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예영(원명학당 원장)
[SOH] 세군(細君)이란 말은 남에게 자기의 아내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후세에 이르러서는 남의 아내를 세군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와 관련해서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았다는 동방삭(東方朔)의 재미있는 고사가 전하고 있는데요, 한서(漢書) 동방삭전의 이야기를 한 토막 해보겠습니다.
한 무제(漢武帝)는 즉위하자마자 천하의 인재를 널리 뽑아 그 재주에 따라 인물을 등용했습니다.
때문에 정치의 득실을 논한 상소문을 올려 자신을 드러내려는 자가 매우 많았죠.
그 때에 동방삭도 상소문을 올렸는데 그 내용이 매우 엉뚱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같이 정치론에는 언급이 없고 상소문 처음부터 끝까지 제 자랑만 실컷 늘어놓은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뻔뻔스러운 문장을 본 무제는 오히려 그 기지를 높이 사 그를 관리로 등용시켰습니다. 그 후 동방삭은 더욱 기지를 발휘하여 상시랑(常時朗, 시종관)의 벼슬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 복날이 되자 예에 따라 무제가 시종관들에게 고기를 하사한다는 명을 내렸습니다. 시종관들은 임금이 하사한 고기를 분배할 관리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관리는 저녁 늦도록 오지 않았어요.
이때 동방삭이 나서서 스스로 칼을 뽑아 고기를 잘라냈습니다. 그는 눈이 동그래진 동료들에게 “복날이라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하사품은 잘 받아 가지고 갑니다”라고 넉살좋게 얘기하면서 고기를 품에 넣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절차를 밟지 않고 임금의 하사품을 제 맘대로 가져갔으니 아무 일이 없을 리가 없었죠. 이튿날 분배를 담당했던 관리가 그 일을 무제에게 아뢰어 동방삭은 등청하자마자 무제에게 불려갔습니다. 무제는 그의 경솔함을 꾸짖은 다음 그 자리에서 스스로를 질책하라고 분부했습니다.
그러자 동방삭은 두 번 절하고 나서 ‘삭이여, 삭이여, 하사품을 받아 가는데 어명을 기다리지 않았으니 얼마나 무례한 일인가’라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무제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곧 이런 말이 흘러 나왔습니다.
“칼을 빼어 들어 고기를 자르다니 이 얼마나 용감한 일인가. 고기를 자르되 많이 갖지 않았으니 얼마나 깨끗한 일인가. 집에 가지고 가서 세군에게 주다니 얼마나 인정이 넘친 일인가.”
이 쯤 되자 무제는 그의 배짱과 기지에 다시 한 번 웃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질책하라고 했더니 오히려 자신을 칭찬하는구려.”
무제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에게 술 한 섬과 고기 백 근을 하사하고는 처에게 갖다 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세군이란 말이 나왔는데 이 세군은 동방삭의 아내 이름이라고도 하고 또는 세(細)는 소(小)의 뜻으로서 삭이 자기의 아내를 소군에 비유해서 그리 불렀다고도 합니다.
이 때 소군은 제후의 아내를 칭하는 말인데요, 이 말이 훗날에는 남의 아내를 부를 때 쓰이게 되었습니다.
기지와 재치란 적당한 장소에서 적당한 시기에 발휘되어야 빛을 발휘하게 되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그를 알아듣고 즐길 만한 상대가 있어야 하죠. 먼 옛날의 이야기지만 동방삭의 배짱 좋은 기지와, 그를 즐길만한 아량이 있었던 무제의 다정한 군신관계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군요.
동방삭의 전설하나를 더 들려 드리겠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동방삭이 삼천갑자(18,000년)를 살았는데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저승사자를 잘 대접해서 오래 살았다고 하기도 하고 원래는 별의 요정이었다는 말도 있더군요.
요즈음 같으면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허황한 이야기라 할지도 모르는데 어쨌든 전해오는 이야기를 보면 저승사자가 올 때쯤이면 동방삭이 몸을 감추었기 때문에 동방삭을 데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고가 동방삭을 잡으려 계교를 꾸몄는데 저승사자더러 냇가에서 숯을 씻게 하였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동방삭이 이를 보고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으나 검은 숯을 씻어 희게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하니 이 사람이 동방삭임을 알고 잡아갔다는 이야기지요.
경기도 용인에서 발원하는 탄천(炭川)에 이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답니다. 세군의 어원과 동방삭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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