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 ‘토호(土豪)를 타파하고 토지를 나누자’는 구호는 중국공산당(중공)이 정권을 탈취한 직후 착수한 ‘토지개혁’의 구호이다.
토지개혁이야말로 중공이 모반에 성공할 수 있었던 보배라 할 수 있다. 토지개혁과 그 구호는 수많은 농민들을 현혹시켰다.
중공은공작팀을 내려 보내 농촌에 심어놓고 강제로 계급을 나누고 사유재산을 박탈하는 동시에 군중들을 선동해 지주와 투쟁하게 했다. 그리고 ‘혁명’이란 미명 하에 지주를 공개 심판하고 총살했다.
모택동은 “어디를 가든지 우선 반드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라”고 직접 지시하기도했다. 이로써 중공 전제정권의 기반을 공고히 했다.
과연, 중공 간부들은 가는 곳마다 반드시 일부 사람들을 선동해 인위적인 날조와 거짓 증거를 들이대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완전히 지록위마(指鹿爲馬·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함)였다.
인위적으로 모순을 만들어 원한을 연출하는 동시에 피비린내 나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중국은 토지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농경 구조와 고용·피고용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공의 피비린내 나는 토지개혁은 자연스러운 농업 관계를 파괴하고 조화롭던 농촌의 질서를 무너뜨렸으며 정상적인 역사 발전을 가로막았다.
본래 화목하게 서로 의지하며 공존하던 농민과 지주는 핍박에 의해 반목하고 서로 원수가 되었다.
농민들이 분배받은 토지는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중공의 ‘인민공사’ 운동에 의해 깡그리 몰수당했다.
중공의 명령에 따라 농민들은 핍박에 의해 토지를 전부 내놓아야 했고 심지어 소와 농기계까지 내놓아야 했다.
이렇게 한 번 나눠주고 다시 몰수하는 과정을 통해 중국의 모든 토지와 자원은 전부 중공 일당의 소유로 변했다.
중국 농민은 이때부터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고 영락없는 ‘무산계급(無産階級·재산없이 노동력만으로 생활하는 하층 계급)’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중공의 소위 토지개혁이란 전형적인 사기극이었다.
그 이후 중국의 농업은 크게 뒷걸음쳤고 대기근이 잇달아 덮치면서 최소 3,800만명이 아사했다.
이들 중 절대다수는 바로 토지개혁 당시 소송을 걸고 분배받기 위해 지주와 싸웠던 빈곤한 농민들이었다.
지금까지도 중공은 토지를 ‘공동 소유(즉 공산당 소유)’로 규정하고 ‘임대’ 방식으로 농민들에게 경작을 시킬 뿐 이들에게 소유권을 돌려주기를 거부하고 있다.
중공은 또 토지로 더 큰 폭리를 취할 수 있을 때면 곧 강제로 점유하거나 심지어 폭력적인 방법으로 농민들을 강제 이주시킨다.
중공은 이러한 과정에서 ‘국유로 귀속되었다’는 이유를 내세워 전혀 보상을 하지 않거나 아주 적은 보상금만을 줄 뿐이다.
중국에서는 현재에도 당국의 토지개발 및 부동산 개발로 하루아침에 생활의 터전을 잃고 삶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농민들이 매우 많으며, 이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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