. 나는 40이 넘어서부터는 이미 마음이 움직이는 일이 없게 되었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저 고자(告子)도 나보다 먼저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있지”
“용자 북궁유(北宮黝)는 무엇이든 물리치는 기개를 가지고 용기를 길렀다. 맹시사(孟施舍)는 겁내지 않는 것을 첫째로 삼았다. 공자의 고제자인 증자(曾子)는 스승에게 배운 말 ‘스스로 되돌아 봐서 바른 일이라면 천만인이 막는다해도 나는 가리라’를 명심하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꺼림칙한 점이 없으면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용기로서 마음을 동요시키지 않는 최상의 수단이다.”
“그럼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의 부동심의 차이를 말씀해 주십시오.”
“고자는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은 억지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있어도 기개로써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쓰지 않음으로써 부동심을 얻으려고 했다. 그러나 기개를 누르는 것은 좋으나 납득할 수 없는 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그렇다면 감히 묻겠습니다만, 스승님께서는 어떤 점에 특히 뛰어나십니까?”
“나는 말을 알며(知言),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기르노라.”
지언(知言)이란 마음을 다하고 본성을 알아서 모든 천하의 말에 그 이치를 궁구하여 그 시비득실(是非得失)의 까닭을 다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합니까.”
“그것은 말하기 어렵다. 그 호연지기라는 것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정직으로써 잘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된다. 그 호연지기는 의(義)와 같고 도(道)와 배합되니, 이것이 없으면 굶주리게 된다(기가 몸에 충만하지 못하고 결핍된 것을 말한다). 이 호연지기는 의리를 많이 축적하여 생겨나는 것으로 하루아침에 의를 행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 있어 조금이라도 양심에 개운치 못한 것이 있으면 그 기운은 곧 시들어 버리고 만다.......”
이 대목에 대한 주자(朱子)의 해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호연(浩然)이란 성대하게 유행하는 모양이다. 기란 바로 이른바 ‘몸에 충만 되어 있다’는 것으로서, 본래는 스스로 호연하되, 수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족하게 되는 것이다. 오직 맹자는 그것을 잘 길러 그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신 것이다. 지언(知言)을 하면 도의(道義)에 밝아서 천하의 일에 의심스러운 바가 없고, 기를 기르면 도의에 배합되어서 천하의 일에 두려운 바가 없으니, 이 때문에 큰 책임을 담당하여도 부동심하게 되는 것이다.”
맹자도 호연지기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으니 오늘날의 우리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호연지기란 의와 도가 쌓여서 생겨나는 것으로서 대장부(大丈夫)의 기상으로 실현된다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자신의 공명정대한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호방한 마음이나 기운, 또는 도의에 뿌리를 박고 공명정대하여 무엇에도 구애됨이 없는 도덕적 용기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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