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다기망양(多岐亡羊)은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양을 잃었다는 말인데 달아난 양을 찾으려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바람에 양을 놓치고 말았다는 말입니다.
원래는 학문의 길이 너무 여러 갈래여서 너무 다방면에 걸쳐 섭렵하거나 반대로 지엽적인 것에 구애되거나 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비유로 쓰이는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선택할 대상이 너무 여러 가지가 있어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곤혹스러운 경우에도 쓰고 있으며 또는 지시하는 방침이 많아 갈 바를 모르는 경우를 비유할 때도 쓰입니다.
열자 설부(列子 說符)편, 장자 변무(莊子 騈拇)편에 나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전국시대 도가계열의 사상가인 양주(楊朱)는 당시 겸애설(兼愛說)로 유명한 묵적(墨翟)과 함께 양묵(楊墨)이라고 불렸습니다.
양주는 묵적과는 달리 개인주의를 주장했는데 ‘내 몸의 터럭 한 개를 가지고 세상을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뽑지 않겠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느 날 양주의 이웃집에서 양 한 마리가 달아나자 이웃 사람은 자기 집 사람들을 다 동원하여 양을 찾으러 나서게 하고서는 양주에게 찾아와 사람을 보내달라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양주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허허, 양 한 마리 찾는데 어째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오?”
이웃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양이 갈림길이 많은 쪽으로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양주는 갑자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하루 종일 말도 하지 않고 웃지도 않았습니다.
한 제자가 그에게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양 한 마리는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 아닙니다. 또 선생님 소유의 양을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어찌 말도 않으시고 웃지도 않으십니까?”
하지만 양주는 가만히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맹손양(孟孫陽)이란 제자가 선배인 심도자(心都子)를 찾아가 앞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자 심도자는 맹손양과 함께 양주를 찾아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며 자문을 구했습니다.
“옛날에 세 형제가 제나라와 노나라에 유학 가서 같은 스승을 모시고 유가의 도, 곧 인의를 배워 돌아왔습니다. 그 아버지가 인의에 대해 묻자 큰 아들은 ‘자기 몸을 아끼고 명예를 뒤로 돌리는 것’이라고 했고 둘째 아들은 ‘자기 몸을 죽여서 명예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으며 셋째 아들은 ‘자신의 몸과 명예를 다 보전하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처럼 그 세 사람의 입론은 각각 다르지만 모두 유가에서 나온 것입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입니까?”
그러자 양주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어떤 사람이 자맥질을 잘해서 많은 이익을 얻자 그에게 자맥질을 배우러 간 사람들이 떼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중 태반이 물에 빠져 죽었다. 본래 자맥질하는 법을 배운 것이지 물에 빠져 죽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 차이가 이토록 심하다. 그러니 앞의 세 사람 중에 누가 옳고 그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 말을 듣고 심도자는 조용히 물러나왔습니다.
그러자 함께 따라갔던 맹손양은 몹시 궁금해서 심도자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라네. 곧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학문하는 사람들은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또 학문은 원래 근본은 하나인데 그 말단에 와서 이처럼 달라지고 만 것이다. 따라서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신 것이라네. 자네는 선생의 문하에서 자라나 선생의 도를 익히 접했으면서도 어째서 그 비유를 이해하지 못했는가?”
맹손양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종교, 학문 등 많은 부분에서 근본을 제쳐놓고 지엽말단(枝葉末端)의 형식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현상을 종종 보는데 정보의 홍수 속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진정 무엇이 근본 인가를 생각해 볼 때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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