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천포쿵(陳破空 시사평론가)
[SOH] 옛말에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좋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이롭다고 했듯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속 시원히 털어놓는 것이 사람에게 이롭습니다. 마찬가지로 국민이 정치를 논의하고 아는 것을 숨기지 않고 모두 말한다면 국가에 이롭습니다.
중국 고대에 사람들이 현명한 군주인지를 평가할 때 “여러 방면의 의견을 들으면 시비를 잘 구별할 수 있지만, 한쪽 말만 들으면 사리판단에 어둡게 된다”는 평가 기준이 있었습니다.
또 충신을 평가할 때는 “무관(武官)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며, 문관(文官)은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한다”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남의 의견을 듣는다는 ‘청(聽)’과 남에게 간언 한다는 ‘간(諫)’을 통해 언론의 소중함과 국가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드러냈습니다. 역대의 독재자들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을 하천을 막는 것보다 중시 했습니다.
또 살인멸구(殺人滅口)라는 성어도 있는데 바꿔 말하자면 입을 막으려면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육체적인 학살이거나 정신적인 모살(謨殺)입니다. 언론을 막고 보도를 통제하는 모든 독재자들이 떠받드는 것은 모두 살인정치입니다.
살인정치는 나라를 위험에 빠지게 하며 안전을 논할 수 없게 만듭니다.
통계에 따르면 살인만 보더라도 공산당이 집권한 정권은 모두 그 나라 역사상 최악의 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중 중국 공산당은 가장 선두를 달리며 중국 민중 수천만 명을 살해했습니다.
이는 언론의 자유가 없으면 국민의 안전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의 안전도 있을 수 없으며 있는 것은 오직 집권자의 안전뿐임을 충분히 입증합니다. 물론 집권자의 이런 안전 역시 일시적인 것입니다.
집권자가 역사적 심판과 청산을 받을 때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애초에 저질렀던 모든 행위들이 자신들의 불행한 결말에 대한 복선임을 인식하게 됩니다.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세비치 등은 살아 생전에 보응을 받았습니다.
이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전례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현재 문명국가의 기본적인 표지는 바로 언론의 자유입니다.
여기에는 교류, 표현, 보도, 출판의 자유 등을 포함합니다. 언론의 자유는 시민의 발언권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또한 한 나라의 공공안전도 보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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